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경제특구 조성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19-07-25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평양의 주체사상탑 위에서 내려다 본 평양시 창전거리의 모습. 대규모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었다. (2011년8월)
평양의 주체사상탑 위에서 내려다 본 평양시 창전거리의 모습. 대규모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었다. (2011년8월)
사진: 문성희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오늘은 북한 내 공장과 기업소에서 일고 있는 시장화 움직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북한의 대외 경제협력 방안에 관해 문성희 박사 모시고 얘기 나누고 있습니다. 문 박사님, 북한 역시 경제특구 사업을 중시하고 있다고 지난 시간에 말씀하셨는데요, 오늘은 좀 더 자세히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먼저 북한의 경제특구, 얼마나 조성돼 있나요?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문성희: 네, 북한에서는 ‘경제특구’라는 말은 안 쓰는데, 이른바 ‘경제특구’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는 여러분들의 상상 이외로 많습니다. 경제무역지대, 관광개발특구, 경제개발구를 모두 포함시킨 ‘경제특구’는 북한 전국에 24곳이나 됩니다. 각 시, 도에 적어도 하나씩은 ‘경제특구’가 있는 셈이지요.

<기자> 그렇다면 북한의 경제특구 개발 역사도 꽤 오래 됐겠네요.

문성희: 북한의 경제특구 제1호는 청취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라선경제무역지대입니다. 1991년 12월 28일 지정됐는데, 당시는 ‘라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라고 불렸습니다. ‘자유경제’라는 말이 붙는 것 자체가 북한으로서는 획기적이었다고 봅니다. 실은 여기를 경제특구로 설정하자고 제기한 것은 김일성 주석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1989년 2월 두만강  하류지역인 라진-선봉지구에 경제무역지대를 창설할 구상을 내걸었고, 이에 중국도 1990년 7월 두만강하류 삼각지대에 국제자유무역도시를 건설할 구상을 제기했습니다. 91년 10월에는 유엔개발계획(UNDP)이 두만강지역개발계획을 제안하고 북한과 중국을 비롯한 5개국 대표들이 참가하는 개발계획관리위원회가 설치됐고, 이 합의에 따라 91년 12월에 라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가 지정된 것입니다.

<기자> 개발 당시 라진-선봉 지역에 가신 적이 있다고 지난시간에 말씀하셨죠?

문성희: 네, 북한에선 이 지대 개발계획을 2단계로 나누어서 설정했습니다. 제1단계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제2단계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로 2010년에는 싱가포르와 같은 중계무역과 수출가공기지를 갖춘 국제교류거점으로 꾸리는 구상을 갖고 있었어요. 제가 라진-선봉을 참관한 것은 1996년으로 그 전 해인 1995년에 수해가 나고 1996년에도 다시 수해가 나는 등 여러 사정이 겹쳐서 북한의 경제가 건국이래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어요. 그런 속에서 라진-선봉지구는 경제를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 북한 정부도 매우 중요시 여기고 있었다고 봅니다. UNDP 사업이기에 비용도 북한이 모두 부담할 필요가 없었지요.

그래서인지 라진에 가니까 라진호텔, 헬리포트(헬기 전용 비행장)   등이 건설중이었고 건설에는 군인들이 동원돼 있었어요. 그래도 아직 건설이 시작된지 오래 안 지나서인지 건물은 별로 없었어요. 다만 태국 통신사 등의 간판이 붙어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자> 선봉도 가보셨어요?

문성희: 네, 선봉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1994년의 미북 간 제네바합의에 따라 북한에 제공하기로 한 중유를 싣고 와 북한에 체류하는 유조선을 목격한 것이었어요. 그때 찍은 사진이 일본에서 나온 책 표제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별로 잘 된 사진은 아니었으나 그 당시로는 이런 사진은 찍기가 어려웠기 때문에이에요.

<기자> 그러니까 북한 나름으로 나선을 잘 꾸려보자는 의도가 있었다, 이런 말씀이네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봅니다. 그 당시는 정말로 이것으로 경제를 살려보겠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1997년에 아시아 통화 위기가 일어난 것으로 북한은 시장경제와 외자투입에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1998년에는 라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의 명칭에서 ‘자유’가 삭제됐어요. 또 1998년에는 노동당 기관지인 ‘근로자’와 ‘로동신문’이 함께 게재한 공동논설에서 금융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하에 들어간 한국경제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외자 투입에 점점 소극적으로 되기도 했지요. 그리고 1984년부터 실시된 합영사업이 잘 추진이 안 된 것으로 외국 기업들이 투자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측면도 있어, 결국 라진-선봉에 진출하는 외국 기업이 많지 않았습니다. 2000년에 1차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된 뒤로는 특구보다 남북 경협에 큰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뭐 그런 측면도 있겠지요.

