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나와 죽는다는 전거리 교화소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8-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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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침해 피해자 모임 김광일 씨 등 북한이탈주민들이 지난 2011년 서울 국가인권위원회에 함경북도 전거리교화소 인권침해 사항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북한인권침해 피해자 모임 김광일 씨 등 북한이탈주민들이 지난 2011년 서울 국가인권위원회에 함경북도 전거리교화소 인권침해 사항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죄 짓은 사람이 벌을 받는 것에 대해 반대나 문제를 제기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인간이하의 대우를 해야 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오늘은 병보석으로 살아 나와선 집에서 죽게 된다는 함경북도 회령시에 있는 전거리 교화소에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알아봅니다.

양은경: 전거리 교화소라고 하면 함경북도 사람들은 다 알아요. 여자나 남자나 병보석으로 나오거든요.  그러면 그 사람은 다 죽거든요. 전거리 교화소가 얼마나 악독한지는 다 알아요.

함경도 사람들에게 악명높은 곳으로 알려졌다는 구금시설인 전거리 교화소. 탈북여성 양은경 씨는 남한에 정착하기 전인 지난 2007년 7월 중국에서 강제북송을 당해 전거리 교화소에 수감됩니다. 그는  불법도강 즉 탈북이란 죄목으로 2년형을 받고 1년 6개월만에  대사면을 받아 석방됐습니다. 당시의 기억은 떠올리기도 싫다며 양 씨는 북한당국에 이런 말을 합니다.

양은경: 사람으로서 인간대우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우리가 죄를 짓고 싶어서 죄 지은 것이 아니잖아요. 나라가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어 놨잖아요. 그런데 우릴 죄인취급 하고 인간취급을 안하니까 정부가 이것을 알고 인간다운 대우를 해주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먹고 살길을 찾아 도강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으로 인해 중국에서 잡혀 와서는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는 것이 억울했다는 겁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에 대해 좀더 들어봅니다.

양은경: 빈대가 많았어요. 슥슥 긁으면서 자고 겨울이니까 좁은 바닥에 150명이 자니까 겨울에도 속옷만 입고 맨바닥에 자거든요.

기자: 겨울에 속옷만 입고 잔다고요?

양은경: 더우니까요. 좁은 방에 사람이 많으니까요. 대기 온도는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덥거든요. 밑에서 자는 사람은 춥고요. 아랫목만 따뜻하고 변소 있는 곳 온돌은 차거든요. 거기서는 쪼그리고 자거든요.  그리고 침대 위에서 자는 사람은 다 붙어 자니까 덥고요.

기자: 잠을 제일 방해하는 것이 빈대였습니까?

양은경: 네, 빈대가 심해요. 물려서 긁으면 확 번져요. 한 달에 한 번 면회 오는 가족에게 약을 가져오라고 해요. 부모들이 가져오면 이겨내지만 거기서 이겨 내지 못하는 사람은 죽고.

집단생활을 할 때 제일 경계해야 하는 것이 위생입니다. 특히 150여명이 한방에서 지냈다면 청결은 전염병 예방을 위해 필수였을 텐데요. 현실을 그렇지 못했습니다.

기자: 세수하는 세면대는 밖에 있죠?

양은경: 겨울에 얼음구멍을 까고 씻었습니다. 세면장이 있는데 물이 안 나와서 세수도 못 합니다. 밖에  나가면 해방입니다. 얼음이라고 까고 씻거든요. 여자들 생리대(천으로 만들었음)를 씻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무조선 밖에 나가면 해방의 날이거든요.

기자: 아무래도 여름보다는 겨울이 힘들었겠어요.

양은경: 네, 여자들은 생리대를 가지고 있으니까…(감옥인데)부끄러움이 있겠어요?. 시설이 안되니까 생리대를 머리에 널어 놓고 창에도 널어 놓고.

기자: 1년 반 있었는데 제일 힘들었던 기억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양은경: 도주해서 붙잡혀 왔는데 남자를 꽁꽁 묶어 놓고 우리보는대서 때려 죽였어요. 뭉둥이로 돌로 쳐 죽였어요. 전거리 교화소에 동을 캐는 광이 있었는데 거기서 일하던 남자 둘이 도망쳤는데 도망치다 잡히면 이렇게 된다고 그랬어요. 시체를 보여줬어요. 그리고 남자들이 일주일에 세번 달구지를 끌고 나가는데 한 달구지에 시체를 세구 실었는데 우리들더러 돌아서게 하더라고요. 그런데 다 보거든요. 남자가 아침에 앞에서 둘이 끌고 뒤에 두 명이 미는데 보니까 맨발이고 홋바지 입고 있는 시체가 세구  보이더라고요. 일하는 곳에서 50미터도 안되는 곳에서 시체를 태우는데 그 사람타는 냄새를 맡고 쓰러졌어요. 감옥 가기 전에는 총살하는 것은 봤지만 일하는 장소 앞에서 사람태우니까 그 냄새가 역하고…

전거리 교화소에서 목숨을 유지하는 것은 북한식 표현으로 하자면 또다른 형식의 전투저럼 느껴집니다. 일반사회에서 통용되는 양보나 배려는 딴 세상의 이야기이고 닫힌 사회에서 벌어지는 비상식적인 일이 일상 벌어지고 있습니다.

