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회피 (1)

서울-이현주 leehj@rfa.org
201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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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남쪽에서 많이들 하는 얘깁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남한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탈북자가 보는 남한 사회, 남한 사람에 대한 얘기는 그 동안 자주 전해드렸는데요. 이번엔 반대로 남한 사람들이 보는 탈북자 그리고 북한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칭찬도 있겠지만 불편한 얘기, 조금 신랄한 비판도 피하지 않고 진솔하게 담아보겠습니다.

이 시간의 제목은 <남과 북, 우리는>. 지금 ‘우리’의 상태를 함께 얘기해보고 진단해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진행자 : 이 시간 함께 해주실 분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영석 : 반갑습니다.

진행자 : 오늘이 첫 시간입니다. 저보다는 본인이 직접 소개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이영석 : ‘반갑습니다’. 천재천사 이영석이라고 합니다. 저는 현재 <나우>라는 북한인권 단체에서 북한인권 개선 운동과 탈북청소년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천재천사’라는 건 뮙니까? (웃음) 본인의 별명이신가요?

이영석 : 다들 ‘천재천사’라고 소개를 하면 제가 굉장히 똑똑하고 천사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데 그런 뜻은 아니고요. (웃음) 제가 북한이탈주민들과 같이 일하고 북한 인권운동을 할 때 천재적인 감각과 천사 같은 마음이 없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갖기 위해 저 스스로 최면을 걸기 위한 호칭입니다.

진행자 : 남들이 아니라 본인한테 세뇌를 하시는 것이군요. 천재적 감각과 천사 같은 마음이 없으면 안 되는 일, 그러니까 그렇게 쉽지는 않은 일이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쉽지는 않은 일이죠. (웃음)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시게 됐는지, 탈북자들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어요?

이영석 : 저는 북한, 통일에 별로 관심 없이 살던 방황하는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대학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됐는데 그때 한 탈북청소년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꼭 저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았어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영어 사전을 샀어요. 그 전까지 공부를 안했습니다. 운동을 하다가 다쳐서 방황을 하던 시기였는데 그 탈북청소년이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저의 그 모습과 너무 흡사해서 관심을 가지게 됐고 청소년들에게 다가서다보니 이 일을 하게 됐습니다.

진행자 : 대학 때부터면 꽤 길게 일하셨을 것 같은데요.

이영석 : 2001년부터 이 활동을 하고 있으니 자원봉사 기간까지 합치면 한 1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렸네요.

진행자 : 강산이 한번하고도 절반은 더 바뀐 시간이네요. 오래하셨습니다. (웃음) 제가 앞에서 남한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청취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시작했는데 이영석 씨에게도 여쭤보겠습니다. 탈북자, 북한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영석 : 뭐라고 딱 규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가 언어가 화려한 편이 아니지만 제가 그 질문에 들었던 생각은 음식에 비유하고 싶어요. 냉면을 예로 들면 마지막에 육수를 붓지 않은 물냉면 같은 느낌? 그 위에 조금만 더 예쁘게 꾸민다면 화려하고 맛있는 제값을 잘 받을 수 있는 냉면이 될 것 같은 느낌이요.

진행자 : 아직 좀 다듬어져야 하는 원석이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그 동안 주로 청년들, 특히 탈북 청년들을 위한 사업을 많이 진행해 오셨습니다. 함께 지내며 이 친구들의 장단도 많이 보셨을 것 같은데요. 첫 시간이면 칭찬부터 해야 하는데... (웃음) 반대로 좀 하기 힘든 얘기부터 해보겠습니다. 문제가 되는 점은 뭐라고 보십니까?

이영석 :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진행자 : 개개인의 성향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책임을 지기를 꺼려한다’고 일반화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경험에 의하면 이 문제를 공통적으로 느끼셨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이영석 : 무조건 다 책임을 지지 않고 비겁하다는 뜻은 아니고요. 일단은 책임지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가 맡은 일을 다 한다... 이건 당연한 건데요. 그 과정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사과하는 방법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서 굉장히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차이 때문에 남한 주민들이 생각할 때 북한 이탈주민들이 잘못됐다, 무책임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 : 실제 사례를 소개해 주시면 이해가 빠를 것 같은데요.

이영석 :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요. 어떤 탈북대학생이 많은 대학교 동아리, 그러니까 북쪽식으로 하면 소조입니다. 그 소조에 활동비가 나왔는데 소조 회장이 그 활동비를 본인이 써버렸습니다. 악의적으로 다른데 사용한건 아니지만 본인이 사용해도 되는 줄 알고 개인용도로 사용했어요. 이 문제가 발생이 되고 어떻게 할거냐, 책임을 지라고 하니까 그 학생은 학교를 떠나버렸어요. 연락도 안 받고 소조 활동도 안하고 학교도 그만 둬 버렸습니다.

