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외래어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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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거리에 외국어로 된 간판들이 즐비하다.
명동 거리에 외국어로 된 간판들이 즐비하다.
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각 나라마다 자기 나라의 말이 있습니다. 남북한은 같은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서로 언어소통하는데 문제가 없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북한주민이 남한에 가면 외래어 때문에 정착초기에는 많은 고생을 합니다. 오늘은 남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외래어에 대해 알아봅니다.

이휘호: 여기 남한분들은 외래어를 많이 써요. 글로벌 사회라 세계적 기업도 많고 외국 사람도 많이 오고 해서인지는 모르겠는데 북한에 비하면 외래어가 너무 일상생활에 많이 침투해서 어떤 때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남한생활 9년차로 청진이 고향인 이휘호 씨는 분명 언어소통에 문제가 있어다고 말합니다. 북한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일인데 정체를 알수 없는 단어를 대화에서 또는 방송에서 자주 접했다는 겁니다.

이휘호: 체육용어 중에는 페널티킥을 북한에서는 벌칙차기라고 하고 코너킥은 구석차기 라고 하고요. 남한의 체육용어는 몽땅 외래어라 못알아 듣겠더라고요. 배구에서도 막기를 블로킹리라고 해서 무슨 말이지 했는데 하는 동작을 보니까 막기더라고요. 그래서 아, 영어를 쓰는구나 하고 알았죠.

남한사람들은 다 알아듣는데 북한에서 간 이 씨는 혼자 무슨 말인지 몰라서 당황스러웠는데요. 이 씨가 말한 것처럼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 그리고 각국 외국인이 많이 찾는 남한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세계속의 한국이라는 구호로 내세우며 영어를 일상생활에서 많이 혼용해 쓰면서 지금의 형태에 이르게 됩니다.

이휘호: 그런데 북한은 외래어를 극력 반대하거든요. 고유한 우리말을 살려쓰자 해서 외국어 쓰는 것이 없어요. 옛날부터 쓰던 말은 일제강점 시기부터 내려와 굳어진 것 예를 들어 요이 땅, 준비 땅 이런 것이 있어서 그러지 다른 것은 없어요. 특히 영어가 일반에 통용되는 대중어는 없어요.

기자: 그렇다면 라디오, 텔레비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휘호: 텔레비전하고 라디오는 외래어라고 생각 안 했어요. 텔레비전은 옛날부터 북한에서 생산했다고 해도 처음부터 우리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사용하는 것 같아요.

또 다른 탈북여성입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노우주 씨는 2007년 11월부터 남한생활을 했습니다.

노우주: 저도 처음에는 외래어 때문에 엄청 다른 탈북민 친구들이 경험하는 그런 어려움을 겪었거든요. 어디 안내원 이렇게 하는데 여기는 관광 가이드 무슨 가이드란 말을 쓰고 해서 이게 무슨 뜻이지? 알고 보니까 안내원이란 말을 가이드라고 하더라고요.

노 씨가 말한 것처럼 가이드란 말대신 안내원이라고 하면 상대방이 다시 한 번 처다볼 겁니다. 이 사람은 어디에서 온 사람이지 하고 말입니다. 그만큼 요즘은 가이드란 말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는 거죠.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노우주: 결혼식을 한다고 해서 웨딩홀에 가면 뷔페음식이 있고 해서 뷔페란 것이 뭐지 하는 의문도 들었고요. 그래서 물어보니까 음식을 많이 해놓고 자기가 먹고 싶은데로 셀프로 가져다 먹는 거래요. 그런데 처음에는 셀프가 뭔지도 몰랐어요. 다시 물어보니까 자기별로 가지고 와서 먹는 것을 셀프라는 거예요. 영어로 그렇게 얘기를 한다고 해서 당황했던 적이 많죠.

