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우상화 - 김일성 혁명송가 (1)

김주원· 탈북자
201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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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청년중앙회관에서 청소년들의 회고음악회 '영원한 태양의 노래'가 열리고 있다.
평양 청년중앙회관에서 청소년들의 회고음악회 '영원한 태양의 노래'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북녘 동포 여러분! 지구상에 2백여 개가 넘는 나라가 있지만 북한처럼 국가지도자가 3대에 걸쳐 대를 이어가면서 가족 안에서 권력을 승계하는 나라도 없으며 국가수반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는 나라도 북한이 유일합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권력 세습과 우상화선전을 위해 숭배가, 칭송가, 혁명가요 등으로 불리는 이런 노래들이 한 몫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김일성의 혁명송가, 북한에서 소위 ‘불멸의 혁명송가’라고 불리고 있는 노래들이 창작되었던 과정들을 돌이켜보고 그 노래가 북한사회에 미친 반동성에 대해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을 찬양하면서 가장 먼저 창작된 노래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입니다. 리찬이 작사하고 김원균이 작곡한 ‘김일성 장군의 노래’는 1947년에 창작되어 보급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그때부터 이 노래가 북한주민들이 즐겨 불렀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당시에는 행사 때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가 아니라 북한의 애국가가 불리군 하였습니다. 1950년대에는 북한주민들이 김일성에 대한 노래보다 구 소련의 군가나 중국 팔로군 노래 등을 더 즐겨 불렀습니다. 소련 가요 ‘카츄사’, ‘모스크바의 밤’ 등 많은 소련 노래들이 북한주민들의 애창곡으로 불려졌던 것은 해방되어 소련 붉은군대가 군정을 실시하면서 많은 소련 군인들에 의해 전파시켰기 때문입니다. 6.25남침전쟁 시기에 중국인민지원군이 참전하면서 중국 노래도 불리면서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 노래보다 소련과 중국 노래들이 북한주민들의 애창곡으로 불리워졌습니다.

김일성은 1962년 3월 11일에 북한의 음악가들을 불러놓고 “우리의 음악은 반드시 조선적인 것이 바탕으로 되어야 하며 우리 인민의 감정에 맞아야 한다”고 강조하였고 그 다음해에 나온 노래가 ‘수령을 따라 공산주의에로’가 윤복기에 의해 창착 되었습니다. 창작가들은 충성경쟁차원에서 김일성을 찬양하는 노래들을 창작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당시에 나온 노래들로는 ‘우리 행복 끝없어라’, ‘환희’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당시 북한의 중앙당과 내각에는 김일성의 빨치산파와 박금철 부수상을 중심으로 한 소위 ‘국내파’라고 불리던 갑산파가 서로 견제하고 있어 김일성을 숭배하는 노래들이 지금처럼 불리워지지 않았습니다. 1967년에 갑산파가 숙청되면서 1968년부터 김일성을 찬양하는 노래들이 대대적으로 창작되어 조직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을 숭배하는 노래들이 창작되는 과정을 보려면 ‘조선중앙년감’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1968년도 년감에는 “1967년에 문학예술부문에서는 장시, 서정시, 소설, 기행문, 극문학 작품들과 음악, 무용 작품들, 미술작품들에서 수령의 형상을 적극 창조하였다”며 대표적 작품들 중 가요로는 ‘4천만은 수령을 노래합니다’를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1968년에는 음악무용극 ‘밝은 태양아래’가 창작되면서 김일성을 처음으로 태양 같은 존재로 칭송하면서 많은 노래들이 창작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68년부터는 노래가사들에서 ‘수령’ 대신에 ‘김일성’의 이름을 더 자주 올랐습니다. 대표적인 노래로는 국립민족가극단에서 창조한 가극 <해빛을 안고> 에서 주인공이 부른 ‘김일성 장군님은 우리의 태양’입니다. 당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당에서 근무하였던 김정일이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가요들을 더 많이 만들데 대해 강조하면서 나온 노래가 ‘김일성 원수님 만수무강 축원합니다’입니다. 김정일은 중앙당 선전선동부를 책임지면서 1969년에 혁명가극 ‘피바다’와 혁명연극 ‘성황당’을 비롯한 수많은 가극과 연극을 창작하도록 하면서 더 많은 노래들이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김정일의 지시로 1969년 한 해 동안에 공모된 연극 대본이 700여 편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1970년도 조선중앙년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70년에는 김일성을 숭배하는 가사들로 노래집 ‘충성의 한길에서’가 출간되어 보급되었는데 대표적인 노래들로는 ‘김일성 원수님께 드리는 노래’, ‘백두산에 장군별 솟는다’ 등입니다. 1972년도 년감에는 "우리의 작곡가들은 1971년 한해 동안에 ‘김일성 동지 혁명역사 연구실도록해설가요’ 64편과 ‘혁명과 건설에 관한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해설가요’ 100편을 창작함으로써 근로자들을 당의 유일사상, 김일성 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무장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갑산파가 숙청되고 1967년부터 1971년까지 5년 동안에 창작 보급된 대표적인 노래들로는 ‘김일성 원수님 만수무강을 축원합니다’, ‘김일성 장군님은 우리의 태양’, ‘김일성 원수님은 위대한 인민의 수령’, ‘수령님 한 품속에 우리는 사네’, ‘수령님 손길 따라 승리하리라’, ‘수령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네’, ‘충성의 마음 수놓아갑니다’, ‘10대정강의 노래’, ‘우리나라 사회주의제도 한없이 좋네’ 등 입니다.

