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이 말하는 중국생활]③ 살기 위해 여러 번 목숨 걸었다

서울-이진서 leej@rfa.org
201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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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시위.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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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RFA 자유아시아 방송 3부작 기획특집 탈북자들이 말하는 중국에서의 생활

탈북자들은 두만강을 건너는 순간 무국적자가 됩니다. 쉽게 말해서 실제는 살아있지만 서류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가 된다는 겁니다.

이들 탈북자가 새로운 국적을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는 지 또 한국에 간 북한주민이 자신이 거쳐 간 중국 지도부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모아봤습니다.

진행에는 이진서 기잡니다.

청진이 고향인 노사연(가명) 씨는 중국 땅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살다가 탈북자 단속이 심해진 2001년, 33살 때 한국으로 가는 밀항선을 탑니다.

노사연: 오면서 15일 동안 두 끼밖에 못 먹었어요. 조선족이 한 200명 돈 벌러 한국 나오는데 섞여서 저도 1천만 원을 주고 배를 탔습니다. 브로커가 일주일이면 간다고 했는데 중국 대련에서 배를 타면 공해에서 한국배를 갈아타야 해요 그런데 한국 배와 연락이 안됐는지...

한국 돈으로 1천만 원이면 만 달러가 가까이 되는 큰돈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벌어 브로커 비용을 댈 요량으로 다시 자신의 운명을 고깃배에 맡기게 됩니다.

노사연: 배라는 것이 고기를 잡는 배라 밑이 비어 있는데 사방 3미터 정도 되는데 거기 콩나물시루 같이 앉아 있는 겁니다. 공기가 잘 안 통하는 곳이에요. 높이는 2m 반 정도 밑으로 뚝 떨어져 있는데 위에 화장실 가는 것도 어렵습니다. 위에 못 올라오게 하기위해 먹는 것도 안 줍니다. 나중에는 위쪽 철문을 열고 생감자를 먹으라고 아래쪽으로 쏟아 부어 줬는데 200명이 아우성치며 주워 먹는 겁니다. 그리고 생배추를 위에서 밑에 뿌려 주는데 목을 축이기 위해 새파란 배추라도 다 먹어요.

기자: 물은 안 줍니까?

노사연: 물도 안 줍니다. 안 주는 이유가 화장실을 가게 되니까요. 그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니까 죽지 않게만 해서 한국배에 빨리 넘기고 싶어 하는 거죠.

5일이면 한국 인천항에 도착한다고 한 배는 보름동안 공해를 떠돌게 됐고 밀항선을 탔던 사람들은 모두 극도의 공포와 굶주림에 마지막 행동을 하게 됩니다.

노사연: 나도 죽었구나 했어요. 구석에 앉아 있었는데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했죠. 중국 사람들은 죽으면 호구가 있어 가족이 찾을 수나 있지만 저는 한국 가겠다고 했다가 여기서 죽는구나하고 맥을 놨었어요. 나이 있는 사람들도 돈 벌로 간다고 조선족이 많이 나갈 때인데 노인들은 이미 질식해서 쓰러져 있고 했는데 가운데 있던 젊은 남자들이 목마를 해서 위쪽 철문 뜯고 올라가서 초겨울 이었는데 입었던 가죽 잠바를 벗어 불망치를 만들어 막 돌렸어요. 밤중에 바다에서 불망치가 보이니까 옆에 있던 배가 신고를 해서 중국 해양경찰이 왔어요.

밀항선 자체가 불법이라 억울함을 법에 호소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경우 제일 큰 피해는 노인과 어린이 그리고 여성일 수밖에 없는데요. 당시 밀항선을 탔을 때도 예외일 수는 없었습니다.

노사연: (두번째 밀항선을 탔을 때) 한국 배에 건너 타는데 파도가 같은 방향으로 칠 때 건너타야지 안 그러면 떨어져요. 10분 만에 200명을 넘깁니다. 브로커가 미리 얘기를 해줍니다. 살려면 10분 안에 다 넘어가라고 그런데 노인들은 멀미가 나니까 배가 움직일 때 옮겨야 하는데 발을 헛디뎌서 떨어져 죽었어요. 그러면 건져주지도 않고 그냥 떠나요. 그래도 두 번째는 5일 만에 인천항에 갔어요. 산 사람만이 그 공포를 알지 몰라요.

