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4대 군사노선의 탄생 배경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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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은 북한이 4대 군사노선을 선포한 날입니다. 1962년 북한은 전인민의 무장화, 전국토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군대의 현대화를 선포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4대 군사노선은 잘 알고 있지만 이것이 왜 1962년 12월에 만들어졌는지 그 이유는 잘 모릅니다. 여기엔 흥미로운 배경이 있습니다.

1962년에 들어서며 북한과 소련과의 관계는 빠르게 악화됐습니다. 1945년 해방부터 1950년 6.25전쟁까지 북한은 소련의 위성정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김일성과 그 지지자들은 사실상 소련군대의 선택을 받고 북한의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소련은 자신들이 김일성과 만주 유격대를 활용한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김일성도 같은 생각이었다는 겁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련을 이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940년대 말 김일성은 남한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소련에게 허락을 구했습니다. 애초 소련 지도자들은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크게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은 첩보를 과장하고 외교능력을 보여주면서 결국 스탈린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김일성이 소련의 허가를 받은 때가 1950년 1월 중순, 김일성은 남한을 공격해 친미 이승만 정권을 없애 버리려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지금 러시아에서는 당시 김일성과 스티코프 북한 주재 소련대사, 소련 스탈린 대원수의 비밀회담 자료가 공개돼 누구든지 읽을 수 있습니다. 당시에 김일성은 인민군이 남한을 침공하면 남한 인민들이 북한 군대를 열렬히 환영하고 전국에서 봉기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당연히 김일성의 주장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은 스탈린을 설득하며 보름이나 한달 이내에 부산까지 점령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는 이 약속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소련은 1953년 3월 스탈린 사망 이후 한반도에서의 휴전을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교훈을 얻었습니다. 바로 북한이 다시 남한을 공격하면 안 된다는 교훈이었습니다.

소련은 북한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면 지원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여러 번 평양에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지도자들은 이런 소련의 입장이 큰 배신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들의 지상 최대의 과제는 바로 남북적화통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1956년 이후 소련 지도자들은 스탈린 개인숭배 비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은 소련이 공산주의 이론을 왜곡하는 수정주의자들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은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길 원했습니다.

김일성이 가장 크게 걱정했던 것은 소련에서의 개인숭배 비판이 북한에서의 자신의 권력을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김일성은 소련의 통제가 없어진다면 남한을 다시 공격해 한반도의 공산주의 혁명을 완수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1960년대 들어 북한과 소련의 관계는 점점 나빠졌습니다. 소련출신 간부들이 숙청되고 소련과의 교류와 접근도 모두 차단됐습니다. 당연히 소련에서 나오는 경제지원과 군사지원도 크게 줄었습니다. 소련 지도부도, 소련 사람들도 당시 북한의 태도를 매우 불쾌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북한이 1945년 소련 덕분에 독립국가가 되었는데 고마움을 모르고 배신행위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일성은 이러한 상황에서 소련의 지원 없이 남한을 침공하고 남한을 혁명화 시킬 군대를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정치노선을 결정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4대 군사노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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