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순] 고향사랑

이금순-한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1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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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민여러분, 지난 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저는 지난 주 오랜만에 고향집에 다녀왔습니다. 저희 고향은 전라북도 정읍입니다.

단풍이 곱기로 유명한 내장산이 있어 가을이면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입니다. 서울에서 정읍까지는 250km로 기차로는 2시간 15분, 자동차로는 2시간 40여분 걸립니다. 올 3월부터는 광주까지 호남선 고속철도가 개통되기 되기 때문에 1시간 10여분으로 시간이 단축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동차로 이동시간은 고속도로의 교통량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기는 합니다만, 요즘은 지방고속도로가 새롭게 많이 생겨나서 이전에 비하면 크게 길이 막히지 않습니다.

이처럼 교통상황이 좋아져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는 거리이지만 저는 고향집에 자주 가지는 못합니다. 제가 직장에 다녀 일 때문에 늘 바쁘기도 하고 명절에는 시집이 서울이고 교통이 많이 막히기 때문에 친정집에 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지내왔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아직도 고향집에 살고 계십니다. 저희 고향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입니다. 평야지역이라 논농사를 주로 하는 곳입니다. 저는 초등학교(즉 소학교) 5학년에 전라북도 도청소재지가 있는 전주로 학교를 옮겨서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게 고향은 아주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는 아련한 곳입니다. 저희 아버지가 교원이셨고 할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셨기 때문에 마을에서 저희 집은 ‘잘사는 이선생님 집’으로 통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당시 고향마을에는 기와집도 거의 없었고 대부분 초가집에 늘 어렵게 살아가는 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제 제 고향마을에 가면 어릴 적 친구들은 다 도시에 나와 살고 있어 볼 수가 없습니다. 마을에는 빈집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너무 줄어서 면소재지의 학교로 합쳐지고, 학교시설은 다른 용도로 바뀌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노인요양원으로 있다가, 이번에 가보니 ‘귀농체험학교’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농촌으로 들어와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리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시설인 것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 싶은 내용은, ‘고향사랑’이 정말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사실 그 할아버지를 뵌 적이 없고 성함도 모릅니다. 그 분은 일본 식민지시대에 저희 마을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분은 농촌마을이지만 논밭도 없어 남의 집 일을 해주고 살던 부모를 따라,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서 고생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사업에 성공한 이후 고향마을을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해주었습니다. 우선 마을까지 버스가 다닐 수 있도록 인근도로에서 마을까지 4km가 넘는 길을 자신의 돈을 들여 포장을 해주고, 길옆으로는 벚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태어난 고향집 자리를 큰돈을 들여 다시 다서 마을사람들이 같이 쉴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을회관도 크게 새로 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주 고향마을에 들러 마을잔치도 열어주고,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선물과 용돈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을사람들 모두 경제적인 부담 없이 마을회관에 모여 화목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마을 공동재산으로 논도 구입해주었습니다.

요즘은 정부에서 마을마다 노인 경로당에 정기적으로 쌀과 돈을 지급하지만, 저희 마을은 오래 전부터 ‘일본할아버지’ 덕분에 쌀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농사일이 한가한 이른 봄이나 늦가을에 버스를 빌려서 마을사람들이 다 같이 관광을 다녀옵니다. 이렇게 마을 공동재산이 풍족하니, 농사일을 마친 겨울에는 마을회관에서 따뜻하게 모두 모여 점심과 저녁식사를 같이 합니다. 연세가 많으시고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도 마을회관에 나오면 식사걱정 없이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시에서 살고 있는 자녀들이 고향을 방문할 때면, 마을회관에 과일이나 간식거리를 사다드리게 됩니다.

저도 이번에 40인분의 귤과 딸기, 만두 등을 사가지고 가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돌아가신 ‘일본할아버지’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마을어르신들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한 분의 ‘고향사랑’이 마을을 화목하게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이제 봄이 되면 20여 년 ‘일본할아버지’와 마을사람들이 같이 심은 벚나무가 멋지게 꽃을 피울 것입니다. 지난봄에 가보니 어느 관광지에 못지않게 온 마을이 꽃마을로 변해있었습니다.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어르신들 중에는 당신들이 이룬 재산을 고향을 위해 쓰고 싶은 희망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고향사랑’이 여러분이 살고 계시는 북한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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