진행자 : 그러니까 소조 활동비는 그 동아리에 주는 건데 회장이 자기한테 주는 수고비라고 생각했나보네요. 근데 그 소조 활동비라는 게 보통 그렇게 큰돈은 아닌데요?

이영석 : 네, 그렇죠. 1년 동안 활동비로 나온 돈이 한국 돈으로 백만 원, 1천 달러 정도 되는 돈이었어요. 큰돈은 아니죠. 문제는 책임에 대해 생각의 차이가 있는 거죠. 예를 들어 남한친구들 같으면 먼저 미안하다 사과를 했을 거고 내가 이렇게 잘못 썼다, 이 부분을 내가 바로 잡도록 노력하겠다고 서로 이야기를 해서 바른 방향으로 잡아 가는 게 일반적인데요. 너무 미안한 마음이 커서 어떻게 할 줄 몰라서인지 연락을 안 받고 그 자리를 이렇게 아예 떠나 버리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진행자 : 그런 사례로 선생님께 상담을 해오면 어떻게 말씀해주시나요?

이영석 : 학생뿐만 아니라 직장 내에서도 이런 일이 많습니다. 제가 항상 말씀 드리는 것은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로 해라. 사과라는 것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아니라 내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과하는 말보다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 하더라고요. 실수는 잘못이 아니라고 많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한테 이 돈을 줄때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잖느냐, 그래서 내가 오해를 해서 잘 못 해석해서 이렇게 쓴 것은 실수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실수도 사과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수면 사과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다 실수를 한다. 처음부터 제대로 정확하게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진행자 : 책임 전가, 자기는 한 발 빼는 모습이네요. 아까 직장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다고 하셨는데요?

이영석 : 네, 예를 들어 정식적으로 된 문건을 전달해야 하는데 점심시간이라고 나갔다 온 사이에 바람에 날렸는지 어디 흘렸는지 책상 위에 그 문건이 없어진 겁니다. 남쪽에선 보통 직장에서 문건을 받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두거든요. 누구누구가 가져갔는데 그 문건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됐으니 책임을 지라고 했는데 내가 없앤 것이 아니다, 누군가 가져갔다 그러니까 나는 책임이 없다... 이런 태도 때문에 회사에서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진행자 : 그런 경우에도 내가 잘못한건 아니니까 내 책임은 아니라는 거네요.

이영석 : 일반 남한 주민들의 관점에서 보면 비겁하고 무책임한 것이죠. 주로 살아오면서 책임을 지고 해결하는 과정이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생활하다가 오셨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은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 : 이런 문제로 상담을 하다가 ‘내가 보기에 네가 잘못한 것 같다’고 말씀하시면 수긍을 하는 편입니까?

이영석 : 금방 오신 분들은 거의 수긍을 안 하세요. 끝까지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 실수라고 인정을 안 하려고 하시고요. 3, 5년차 되신 분들은 제 잘못인 것 같다고 인정을 하는 편입니다.

제가 하도 신기해서 많은 분들에게 여쭤봤어요. 왜 인정을 안 하십니까? 가장 많이 나왔던 대답이 보위부에 끌려가든 생활총화 할 때든 내가 잘못을 인정했을 때 나뿐만이 아니라 가족이 모두 죽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뭔가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목숨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반사적, 본능적으로 거부를 한다고 설명해줬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성향을 없애려면 한국 생활을 좀 더 오래 해야 할 거라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진행자 : 결국 북한사회에서 젖어있던 문제들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 같네요.

이영석 : 예를 들면 탈북과정에서도 남한에 가려고 했다는 말을 하는 순간에 문건 자체가 다르게 만들어지잖아요. 살아오면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 : 북한 사회가 좀 그런 것 같습니다. 남한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 같은 걸 알판으로 보다가 보위부 눈앞에서 들켜도 죽어도 안 봤다, 나는 보지 않았다고 우겨야 되는 사회라고 들었어요.

이영석 : 남한에서는 영상물로 증거를 채집하지만 북한은 아직 자백하는 걸로 주로 문건을 작성하니까 일단 남한식 표현으로 하자면, 우기면 된다라는 게 있죠.

‘탈북자’가 다 무책임하고, 책임을 회피한다고 일반화 하지 말라, 남한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지 않겠느냐...? 물론 그렇죠. 그리고 그런 남한 사람들도 똑같은 평가를 받고 더 혹독한 대가를 치릅니다.

‘우리는’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해 드리는 사례들은 이영석 선생의 15년 동안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구성될 예정이고요. 남한 사람을 미화하거나 비판을 위한 비판이나, 평가는 하지 않도록 최대한 객관된 입장에서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얘기들 속에 남북이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남북이 진정한 ‘우리’로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책임과 회피 뒷얘기 이어갑니다.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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