[김태우] 중국-베트남 전쟁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19-02-27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1979년에 벌어졌던 중국과 베트남 간의 전쟁을 기억하십니까? 역사가들은 이를 대패권주의(大覇權主義)와 소패권주의(小覇權主義) 간의 충돌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세계적 파워를 지향하는 중국과 인도차이나 반도의 강대국 지위를 가진 베트남이 충돌한 것이기에 그렇게 부르는데, 이 전쟁은 남북한을 포함한 이웃나라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남겼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외형적으로는 혁명동지국이며, 미국이 베트남에서 전쟁을 벌이던 시절에는 중국이 베트남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을 복속시키기를 원하는 중국과 이를 거부하고 독립을 원했던 베트남 간에는 수천년에 걸친 투쟁과 갈등의 역사가 있으며, 중국에게 있어 베트남은 결코 만만치 않은 주변 강대국이었습니다. 베트남은 서기 939년 중국 대륙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명나라 때 일시적으로 식민지가 됐지만 이후 20세기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될 때까지 줄곧 독립을 지켰습니다. 독립 이후 송, 원, 명, 청 등과 같은 중국의 역대 왕조와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지만 중국이 베트남을 제압한 적은 없었습니다. 200여 년 전 청나라도 그랬습니다. 청나라는 20만 대군으로 베트남을 침공했으나 거의 전원이 전멸하는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습니다.

1979년 전쟁도 비슷했습니다. 1979년 2월 17일 자정 중국은 20만 병력, 170대의 항공기, 200여 대의 탱크를 앞세우고 베트남을 침공하면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이 실제로 침공에 동원한 병력이 6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그 보다 두 달 전인 1978년 12월 25일에는 베트남군 10만 명과 탱크부대가 캄보디아를 침공하여 폴 포트 정권을 축출했습니다. 폴 포트 정권은 친중국 노선을 걸으면서 국내에서 공포정치와 숙청을 일삼고 있었고 베트남계 주민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습니다. 이에 1975년 통일을 이룬 지역 강대국 베트남이 캄보디아에 ‘가르침’을 주고자 침공한 것입니다. 이에 중국이 발끈했습니다. 즉 베트남이 캄보디아의 친중 정권을 축출한 것에 대해 격노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트남을 징벌하기 위해 개시한 것이 1979년 중국의 베트남 침공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베트남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은 상당 부분의 베트남군 주력부대를 캄보디아에 남겨둔 채 민병대와 지역수비대로 중국에 맞섰고, 18세에서 45세까지의 남성에 대해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베트남군은 25년간의 전투를 통해 단련되어 있었고, 미군이 남기고 간 50억 달러어치의 최신 전쟁물자와 무기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트남군은 베트남 북부의 산간지형을 십분 활용하면서 실전경험이 없고 장비가 낡은 중국군을 괴롭혔습니다. 중국군은 힘들게 베트남의 국경도시 다섯 개를 점령했지만, 3월 6일 마지막 도시인 랑썬을 점령한 뒤 “징벌 목적을 달성했다”고 선언하고 황급히 철수했습니다. 이후 중국군 당국은 17일 간의 전쟁에서 6만 2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수백 대의 군용차량과 포가 파괴됐다고 발표했고, 베트남군은 사상자를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압도적인 국력과 군사력 규모에 비해 본다면, 베트남을 징벌하겠다며 시작한 전쟁에서 오히려 중국군이 혼줄이 난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서방의 전문가들은 “중국을 종이호랑이로 전락시키고 베트남에게 승리를 안겨준 전쟁”으로 평가했습니다. 이 전쟁으로 베트남내 반중 정서가 강해졌고, 베트남에 거주하던 많은 화교들이 보트피플로 전락하여 해외로 떠돌았습니다. 베트남에게 가르침을 주었다는 중국의 주장과는 달리 베트남군의 캄보디아 주둔은 1989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종전 후 4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중국은 베트남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베트남은 외교적으로는 중국과의 ‘동반자’ 관계를 회복했으며, 1979년 당시 폐허로 변했던 국경도시들은 하루에도 수천 명의 보따리상들이 양국을 왕래하는 국경무역도시가 되었습니다. 베트남의 총 수입 중 30%를 중국산이 차지할 만큼 중국은 베트남의 제1교역상대국이자 투자국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베트남은 남중국해의 섬들을 놓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2014년 해상 석유시추를 놓고 양국이 갈등을 빚었을 때 베트남내 반중 봉기는 베트남에 거주하던 중국인들이 본국이나 주변국으로 대피해야 할 만큼 격렬했습니다.

베트남이 걸어온 길은 중국의 다른 주변국들에게도 교훈이 될 수 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강대국은 영토를 원하고 멀리 있는 강대국은 영향력을 원할 뿐이라는 손자병법의 가르침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베트남은 이 진리를 중시하여 지금은 미국과 협력하면서 중국의 팽창주의를 견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국민을 잘 살게 만들기 위해 개혁개방을 선택하여 중국은 물론 과거 적국이었던 미국이나 대한민국과도 활발하게 경제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인민들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베트남처럼 체제를 넘어 많은 나라들과 교류해야 하고,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을 해야 합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