북한이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지만 야밤에 두만강을 건너면서 탈북자들은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살기 위해 간 중국 땅에서 공안에게 체포가 돼서 강제로 북한에 끌려갈 때는 그 절망감이란 언어로 표현할 적당한 말을 찾기 힘듭니다. 또 다른 탈북여성 이순점(가명) 씨입니다.

기자: 중국의 기억 어떤 것이 있습니까?

이순점: 북한에서 가족을 데리고 중국에 와서 먹고 살아야 하니까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일하는 데 사장 하고 등을 돌린 사람이 사장에게 복수하느라고 나를 고발한 겁니다. 중국와서 5개월 만에 붙잡혔어요.

기자: 언제 있었던 일입니까?

이순점: 2003년인데 말을 모르니까 그냥 잡혀가서 중국돈 벌금 2만원을 내라는 겁니다.

기자: 어느 도시에 있었나요

이순점: 흑룡강성 감옥사에 있었습니다. 그때 언니가 2만원을 만들어 왔는데 나는 도문변방대로 북송됐죠.

기자: 몇 번이나 북송을 당하셨나요?

이순점: 중국에서 북송은 한 번인데 북한 땅에서 5번 붙잡혔습니다. 시도하다가 붙잡히고 또 잡히고 이렇게...

탈북, 체포, 강제북송 그리고 재탈북. 이런 일련의 과정에 탈북자들은 하나뿐인 목숨을 걸게 됩니다. 하늘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겁니다.

기자: 두 번째는 발이 안 떨어질 것 같은데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는 겁니까?

탈북여성1: 죽기 살기로 오는 거죠. 거기서 죽느니 차라리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하니까 그러다 보니까 길이 열리고. 목숨 걸고 오는 거죠. 운이 없으면 죽고.

탈북여성2: 북한이란 나라보다 중국이 더 잘살지 않아요. 그러니까 일단 눈이 트인 겁니다. 북한에는 한 번 잡혀 나가면 우리가 죄인이잖아요. 그게 싫어서 중국에서 살자 그러는 거죠.

올해 2월부터 남한에서는 탈북자들이 주축이 돼서 중국 내 탈북자 강제북송반대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벌써 200일을 훌쩍 넘겼습니다. 일부 탈북자는 이러한 시위가 오히려 중국을 자극해 북송되는 탈북자의 수가 많아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또 남한 전역에서 벌어지는 중국 내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시위에 대해 중국 전문가인 경희대학교 법무대학원 강효백 교수는 국제사회의 공조와 우회적인 방법으로 탈북자 북송문제를 접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강효백 교수. RFA PHOTO/ 이진서
강효백 교수. RFA PHOTO/ 이진서 Photo: RFA
강효백: 그 긴 국경에 철조망을 다 장치할 수 없습니다. 갈수기 때는 압록강 두만강 상류에서 걸어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넘어 옵니다. 중국으로 볼 때는 치안문제도 사회안전 문제도 있고요 정치적인 것이 아닙니다. 난민의 판단은 현지 당사국이 하는 겁니다. 우리가 자꾸 중국에 인권 난민 하면서 압력을 가한다면 해결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반발만 초래할 것아요. 근본적인 문제가 탈북하지 않도록 북한이 해야죠. 북한이 정말 미친 나라예요.

지난 10여 년 간 중국 당국의 탈북자 북송은 변함이 없다면서 일부 탈북자들은 중국이 북송을 중단하는 순간까지 한목소리를 내야한다며 행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탈북자 주경배 씨입니다.

주경배: 중국이나 북한이나 한국이나 국가를 논하기 전에 인간으로 말하자. 한가정의 가장으로 아빠로 남편으로 아들로 양심을 걸고 말해보자. 북한에 강제북송 되면 국가법이 어떻든 죽는 것 아닌가? 배가 고파 나온 것이 자유가 없어 나온 것이 무슨 큰 죄라고 묶어서 북송시킵니까? 당신 아들이 잡혀 나가고 딸이 잡혀 나갔다고 생각해보라. 정부나 국가 이것을 떠나 인간이 할 짓인가 이 이상 우리는 할 말이 없다.

현재 남한에 사는 탈북자의 수는 2만 4천여 명 입니다. 이들은 탈북해 모두 중국을 거치게 됩니다. 하지만 불법 도강자인 탈북자들은 중국 공안에 체포되는 순간 북한으로 강제북송 되고 있습니다.

MC: RFA 자유아시아 기획특집, 탈북자들이 말하는 중국에서의 생활 지금까지 진행에는 이진서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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