양은경: 우리가 남자들 감옥에 들어가서 남자들 일꺼리가 다 뺐기다 보니까 남자들 일이 힘들었는데  하루에 오전에 두 번 오후에 두 번 통나무를 끌어오는 것인데 눈이 안오니까 힘들게 끌더라고요. 내가 목격한 것이 내리막길에서는 나무를 굴리는데 남자가 나무끌던 밧줄에 결려서 같이 끌려  내려가더라고요. 선생님이 오늘 본 것 못본 것으로 해라 이랬어요. 겁을 주거든요.

한달에 한 번 면회를 오는 가족이 있는 사람은 펑펑이 가루를 받아서 교화소에서 주는 모자란 식량을  대처할 수 있었지만 중국에서 오래있다 잡여 온 여자들은 찾는 이가 없어 꼼작없이 영양실조에 걸렸다고 양 씨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선 수감자들끼리 한사람을 몰매주는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기자: 구타는 어떻습니까?

양은경: 감옥 규정을 어기면 전 중대가 처벌 받아요. 잘못한 한 사람 때문에 전 중대가 처벌 받는 다고 해요. 그러면 수감자들이 반발심이 나서 그 사람을 때려요. 너 때문에 처벌 받는 다고

기자: 선생님이 때리는 것이 아니고 같은 죄수들이 때린다?

양은경: 네, 여자들도 때려요. 전 중대원이 처벌을 받으니까요? 죽도록 때리게는 못해요. 선생님도 처벌을 받으니까.

교화소를 나올 때는 안에서 있었던 일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나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절대 비밀은 없는 법.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전거리 교화소의 일상은 세상에 많이 알려졌습니다.

양은경: 한마디로 인간다운 대우를 해달라는 겁니다. 여자 생리가 있는데 그 날도 지켜주고요. 여기는 감옥에 가면 해주잖아요. 거기는 내의를 찢어서 만들어야 되지. 한마디로 말해 감옥에 넣어도 인간답게 대우해 달라는 겁니다. 위생시설도 하나 안되고 오직하면 똥깐이라고 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전기가 마비 되니까 수도도 안 되고 한 달에 한 번 목욕을 하는데 한 개 작업반이 목욕을 하면 다음 반을 위해서  뗄나무와 물을 다 해놔야 합니다. 그래도 그 물이 모자랍니다. 밖에 나가는 날이 해방의 날입니다. 물을 마음대로 쓰잖아요.

기자: 거기 있는 사람들은 양치질은 생각도 못하겠네요

양은경: 아휴…양치질을 어떻게 해요 먹을 물이나 겨우 처려지는데. 밖에서 들어갈 때 먹을 물을 가지고 들어가요. 그래야 우리가 밤에 먹거든요.

외부 세계에서는 북한 구금시설에서 자행되는 인권침해 사실에 대해 우려합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윤여상 소장입니다.

윤여상: 일차적으로 사람의 몸을 구속 하는 것은 법률에 의한 것이야 하고 공정한 사법적 절차와 판결에 의한 것이야 합니다. 북한에서 물론 재판에 의해 형을 선고 하는 것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법률에 의하지 않고 재판 절차 없이 구금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국제사회의 당연한 비판 대상이 되는 것이고 북한 법률에 의하더라고 이것은 위법한 행위인 것입니다. 일단 법률에 의하지 않고 사람에 대한 구속과 처벌과 집행이 이뤄진다는 겁니다.

또 하나는 북한 내에서 북한 법률의 근거를 갖지 않고 수많은 구금시설이 운영되고 처벌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것 자체에 대해 북한 당국이나 주민들이 이것이 불법이라든지 부당하다든지 이런 인식을 못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북한 사회나 교육과정 자체가 법치주의 인권이라 하는 것 법에 의해야한다는 자체 인식이 없기 때문 이거든요. 일반사회에서보면 당연하게 큰 인권의 문제고 불법사항인데 북한주민들은 그것이 불법인지 아닌지 인식 자체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 교육을 받은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함경북도 회령시에 있는 전거리 교화소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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