모르는 단어가 하나만 있어도 눈치로 또는 전체 문맥을 통해 짐작을 하겠지만 뷔페를 셀프로 먹어라 이렇게 한문장 안에 중요단어 두 개가 겹치기라도 하면 당황스럽습니다. 뷔페는 여러 가지 음식을 벌여 차려놓고 손님이 알아서 골라 먹도록 하는 것을 말하고 쎌프는 자기가 알아서 하라는 것을 뜻합니다.

대화 중에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도 외래어 또는 영어는 사회 곳곳에서 탈북민을 당황하게 합니다. 함경북도 장흥이 고향인 황금희 씨는 2001년 탈북해 현재 남한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지만 정착 초기에는 영어를 몰라 벌어졌던 씁씁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황금희: 서울에 보면 대학로가 있는데 제가 친구들과 놀다가 갑자기 화장실을 가야했어요. 보통은 화장실을 가면 남녀 그림이 표시로 돼 있는 것만 저는 항상 봤었어요. 그런데 그 화장실은 왠지 모르게 그림이 없고 그냥 영어로만 써있더라고요. 저는 처음에 영어를 잘 몰랐기 때문에 그림이 없어서 남녀공용 화장실인줄 알았어요. 볼일을 마치고 나왔는데 화장실에 남자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왜 나를 다 쳐다볼까 했지만 아무 생각없이 나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제가 남자 화장실에 들어갔던 거예요. 그것도 그날 확인한 것이 아니라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그 건물을 지날 일이 있어 갔는데 그때 제가 남자 화장실을 들어갔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이 한 번 있었어요.

몰랐기 때문에 당당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알고서는 담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빨개지고 부끄럽게 느껴진다고 하는데요. 이런 일은 남한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말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까지 탈북자들이 정착과정에서 경험하는 일입니다. 다시 청진 출신의 이휘호 씨의 경험담 들어보시죠.

이휘호: 중고등학교를 상대로 통일교육을 한다고 해서 대구시 교육청에서 탈북자 일부를 선발했어요. 통일교육원에서 강사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조직했는데 그때 교육청 사람이 우리들 모아놓고 식사를 하면서 얘기할 것 있으면 얘기해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알리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날뻔 했어 이랬는데 그때 같이 있던 사람이 하는 말이 그렇기때문에 그런 감정을 콘트롤 잘해야해요. 이러는 거예요. 콘트롤이 뭐지 했는데 보니까 감정조절을 말하더라고요. 후에야 알았는데 여기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일상용어로 쓰더라고요.

기자: 어느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입에 베서 쓰는 경우가 있단 말입니다. 스트레스가 그 좋은 예가 아닐까 한데요. 그말은 알았습니까? 어땠어요?

이휘호: 몰랐죠. 스트레스가 뭐지 했는데 …제가 집에 와서 뭔가 해서 찾아봤어요. 견딜수 없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말하는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심각한 말이구나 했죠. 우리도 솔직히 북한에서 보면 스트레스를 엄청 받죠. 상사의 압력 그리고 일 못하면 공동적인 토론을 해서 사상투쟁이나 주생활총화를 통한 비판은 엄청 스트레스거든요. 이것을 정신적 긴장과 압박감에서 오는 미운감정으로 알고 있지 그것을 스트레스라고 표현을 안해요. 거기는 구체적인 용어가 없는데 여기는 스트레스라고 단정 짓더라고요.

기자: 남한생활을 얼마나 하니까 외래어가 익숙해 지던가요?

이휘호: 남한생활이 한 2년 지나니까 그게 자기도 모르게 입에 배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말이 그렇게 나가더라고요. 거기에 녹아들어가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뜻을 정확히 알게 되니까 그 말이 나오더라고요.

기자: 그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휘호: 처음에는 자기나라 말이 있는데 왜 그렇게 말하지 했지 했는데 제가 그 속에 녹아들어가니까 거기에 적응이 되고 비판적인 감정이 안나오더라고요. 처음에는 우리 고유말을 두고 왜 이러지 했는데 나도 쓰니까 비판이 안나가요.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남한에서 자주 쓰는 외래어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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