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동유럽 해방 영웅인 ‘교황’

그렉 스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1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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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1989년 동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국민들의 시위로 무너졌습니다.  동유럽 나라들을 반세기 가까이 탄압한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며  자유를 되찾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여러 유명 인사들이 있었습니다.  동유럽 사람들은 특히 뽈스까(폴란드) 출신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뽈스까 자유노동조합을 설립한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은 사악한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자유의 전사’로 기억합니다.

27년 가까이 천주교의 지도자 겸 정신적 지도자였던 84세의 교황 요한 바오로 2 세는  2005년 4월 2일 돌아가셨습니다. 그해 4월 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예수의 제자이자 초대 교황인 성 베드로가 순교를 당해 묻힌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 안치됐습니다. 당시 2005년 4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습니다. 수십 개국에서 온 수백만 명이 교황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천주교의 중심지인 바티칸이 있는 로마로 성지 순례를 했습니다. 그래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은 인류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큰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카롤 요세프 보이틸라’란 이름을 가지고 뽈스까에서 태어났습니다. 카롤 보이틸라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 누나와 형을 잃는 비극을 겪었고, 제2차대전, 나찌(나치) 수용소와 유태인들의 대학살, 모국이 독일과 소련의 침략을 당하는 사태까지 체험해야만 했습니다. 카롤 보이틸라는 조국에서 천주교 신부, 신학자와 추기경을 역임하다 1978년 온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이 그를 천주교 교황으로 선택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되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천주교 신자들을 지혜롭게 지도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정신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1981년 교황은 구쏘련(소련)의 지시를 받아 벌가리아(불가리아) 해외정보국이 파견한 암살자의 총을 맞아 심한 부상을 입었지만, 기적과 같이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암살이 불발로 그친 지 2년 후 교황은 감옥에 갇힌 뛰르끼예(터키) 출신 암살범을 직접 만나 용서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특히 동유럽 사람들에게 아주 특별한 인물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첫 해외여행의 목적지는 바로 모국 뽈스까였습니다. 1979년 교황이 뽈스까를 방문할  때 수백만 명이 교황을 보러  나왔습니다. 그 순간은 동유럽의 어둡고 희망이 없었던 당시 분위기와 많이 달랐습니다.

로므니아와 같은 공산주의 독재국가에서는 군중이 강제로 독재자를 숭배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교황이 뽈스까를 방문했을 때 뽈스까 사람들은 그를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순수한 영웅으로 여겼습니다.  교황은 뽈스까 국민들에게 예수님과 믿음, 종교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영향으로 조선소에서 일하던 레흐 바웬사 씨와 다른 뽈스까 노동자들은 자유노조를 설립해 80년대 후반까지 반공산주의 운동을 힘차게 추진해 뽈스까의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뽈스까에 이어 다른 동유럽 주민들이 무혈 혁명을 통해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1989년 말 공산주의 독재와 인권 유린이 가장 심하던 로므니아에서도 유혈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독재 체제를 와해시켰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00개국을 넘게 방문했습니다. 교황은 자신의 모국이자 공산주의 국가인 뽈스까뿐만 아니라 피델  까스뜨로(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집권했던 꾸바(쿠바)까지 방문했습니다. 교황은 독재자들을 직접 만나며  그 나라 국민들에게 인권과 종교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계 인권을  선전하며  과거에 천주교와 충돌한 종교들과 화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유태인 회당과 이슬람교 사원을 처음으로 방문한 교황 역시 요한 바오로 2세였습니다.

그는 1999년 로므니아를 방문하면서 11세기 천주교와 분리된 정교회 나라의 땅을 처음으로 밟은 천주교 교황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과 중세 시대의 종교 재판부터 유태인 탄압까지 천주교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그는 하나님과 세계 민족들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화해의 교황'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삼십대 이후의 동유럽 사람들은 교황을 공산주의 독재에서 이들을 해방시킨 영웅으로 소중히 여깁니다.

2009년 2월 돌아가신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은 2005년 4월 서울에 있는 명동성당 앞에 모인 수천 명 앞에서 교황의 추모 미사를 지내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과 1989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교황이 김 추기경의 손을 잡고, “김 추기경과 나만이 알고 나누는 말”이라며 “나는 한국을, 특히 북한을 늘 마음에 두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는 게 김수환 추기경의 전언입니다.

프란치스코 현 교황도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의 메세지를 전달해 왔습니다. 지난 6월 30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주간 연설을 하면서 며칠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에서 이뤄진 제3차 정상회담을 축하했습니다. 또한 교황은 미국과 북한, 한국과 북한 ‘조우 문화’를 칭찬했습니다. 천주교 지도자 뿐만 아니라, 여러 세계 종교 지도자들이 남북한의 화해, 평화와 통일을 지지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발전입니다. 또한 북한 사람들이 사악한 탄압에 의해 잃어버린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민족 화해를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 성숙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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