<기자> 2000년 6월에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된 뒤 북한은 경제특구사업보다 남북 경협에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말씀이신데 2008년에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경제특구 강화 정책을 취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문성희: 네 그 측면에 대해서는 지난번 ‘중국, 러시아와의 합작’에 대한 방송시에 자세히 말씀드렸기 때문에 더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2008년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남북 관계가 악화되고 금강산관광도 중단됐지요, 하여 북한이 한국과의 경협에 흥미를 가지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기자> 그렇다면 김정은 정권의 경제특구정책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문성희: 앞서 말씀드렸는데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뒤 북한 전역에 경제개발구가 설치됐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13년 3월에 열린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각 도 마다의 실정에 맞는 특색있는 경제개발구를 지정하도록 지시를 합니다. 같은 해 5월에는 경제개발구법도 채택됐습니다. 경제개발구란 이 경제개발구법에 따라 경제활동에 특혜가 보장되는 특수경제지대입니다. 그러니까 경제특구와 다름이 없는 거죠. 공업개발구, 농업개발구, 관광개발구, 수출가공구, 첨단기술개발구 등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라선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위화도경제지대, 개성공업지구, 금강산국제관광지구에는 경제개발구법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경제개발구는 김정은 정권이 출범되면서 완전히 새로 나온 정책이라고 할 수  있지요. 흥미로운 것은 평양시에도 경제개발구가 설치된 것입니다. 적어도 김일성, 김정일 정권 시기에는 평양에 외자를 통째로 투입한다는 사고방식은 없었어요. 이 측면은 김정은 위원장의 새로운 발상이라고 봅니다. 경제개발구법도 자세히 보아가면 시장경제적인 요소를 투입한 측면이 있어요. 예를 들어 국제시장가격도 고려해서 가격을 제정하기로 돼있습니다.

평양시의 개선청년공원 안에 있는 패스트푸드 가게에 설치된 메뉴판. 자기가 먹고 싶은 걸 골라 주문하는 방식이었다. (2010년 8월).
평양시의 개선청년공원 안에 있는 패스트푸드 가게에 설치된 메뉴판. 자기가 먹고 싶은 걸 골라 주문하는 방식이었다. (2010년 8월). 사진: 문성희

<기자> 그렇다면 장성택 처형 이후에도 북한 자체는 경제특구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인가요?

문성희: 북한에서 13곳에 경제개발구를 설정한 것이 2013년 11월이었어요. 장성택이 처형된 것이 같은 해 12월이니까, 북한이 진짜 경제특구정책을 추진할 마음이 있는지 의심받는 측면도 있었겠지요. 왜냐하면 이 사업을 북한에서 전적으로 맡아 하고 있었던 것이 장성택이었으니까. 다만 제 생각으로는 경제개발구 설정에 관해서는 장성택이 직접 관여는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라고 보고있어요. 비교적 빠른 시점에서 장성택에 관한 내사가 들어가고 있었다고 추측이 되니까. 그리고 그의 죄명에 “라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넘겼다”는 내용이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니까 북한이 경제특구  정책에서 장성택을 제외하기로 이미 결정한 것 같아요. 흥미로운 것은 장성택이 제거된 뒤인 2014년에도 새로 6곳을 경제개발구로 지정하고 있다는 측면이지요. 장성택 제거로 경제특구사업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새로 경제개발구를 지정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기자> 그렇군요. 그런데 결국 지정을 해놓고도 경제제재때문에 개발구에 투자를 하는 외국기업이 없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문성희: 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북한이 2017년 9월 3일에 6차 핵실험을 실시했는데 그 직후인 9월 11일 유엔안보리가 제재결의를 채택했습니다. 그 안에 “북한의 단체, 개인 사이에 신규, 기존의 합영기업, 공동사업체의 개설, 유지, 운영을 금지한다” 이런 항목이 있습니다. 이런 제재가 있는 이상 진출하고 싶은 기업이 있어도 어렵다고 할 수 있지요.

<기자> 그렇다면 북한의 경제개발구 정책은 ‘그림의 떡’인가요?

문성희: 그렇게까지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방송에서도 언급했듯이 북중관계가 회복되고 북한이 경제개방, 개혁 정책을 추진한다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봅니다. 적어도 라선과 황금평-위화도의 경제무역지대를 공동으로 개발, 관리하는 문제를 재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황금평-위화도는 개발자체가 추진 안 되고 있어 아직 공동으로 관리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지만, 라선은 이미 많이 개발됐기 때문에 여기가 하나의 모델로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거든요.

<기자> 나선은 많이 발전하고 있다고 보도되기로 하는데, 실제 어떻다고 평가하시나요?

문성희: 저는 1996년에 당시 라진-선봉이라고 불리던 라선을 갔다온 뒤 한번도 못가봤는데 2010년대에 여기를 갔다온 조선신보 평양지국 특파원 기사에 따르면 “평양보다 생활수준이 높다”는 보도도 있어요. 그 당시 인구 20만 명의 라선시에서 핸드폰 가입자수가 1만 8천 명을 넘었다고 해요. 일본의 연구자의 보고서 등을 봐도 라선이 매우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라선경제특구의 개발은 순조로이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무엇보다  라진항은 부동항이기에 러시아도 중국도 매력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라선특구는 발전할 것이라고 보고있어요.

<기자> 네 발전 잠재력은 있지만 대북제재로 외국 투자가 막혀있는 상황이라는 말씀이십니다. 문 박사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