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창랑호 납북 사건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19-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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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6일은 북한에 의한 최초의 여객기 테러인 창랑호 납북사건이 일어난지 61년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1958년 2월 16일 대한국민항공사(KNA) 소속 DC-13 여객기 '창랑호(滄浪號)'는 승객과 승무원 34명을 태우고 부산 수영비행장을 이륙하여 서울 김포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경기도 평택 상공에서 탑승객으로 위장한 북한 공작원들이 기장인 윌리스 P. 홉스와 부기장 멕클레렌 미 공군 중령을 위협하여 조종실을 장악하여 평양 순안공항에 착륙한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2월 20일 북한 공작원 김택선 등 3명을 납치범으로 발표했고, 25일에는 사건 배후로 지목된 간첩 3명을 체포했습니다. 북한은 "남조선 여객기가 의거 월북했다"고 선전했습니다. 유엔 군사정전위원회는 2월 24일 북한에 승객과 승무원 그리고 기체를 즉각 송환할 것을 요구했고, 한국 국회는 2월 22일 북한 만행을 규탄하는 메시지를 16개 6·25 참전국들에게 보냈습니다. 이것이 6.25 전쟁 이후 북한에 의해 저질러진 첫 여객기 피랍 사건이었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당시 북한은 주은래(周恩來) 중국 수상의 방북을 앞두고 체제선전을 위해 한국 비행기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조작하기 위해 도발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자 3월 6일 납치범들을 제외한 승객 26명을 돌려보냈지만 한국인 승무원들을 송환하지 않았고, 결국 이들은 원하지 않는 이유로 북한에 남아 원하지 않는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한국 국민들에게 가장 뚜렷하게 기억되고 있는 북한에 의한 공중 도발 사건은 1987년에 발생한 항공기 테러 사건입니다. 1987년 11월 29일 보잉-707기종인 대한항공(KE) 858편 여객기는 승객 95명과 승무원 20명 등 115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이륙하여 아랍 에미리트 아부다비 공항과 태국 방콕의 돈므앙 공항을 거쳐 서울 김포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항공기는 아부다비 공항을 경유한 후 인도양의 미얀마 근해 공중에서 폭발하여 바다에 추락했으며, 탑승자 115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정말로 가공할 테러공격이었습니다.

이 직후 한국의 안전기획부는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린 일본인 남녀 승객 2명이 위조여권으로 출국을 시도하다 검거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요원들을 아부다비 현지로 급파했습니다. 체포된 두 사람은 일본인 부녀를 가장한 북한 공작원인 70세의 김승일과 25세의 김현희였습니다. 한국 요원들이 이들을 인수받아 한국으로 압송하려 하자 이들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김승일은 담배갑에 숨겨두었던 청산가리 앰플을 깨물어 사망했고 김현희는 앰플을 깨물기는 했지만 요원들이 재빨리 앰플을 빼앗는 바람에 자살에 실패하고 국내로 압송되었습니다. 안기부는 이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테러행각 일체를 밝혀냈고 1988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북한의 테러로 결론지었습니다.

이런 사건들을 되돌아보면서 가슴에 와 닿는 한 가지 사실은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 시달리면서도 대한민국이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창랑호가 납북되었던 1958년만 해도 유일한 국내 유일 항공사였던 대한국민항공사는 3대의 항공기만을 가진 군소업체였습니다. 그 중 하나는 창랑호 사건 직전에 부산 수영비행장에 착륙하던 도중 기체가 파손되어 전손 처리되었는데 이어서 창랑호마저 납북된 것입니다. 회사 운영이 어려워지자 창업주는 한강에 투신자살을 했고 대한국민항공사는 폐업했습니다.

하지만, 대한국민항공사는 1969년 대한항공이라는 이름의 민간항공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오늘날 대한항공은 160대가 넘는 항공기를 보유하고 전 세계 130여 곳을 운항하는 세계적인 민항사입니다. 오늘날 한국에는 대한항공과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대형 민항사인 아시아나항공도 있습니다. 이들 민항사들은 전 세계 도시들에 여객기와 화물기를 투입하고 있습니다. 에어부산,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에어서울 등 소규모 저가항공사들도 틈새시장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테러를 저지른 북한 공작원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1987년 대한항공기를 폭파하여 115명을 비명 횡사시킨 김현희 씨도 대한민국에서 사면을 받고 결혼도 했으며, 현재 엄마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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