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중국 속 북한인, 비극의 현장을 가다’ ⑥ 중국 땅에 버려진 무국적 아이들

오늘은 여섯 번째 마지막 순서로 국적없이 중국에서 희망없이 살아가는 ‘ 중국 땅에 버려진 무국적 아이들’ 편을 보내드립니다.
중국-정영 xallsl@rfa.org
2009-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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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단둥에서 바라본 압록강.
중국 단둥에서 바라본 압록강.
RFA PHOTO/박성우

무국적 아이 3명을 키우는 탈북 여성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여성이 사는 목단강시(牡丹江市)의 한 농촌에 도착한 것은 취재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웬만한 중국 농촌 길도 피치 포장이 돼 있지만, 이 여성이 사는 농촌마을로 가는 길은 비포장 토사도로입니다.

삼륜 택시를 타고 반나절 달려서 도착한 마을 어귀. 이날 만나본 여성은 29살의 김은희 씨입니다. 2003년 탈북해 중국 산둥 지방의 한 정신지체 장애인에게 팔려갔다가 도망쳐 나온 은희 씨가 두 번째로 팔려온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기자를 안내한 이모와 함께 있어서인지 그는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은희 씨에게는 모두 3명의 아이가 있습니다. 두 아이는 첫 남편의 아이이고, 세 번째 아이는 지금의 남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들 3명의 아이는 모두 무국적자입니다.

정영: 아이들 호구(중국 호적)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은희: 3명 다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려야 하겠는데 살림이 어려우니까 아이 하나 호구 올리는데 몇천 원씩 들어갑니다.

정영: 한 아이의 호구 올리는 데 돈이 얼마나 드나요?

은희: 아는 경찰이 있으면 2~3천 원(미화 300~450달러) 드는데 모르면 1만 원(미화 1,300달러)가량 듭니다. 우리 제일 작은 아이 출생신고 확인서를 떼는 데만도 2천 원을 내라고 합니다.


중국 인구는 공식적으로 약 13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은희 씨의 아이들처럼 출생신고도 못 한 무국적 아이들까지 합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에서 무국적 아동들이 받는 불이익은 실로 큽니다. 우선 호적에 등재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의 우대정책에서 제외됩니다. 유치원, 소학교 등 기초교육비부터 다른 중국인 자녀보다 더 많이 내야 합니다.

정영: 제일 큰아이는 몇 살입니까?

은희: 큰아이가 5살이에요. 7살부터 소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지금 유치원도 못 다니고 있어요. 유치원 다니자면 중국 돈 300원(미화 50달러)을 줘야 합니다. 그리고 먹는 것, 쓰는 것, 책값 등을 계산하면 많이 들어요. 내년도부터 어떻게 하나 보내야 합니다.

정영: 유치원은 국가에서 보조해주는 게 아닙니까?

은희: 학교는 국가가 관리하는데 유치원은 개인들이 하기 때문에 비쌉니다.


중국의 교육과정은 소학교 6년, 초급중학교(초중) 3년, 고급중학교(고중) 3년입니다. 의무교육기간인 소학교와 초중까지는 학비가 낮지만 고중은 의무교육이 아닌데다, 학비도 비싸 탈북자의 자녀는 꿈도 꿀 수 없습니다.

또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정책으로 조선족 자녀는 학비 지원을 받는데 무국적 자녀는 그런 혜택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무국적 신분 자녀의 장래는 더욱 암울합니다.

은희: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대학은 꿈도 못 꾸고, 어디 가서 좋은 일자리를 얻기도 어렵고...

이렇게 되면 무국적 탈북 2세 자녀는 한창 배워야 할 나이에 노동에 참가해야 하고, 또 배우지 못한 탓에 가장 낮은 사회적 신분으로 살아야 합니다. 결국, 어머니가 겪었던 고생을 자식이 대물림받게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어떻게 하나 마음의 그늘을 지어주지 않으려는 은희 씨의 바람은 간절합니다. 우선 중국정부에 바라는 기대가 큽니다.

정영: 무국적 아이들을 둔 어머니 심정으로 바람은 무엇입니까?

은희: 내 생각에는 이왕 여기 중국 아이들이니까, 중국 국가에서 조금 도와줘서 돈을 좀 작게 써서라도 아이들 호구라도 올려주었으면 좋겠는데 여기 아이들은 엄마가 조선 사람이기에 중국에서 호구를 올리기 어렵습니다.

정영: 그러면 중국이 국가적으로 (난민지위) 인정을 해줘야 하지 않습니까?

은희: 여기 중국 사람들은 인정해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호구를 하려면 부부간 결혼 등록하고, 신분증과 호구본(호적등본) 같은 것이 있어야 하는데 우린 결혼 등록을 못 했기 때문에 진짜 올리기 힘듭니다.

정영: 결혼식은 한 번도 못했어요?

은희: 결혼식은 해도 결혼등록은 못 합니다.

정영: 그럼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은희: 우리와 같은 신세이지요. 호구 없고 그러니까 일자리가 없고,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대학에 갈 수 없고 내가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그러나 탈북 여성의 자녀라고 해서 중국에서 호구를 다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중국 남편에게 돈이 좀 있거나, 권력기관과 통하면 자녀가 호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은희 씨네 같은 자녀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됩니다. 은희 씨는 이미 사망한 남편의 자식도 기르기 때문에 더 큰 근심이 있습니다.

