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2.13 합의 12주년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19-02-13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북한이 첫 핵실험을 실시한 것은 2006년의 일이었습니다. 이후 한국 국민은 북핵의 공포 속에 살아야 했지만 그래도 북핵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던 순간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첫번째로 그런 순간을 맞이했던 것이 12년 전인 2007년 2월 2.13합의였습니다. 물론, 북핵과 관련한 대화는 그 전에도 있었습니다. 북한이 영변에 각종 핵시설을 건설하고 일부가 부분 가동되고 있던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진 것은 1989년의 일이었습니다. 이후 남북 간 그리고 미북 간 각종 대화를 통해 1991년에 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이 채택되면서 한국에 배치된 미국의 전술핵은 철수되었고, 1994년에 미북 간 제네바핵합의(Agreed Framework)가 서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북한이 농축을 통한 핵무기 제조를 시도함에 따라 제네바합의는 파기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2002년에서 2008년까지 남북한과 미‧일‧중‧러가 참여하는 6자회담데, 이 회담은 참으로 많은 기복을 기록했습니다.

6자회담이 처음으로 도출한 합의는 2005년의 9.19 공동성명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북한은 ‘모든 핵무기 및 현존 핵프로그램의 포기’ 약속과 함께 ‘조속한 시일내 핵무기비확산조약(NPT) 및 안전조치협정(safeguard agreement)에 복귀하기로 했고, 미국은 “재래 및 핵군사력으로 북한을 공격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속개된 6자회담에서 북한은 “핵포기에 앞서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먼저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미국이 돈세탁 혐의로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의 북한계좌를 동결한 것을 해제하라고 요구하다가 결국 이를 문제삼아 2006년 10월 9일 첫 핵실험을 강행하고 9.19 공동발표문을 사문화시켰습니다. 이렇게 하여 조성된 새로운 위기를 진정시킨 것이 2007년의 2.13합의였습니다. 2.13 합의는 6자회담이 기록한 두 번째의 유의미한 성과로서, 이 합의에서 북한은 모든 핵시설의 폐쇄(shutdown), 봉인(sealing) 그리고 불능화(disablement)를 약속했고, 이를 위해 핵시설을 IAEA에 신고하고 IAEA 사찰요원의 복귀를 허용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여타국들은 불능화 기간 동안 누계 100만 톤의 중유에 상당하는 경제‧에너지 지원을 제공하기로 약속했고, 특히 미국은 대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양자대화, 테러지원국 해제, 대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 등을 노력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해 10월에는 2.13 합의의 재확인과 이행을 위한 10.3 합의가 이루어졌고, 2008년에는 북한이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했습니다. 이렇듯 2.13 합의는 한국 국민과 국제사회에게 북핵 해결의 희망을 갖게 해준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2.13 합의와 10.3 합의에서 약속한 핵시설 신고를 2007년 말까지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2007년 11월이 되면서 미국은 북한과 시리아 간의 핵협력 의혹을 제기했고, 북한의 비밀 농축활동 의혹도 함께 제기했습니다. 이 무렵 세계 전문가들은 북한이 생산한 플루토늄을 50kg 내외로 추정하면서 북한이 30kg라고 밝힌 것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북 양국은 북한의 핵포기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를 놓고 격돌을 벌이게 됩니다. 미국은 이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고 대화를 재개했지만 북한은 검증을 위한 시료채취조차 거부하면서 현장방문, 문건 확인, 기술자와의 인터뷰 등 만을 허용하는 검증을 고집했습니다. 이로서 6자회담은 종료되었고 2.13 합의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북한은 2009년 제2차 핵실험을 실시합니다.

돌이켜 보건대, 북핵 문제는 참으로 많은 기복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고, 그 과정에서 북한은 참으로 집요한 협상전술을 보여주었습니다. 핵을 포기할 생각이라면 확실한 검증을 거부할 이유가 없어야 하지만 북한은 늘 원론에 합의해주고는 각론에서 딴 소리를 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뒤집었고, 그렇게 시간을 벌면서 끊임없이 핵개발을 강행해온 것입니다. 이런 과거사를 가진 북핵 문제는 2018년 북한의 평화공세 이후 남북 간 그리고 미북 간 대화가 재개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북한의 평화공세가 시간벌기, 대북제재 해제, 한미동맹 이간, 한국사회 분열 등을 노리는 또 한번의 기만극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버리지 못한 채 북한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