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테러, 김정은 시대의 새 경향”

워싱턴-변창섭 pyonc@rfa.org
2017-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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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해 말레이시아 경찰관 4명이 26일 북한 국적 용의자 3명에 대한 진술을 듣기 위해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에 들어가 조사를 벌였다고 현지 중국보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사진은 북한대사관을 방문했다 나오는 말레이 경찰관들 모습.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해 말레이시아 경찰관 4명이 26일 북한 국적 용의자 3명에 대한 진술을 듣기 위해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에 들어가 조사를 벌였다고 현지 중국보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사진은 북한대사관을 방문했다 나오는 말레이 경찰관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기자: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최근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이복형 김정남이 암살돼 큰 충격을 던졌는데요. 이 사건은 북한 공작원들이 지시라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북한이란 국가기관이 나서 암살행위에 가담했다는 건데요. 놀랍지 않습니까?

란코프: 제가 볼 때 암살 자체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복형 김정남 암살 사건을 보면 김정은은 자기 할아버지 김일성의 행태를 그대로 흉내낸 것 같습니다. 과거 김일성 시대 북한 공작원들은 김일성을 반대하는 사람들 해외에서 납치, 암살하는 사건을 종종 벌였습니다. 이를테면 1950년대 당시 김일성 개인 독재를 반대했던 노동당 고급간부들과 인민군 군인들은 소련과 중국으로 많이 망명했습니다. 당시 이들의 활동을 막으려 북한 공작원들은 납치 작전을 한 적도 있고 암살 시도까지 했습니다. 당시에 소련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활동에 분노를 이기지 못해서 러시아 주재 북한 대사를 추방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 여파로 말레이시아가 북한 대사를 추방한 것처럼 1950년대 말 소련정부가 북한대사를 추방했습니다. 김정일 시대에 들어서도 북한 공작원들은 해외에서 납치나 암살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의 막이 오르자 해외 테로가 김일성시대처럼 다시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기자: 사실 김정남은 김정일의 장남이고, 김정은의 이복형지만 정치와 별 상관 없이 조용히 해외에서 살던 사람인데 왜 북한은 암살을 감행했을까요?

란코프: 제가 보니까 김정남은 조용히만 살던 사람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우선 김정남의 개인 배경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김정남 부친인 고 김정일 위원장은 사귀던 여성들도 많고 자녀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의 개인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한 정부는 세 명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번째 정부였던 김옥입니다. 김옥과 김정일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고 알려집니다. 그래서 다른 두 명의 정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성혜림입니다. 북한 사람들 가운데 그의 이름을 잘 기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1960년대 매우 유명한 배우였습니다. 그는 원래 유명한 작가였던 리기영의 아들과 결혼했지만 김정일과 사랑에 빠져서 이혼했습니다. 성혜림은 몇 년 동안 김정일과 같이 살았고 둘 사이에 김정남이 태어났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된 사람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성혜림과 김정일 사이가 조금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성혜림은 남조선 출신이니까 출신성분 때문에 후계자인 김정일의 부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결국 두 사람은 사실상 이혼했습니다. 김정일은 책임있게 행동했고 성혜림을 모스크바로 내보냈습니다. 2002년까지 모스크바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결국 모스크바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기자: 성혜림 말고 김정일이 사귄 정부는 누굽니까?

란코프: 성혜림과 이별한 다음에 김정일 위원장은 다른 정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여자도 성혜림처럼 토대가 좋지 않았습니다. 즉 출신 성분에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귀국자 출신입니다. 그 여자의 이름은 고용희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현재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생모입니다. 영화배우로 알려진 성혜림과 달리 고용희는 무용수였습니다.

기자:  영화를 무척 좋아한 김정일은 예술계 여성들을 좋아했을 것 같은데요.

란코프: 물론 그렇습니다. 김정일은 성혜림과 고용희을 정부로 삼았지만 두 정부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언제든 두 정부 간에는 질투가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북한에서 세습정치이니까 성혜림도, 고용희도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 희망을 품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보이지 않는 암투와 다툼이 매우 많았습니다. 고용희는 성공했습니다. 반면 모친 성혜림이 모스크바에서 죽은 무렵부터 김정남은 사실상 북한 땅을 떠나서 해외 망명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로 중국에서 살았습니다.

기자: 김정남은 왜 중국에서 살았을까요? 중국 정부의 보호를 기대했던 걸까요?

란코프: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세계 어디에나 김정남과 같은 사람이 산다면 그 나라의 정부와 경찰, 그리고 보안 기관의 관심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김정남은 물론 중국에서 사실상 보호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중국은 북한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김씨 일가 정권이 무너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혁명이나 정변, 아니면 혼란이 생길 경우 중국은 북한에서 친중 정권을 설치하려는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을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위성 정권을 만들기 위해서 망명 정치인 몇 명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됩니다. 물론 이것은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게 아닙니다. 미국이든 러시아이든 프랑스이든 어디에나 이들 국가가 문제로 생각하는 나라에서 망명해 온 정치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정부에서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북한은 말로는 공화국이지만 사실상 절대군주제이니까 백두산 혈통 줄기는 가치가 높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중국은 김정남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보호했습니다.

기자: 중국이 은밀하게 김정남을 미래의 북한 지도자로 보호하고 키웠다고 봅니까?

란코프: 알 수 없습니다. 중국이 김정남을 꼭 친중 위성 정권의 지도자로 키웠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물론 있었습니다. 역사에서 보면 전례가 많습니다. 흥미롭게도 북한 국가 창시자인 김일성도 1940년대 초 비슷한 이유로 소련 정부에서 보호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1940년대 초 하바로프스크 근처에서 소련군 대위로 살았던 김일성은 북한 지도자가 될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당시 김일성을 보호하는 소련 당국자들도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김일성과 같은 사람들을 당시에 많이 보호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나중에 한반도를 공산화할 필요가 생길 때 지도자가 옹립할 수 있는 인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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