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고위층 숙청과 처형 (3)

워싱턴-전수일, 강철환 chuns@rfa.org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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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이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체포되는 모습.
장성택이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체포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매주 화요일 북조선 내부의 소식과 정보를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건, 사고, 동태, 동향에 관한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청취자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설명할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와 이 시간 함께 합니다. 북한전략센터는 북한 내부의 민주화 확산사업과 한반도 통일전략을 연구하는 탈북자 단체입니다.

전수일: 북한의 김정은이 집권을 전후해 지난 9년간 처형한 고위층 간부와 가족이 420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전략센터가 다른 인권단체들과 협력해 북한의 현직 간부 및 고위탈북자, 일반탈북자 등을 대상으로 심층면접 및 서면으로 조사한 결과인데요, 명단에는 아버지 김정일의 넷째 부인 김옥, 고모부 장성택, 암살된 이복 형 김정남 등 친인척을 비롯해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인민군 총참모장 리영호, 내각부총리 김용진 등 김정은의 최 측근 참모 들과 핵심 세력 간부들 다수가 잔인하게 처형당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번 조사를 이끈 북한전략센터 강철환 대표와 숙청 처형당한 주요 인물들과 그 배경을 살펴 봅니다.

강 대표님, 오늘은 김정은 정권 들어 가장 잔혹한 집단 숙청과 학살로 간주되는 2013년 장성택과 그의 일파 처형에 관한 조사 결과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죠. 그야말로 김정은 집권 2년차, 
공포정치의 상징처럼 된 사건 아니겠습니까?

강철환: 그렇습니다. 저희 북한전략센터와 북한인권단체들이 조사한 바로는 장성택 사건에서는 그 동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숙청 처형 당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약 2만 명 가까이 처형되거나 숙청된 엄청난 사건입니다. 장성택 사건은 사실상 정치노선과 개혁개방을 둘러싼 김정은 세력과 장성택 세력 간의 권력 투쟁이었고 북한체제를 암흑세계로 완전히 묻어버린 사건이기도 합니다. 김정은에게 객관적인 제안을 하고 제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어른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처형되면서 더 이상 북한내부에서는 김정은에게 그 어떤 조언이나 제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남아있게 되지 않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전. 고모부 장성택 처형 배경에 최고 지도자 자리를 세습한 김정은과의 사이에 알력이 늘어나고 부하들 사이에 암투도 있었다는 얘긴데요, 조사 결과에서는 이와 관련해 제시된 사례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강. 김정은 집권초기 모든 권력은 사실상 장성택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국정전반에 대한 아무런 경험도 없는 김정은은 장성택이 제시한 의견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상당수 인사도 장성택에의해 천거되고 국정운영도 장성택의 바람대로 흘러갑니다. 장성택은 노동당 38호실을 해산하고 당 경공업부에 넘기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려고 했고, 노동당 행정부 54부를 확대시켜 자금을 확보해 내각경제를 정상화시키려고 했습니다.   3차 핵실험을 지연시켜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사실상 김정은을 꼭두각시로 앉혀놓고 북한을 개혁, 개방의 초기단계로 이끌어내려고 했습니다. 김정은이 사치성 건물 건축에 매달리자 그것보다 국가경제의 인프라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하다가 미운 털이 박히기도 했습니다. 장성택이 권력을 일정부분 장악하자 상당수 세력이 모여들었고 이러한 상황은 김정은 세력을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장성택 숙청을 유발하는 결정적 사건으로 보이는 일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황해도 지역에 인민군 특수미사일 기지와 노동당 행정부 54부 외화벌이 기지에서 세력싸움이 벌어졌는데 이 사건을 두고 당시 리영길 총참모장은 제안서를 김정은에게 올려 장성택이 보유한 무력을 인민무력부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이 이 제안서를 받아들여 그렇게 하라고 지시를 하고 그 결정문을 리영길이 직접 노동당 행정부를 찾아가 장성택의 수하 장수길, 리용하 부부장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최고사령관인  김정은의 명령에 불복하는 장수길 부부장의 발언이 나오고 ‘장성택 부장의 승인은 왜 안 받느냐’고 말하자 그곳에서 리영길과 장성택 세력 간에 싸움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을 트집 잡아 김정은은 장성택 일파가 자신의 명령도 듣지 않고 종파를 만들어 반당활동을 한다고 규정합니다.