김일성의 생일 60돌을 맞는 1972년에 창작된 노래는 ‘온 세상이 수령님을 노래합니다’, ‘수령님의 해빛아래 우리 녀성 행복합니다’이고 1973년에는 ‘수령님 다녀가신 사랑의 길이여’, ‘수령님 사랑은 끝이 없다네’, ‘수령님께 충성을 다하렵니다’ 등입니다. 당시 10대원칙과 주체사상이 북한사회의 모든 조직들에서 주요 정치사상학습의 기본으로 제시되면서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김일성 찬가들이 더 많이 창작보급되었습니다. 1975년도 년감부터는 그 전해에는 없었던 김일성의 초상화가 년감의 앞장에 실렸고 그 뒷장으로는 그해에 창작된 노래들이 실렸습니다. 북한당국은 1975년을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의 길에 나서신지 50돌, 조국을 광복하신지 서른돌이 되는 해”라며 모든 작가들과 작곡가들이 노동당의 문예방침을 철저히 관철할 데 대한 지시를 하달하였습니다. 1976년 년감을 보면 “1975년 한해 동안에 6,700여 편의 음악작품이 창작되어 노동당창건 30돌경축 음악축전무대를 빛나게 장식하였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김일성의 생일 65돌을 맞으면서 북한에서 김정일의 지시로 대집단체조 ‘조선의 노래’가 창조되면서 수많은 노래들이 창작 보급되었습니다.

‘어버이수령님 만풍년 주셨네’, ‘수령님 한분만을 모시렵니다’, ‘수령님 품속에 행복한 내 나라’, ‘수령님을 우러러 받드는 마음’, ‘내조국은 은혜로운 수령님 품이라오’, ‘내 조국은 수령님 모신 한가정’, ‘수령님 사랑 넘친 내 나라’ 등 지금도 조선중앙텔레비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노래들도 1970년대에 창작된 노래들입니다. 결국 이 노래들이 40년도 더 넘게 불리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1994년에 김일성이 사망하자 노래 ‘김일성 대원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가 창작되었고 그 다음해인 1995년에는 집체 작사, 전정근 작곡한 노래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네’, ‘1997년 4월 15일 김일성의 생일 85돌을 맞으며 ‘태양절’이 제정되면서 ‘수령님은 영원한 인민의 태양’ 노래가 창작되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노래들은 한국대중음악의 영어식 표현인 케이팝(K-POP)으로 불리며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습니다. 듣기 만해도 춤이 절로 나오고 생기를 북돋아주는 한국의 음악이 지구촌을 지배하는 이유는 우리민족의 예술적 끼가 특출한 데도 있지만 노래의 가사들이 한사람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 전체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는 생활 가사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온 많은 탈북민들이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생활을 진실로 묘사하는 노래에 매혹되었고 북한처럼 듣기도 부르기도 싫은 김부자의 찬양가만 부르기를 강요하는 북한이 싫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태양절이면 외국에서 예술인들을 불러다가 국가자금을 탕진하면서 김부자의 노래를 부르도록 하는 4월의 친선예술축전을 보다가 한국노래를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는 것이 탈북민들의 하나같은 심정입니다.

북한당국은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 지금은 김정은에 대한 칭송가들을 만들어내 주민들에게 부를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노래마저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는 북한에 대해 가장 낙후한 독재 국가라며 비난합니다. 청취자여러분들은 노래를 통해 우상화선전을 극대화하려는 북한당국의 반동적인 속심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김정일의 첩에 불과한 재포출신 무용배우 고영희와 김일성도 모르게 동거하면서 출생한 사생아인 김정일은 어릴 적 아버지인 김정일,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찍은 사진 한 장 없지만 찬양가에는 버젓이 백두혈통으로 둔갑되어 있습니다. 다음시간들에는 김정일과 김정은의 찬송가 창작과정과 그 반동성에 대해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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