은희: 아이 하나면 일없단 말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어른이 조금 쓰면 되는데, 우리는 3명이니까, 이게 다 친자식이면 괜찮은데 하나만 친자식이고, 둘은 다른 자식이니까, 자기 친할아버지가 다 살아 있는데, 친할아버지가 호적을 올려줄 힘이 없으니까 나한테 다 밀어놓고 우리 남편도 올리자, 올리자 하다가도 그만한 돈이 없어 올리지 못하고…

이렇게 무국적 자녀를 거느린 탈북 여성이라도 자식에 대한 모성애는 아주 강렬합니다. 언제 공안에 체포되어 북송 당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도 은희 씨는 이미 사망한 남편의 자식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정영: 그러니까 어떻게 하나 애 둘은 꼭 책임지겠다는 부모 된 심정이군요.

은희: 나는 이제 조선에 잡혀나가도 나는 무조건 우기겠습니다. 이 애들은 조선 아이라고 딱 뻐기겠습니다. 내가 조선에서 낳은 애라고 우기겠습니다. 잡아서 마구 걷어 내가는데 어느 사람도 중국에서 살기 싫어도 조선에 나가지 못합니다.


단지 배가 고파 국경을 넘은 것이 죄가 되어 북한에 처벌이 두려워 돌아갈 수 없다는 은희 씨. 그는 지금이라도 북한이 처벌하지 않는다면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소연합니다.

은희: 나도 이 중국 살림이 조선보다 못합니다. 조선에 나가고 싶어도 내가 나가면 내가 죽는데 나를 용서해주고 조선 나가서 살게 안착 되게 해주면 나는 이제라도 북한에 나가겠습니다.

정영: 그러면 조선에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은희: 잡아가니까요, 무조건 교화 들어가니까, 우린 무서워 못 나갑니다. 교화 들어가면 살아나오는 게 몇이 없습니다. 다 굶어 죽고 난 더구나 자식 둘을 데리고 못 나갑니다. 이제는 내 앞길이라는 것은 가망이 없는 거고요. 난 앞으로 내 자식들을 위해서 내 자식들은 어디 가서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고 어디 가서 권한 있고 발언권 있게 자식들한테 내가 곤란해도 얼어 죽고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키우면 되니까. 그저 내 소원은 아이들 호구만 올려주면 고맙겠습니다.


현재 중국에는 은희 씨의 자녀와 같이 무국적으로 남아 있는 탈북 2세들이 약 1~2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려고 죽음을 각오하고 중국에 온 탈북 여성들과 그로부터 난 무국적 탈북 자녀를 도와줄 방법은 없을까, 기자는 그동안 북한인권 활동을 벌여온 시민단체 운동가들과 전문가들로부터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북한인권활동을 벌여온 (사)‘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김윤태 사무총장은 중국 내 탈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민단체와 한국정부, 그리고 한국정부와 중국정부가 서로 협조를 통해서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김윤태: 주요하게 중국정부가 탈북자 문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딱히 일반시민단체나 국제기구 한국정부가 접근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있어서 해답이 정확히 나오기 어려운 게 현실적인 상황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루빨리 탈북자들이 난민으로 인정을 받아서 탈북 고아들 문제가 합법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국제법적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습니다. 특히 교육문제라든지 의료문제는 탈북고아들에게 지금 매우 심각한 상황이고, 이것들을 해결하기 위한 지원 대책들이 합법적이지 않더라도 비공개적으로라도 조속히 실현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경섭 세종연구소 연구원은 중국 내 탈북자 인권을 위해서는 한국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하는 공식적인 방법과 민간단체를 활용하는 비공식 활동을 병행해서 벌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경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식적 접근방법에서도 국제인권기구가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중국정부에 이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실효적인 조처를 하여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영: 지금으로서는 중국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조건에서 탈북 여성들은 지금 당장으로서는 미국이나 한국 등 제3국행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오경섭 : 이 문제는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명박 정부는 중국에서 인권침해를 당하는 탈북자들에 대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과 실질적 지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 내 현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선교사들과 북한인권 활동가들이 상당히 있기 때문에 그들 단체와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그들이 실제적인 지원을 하고 탈북자들이 한국행을 원할 때 거기에 대한 지원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삶을 찾아 탈북을 단행한 은희 씨.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3명 무국적 아이의 엄마가 되어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실오라기 같은 한가닥 희망을 품고 건너온 중국 땅에서 물건처럼, 짐승처럼 팔려 다니는 탈북여성들, 그리고 이들에게서 태어난 무국적 탈북 2세들… 이들의 운명은 이제 국제사회와 한국정부, 민간단체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저는 취재를 마치고 제가 9년 전 건너왔던 두만강을 다시 찾았습니다. 무심히 흐르는 저 강물을 사이에 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엇갈렸는지 모릅니다. 탈북여성 김은희씨의 손목을 잡고 저 강을 건너다 물속에 잠겨 끝내 떠오르지 못한 10년전 18살 소녀의 얘기가 귓전을 맴돕니다.

비록 살아 중국 땅으로 건너 와서도 감시와 차별과 학대 속에 물건처럼 팔려 다니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탈북여성들의 한숨 소리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듭니다. 이미 굶어 죽어 땅에 묻은 아이들 때문에 흘린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타국 땅 중국에서 원치 않은 강제 결혼으로 낳은 국적없는 아이 때문에 또 울며 지내는 숱한 탈북 여성들의 모습이 강물위에 겹쳐집니다 제게도 9년전 저 강을 건너면서 남겨 두고온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 정겨운 이름들을 나지막히 불러보면서 저는 마음으로 수없이 되뇌었습니다. ‘살아만 있으라... 다들 살아만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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