전. 장성택은 김일성의 사위였으니 그의 숙청에는 고모 김경희가 큰 문제거리였겠네요.

강. 그렇습니다. 장성택 사건이 발생하자 이 사건을 처리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김경희 전 노동당 경공업부 부장이었습니다.  김경희는 김정일의 친동생이고 김정은에게는 고모가 됩니다. 유일한 적통 백두혈통이고 집안의 어른입니다. 저희 조사 내용에는 두 가지 증언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김경희가 장성택 처형을 찬성했고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이 결심할 수 있었다는 설입니다. 
두 번째는 김경희가 장성택이 잘못한 것이 드러난다면 혁명화 교육은 보낼 수 있지만 처형은 절대 반대했다는 주장입니다. 
저희는 두 번째 주장에 신빙성을 더 부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장성택을 죽이는 것은 김경희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명분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주민들에게 수령의 유일한 딸의 남편이 반역자라는 것은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고 제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일을 극단적으로 처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성택은 결국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숙청과정이 어떻게 진행됐을지 궁금합니다.

강.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하기로 결정하고 당시 국가보위성 김원홍 보위상에게 그의 처형을 명령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김경희가 김정은에게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하다가 김정은의 생각이 완고하자 공식 절차를 밟게 됩니다. 노동당 고위탈북자의 증언과 여러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김경희가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자신의 공식 입장을 제출한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당시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 1부부장은 김경희가 장성택을 혁명화 보내는 것까지는 찬성하지만 그를 처형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고 합니다. 김경희의 의견은 함부로 묵살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당조직지도부는 내부 회의를 거쳐 김경희의 의견이 타당성이 있다고 보고 장성택을 혁명화 보내는 것이 옳은 결정이라는 의견서를 김정은에게 제출하게 됩니다. 김정은은 이런 의견을 묵살하고 결국 장성택을 처형하게 됩니다.

전. 당시 장성택을 처형하기 전에 김경희를 회유하기 위한 여러 가지 공작들이 있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강. 장성택 처형사건에서 가장 큰 배신자는 사실상 최룡해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장입니다. 최룡해와장성택은 오랜 기간 함께 동고동락한 김정일의 최측근들입니다. 최룡해가 곤경에 빠졌을 때 장성택이 구해주기도 한 인연도 아주 깊습니다. 하지만 김정일 사망이후 최룡해는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오릅니다.  사실상 권력의 2인자입니다. 
하지만 북한 내에서는 최룡해가 아닌 장성택을 사실상 권력의 2인자로 인정하고 장성택도 최룡해를아우 취급을 하다 보니 최룡해가 장성택에 대해 상당한 질투를 하게 됐고 김정은이 장성택을 죽이려고 했을 때 결국 침묵함으로서 장성택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증언들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김원홍과 최룡해는 장성택의 여자 문제 등 내부 보고서를 가지고 김경희를 찾아가 장성택을성토하고 그를 죽이는데 김경희가 동의할 것을 설득했지만 김경희는 그 보고서를 다 찢어버리면서 '네놈들이 사람이냐'며 격렬하게 반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김원홍 국가보위상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김정은의 지시를 무조건 따른 측면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김원홍은 역대 보위상들이 최고 지도자에게 활용된 다음에는 좌천되거나 숙청당하는, 이른바 토사구팽 당한 사례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의 확고한 결심을 정면으로 거부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총대를 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김원홍은 도가 넘도록 보란 듯이 칼을 휘두르며 장성택 일파를 처형하게 됩니다.

전: 강 대표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내부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지금까지 탈북자단체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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