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와 북한에서 애플 애용자는 누구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19-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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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 아이패드를 소개하는 모습.
2010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 아이패드를 소개하는 모습.
Photo courtesy of Wikipedia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생활과 친숙해진 과학과 기술을 알기 쉽게 풀어보는 <북한 IT와 과학기술> 시간입니다. 진행에 정영입니다.

오늘도 현대 과학기술 지식에 관해 북한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던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지난 시간에 세계적으로 성공한 과학자들이 어떻게 역경을 딛고 성공할 수 있었는지 경험과 과정 같은 것들을 북한 청취자분들에게 들려드리면 좋겠다는 바램을 피력했었지요. 그래서 오늘부터 세계적으로 성공한 과학자, 기업인들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처음에 어떤 분을 소개해주시겠습니까,

김흥광: 앞서 진행자님이 세계적인 과학자, 실천가이며 경영자들의 인생사와 발명사, 그리고 어떻게 역경을 딛고 성공할 수 있었는지 흥미로운 말씀을 했는데, 정말 세계에는 과학발명과 인류에 커다란 이익과 문명을 안겨준 분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 제 전공이 컴퓨터 공학이다 보니까, 먼저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은 저희 개인적인 우상이기도 한데요. 애플 컴퓨터를 만든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에 대해 들려드리겠습니다.

진행자: 네, 좋습니다. 먼저 스티스 잡스에 대해 소개를 좀 해주세요.

김흥광: 스티스 잡스는 미국에서 태어난 혼열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전형적인 미국인인데, 아버지는 시리아라고 하는 북한에서는 수리아라고 부르는 나라에서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아버지 어머니는 처녀 총각때 만났는데, 그의 어머니는 미국의 서부 해안 도시 샌프란 시스코에서 조용히 혼자 스티스 잡스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다 대학생이다보니까 양육할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머니가 할 수 없이 스티스 잡스를 다른 집에 입양을 보내게 되지요.

그런데 입양을 한 그 집 주인이 폴 잡스라고 하는 분인데, 이 사람들도 미국에 온 이민자들이었어요. 그 들에게 아이가 없었거둔요.

그런데 잡스의 어머니가 애를 입양시킬 때 딱 한가지 조건을 약속했습니다. “우리 애를 꼭 대학교까지 보내야 한다”고 서약서를 쓰라고 해서 썼는데, 그 입양 부모들이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스티스 잡스가 어떻게 자기의 과학적인 재량을 컴퓨터에 쏟을 수 있었는지요?

김흥광: 스티브 잡스는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아름다운 컴퓨터인 맥이라고 하는 컴퓨터를 만든 사람인데요. 그리고 음악을 듣는 아이팟이라고 하는 플레이(음성 재생기), 아아패드라고 하는 태블릿 피씨 등 하여튼 우리가 쓰고 있는 컴퓨터의 원형을 만들어낸 오늘날 미국의 전설적인 과학자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15살때인가, 미국의 손꼽히는 컴퓨터 회사에서 전신기를 만들었는데, 여기 관심있어 하던 스티브 잡스가 어느날, 그 회사 사장한테 전화를 했어요.

내가 새로운 방식으로 주파수 계수기를 만들겠는데 당신네 회사에 관련 부품들이 있으면 좀 보내달라고 이렇게 10대의 아이가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회사 사장이 얼마나 귀엽고 기특했겠습니까,

그래 그 회사의 사장이 부품을 보내주었고,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전자제품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스티스 잡스가 더더욱 독특하고 기발한 특징을 보인 것은 대학때였습니다.

그의 입양 부모들은 약속대로 그를 꽤 학비가 비싼, 큰 대학에 보냈는데, 스티브 잡스가 거기서 처음에 뭘 전공했을까요? 컴퓨터를 전공했을까요? 아니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처음 철학을 전공했습니다.

1학년때 필수 과목이라는게 있거든요. 이 과목은 싫든 좋든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요. 그런 규정이 싫어서 1학년 때 대학을 그만두게 됩니다.

진행자: 그런데 잡스가 애플회사와 어떤 관계가 있었습니까,

김흥광: 애플이라는 회사는 스티브 잡스가 창고안에서 친구와 공동으로 만든 회사입니다. 고등학교, 직업학교 때 함께 공부했던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이라고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 두 친구가 자통차 차고안에서 처음으로 ‘블루박스’라고 하는 음악을 듣는 기계를 만들고, 그 뒤에 연이어 오늘날 책상에 올려놓는 데스크 탑의 원조를 만들기 시작했지요. 거기다 사과의 상표를 붙여서 사과 컴퓨터가 된거지요.

진행자: 그 애플 상품의 로고에는 사과모양의 도안이 있는데, 그것도 한입 베어먹은 것 같은 모양인데 어떤 유래가 있습니까,

김흥광: (웃음) 뭐 특별하게 정설은 없고요. 그 사람이 사과를 좋아했고, 그것도 그냥 보는게 아니라 그걸 베어서 맛을 보라는 등 도전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명성 뒤에는 그의 굴곡진 인생사도 함께 깃들어있습니다. 그는 향년 56세의 나이로, 그 엄청난 돈을 번 세계적으로 몇 손가락안에 꼽히는 부호였고, 정말 세계인이 다 아는 사람이었으나, 췌장암으로 돌아가셨고요. 그가 사망하고 나서 그의 업적과 그가 인류에게 남긴 엄청난 문명은 더욱더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스티브 잡스가 언제 세상을 떠났지요?

김흥광: 2011년 10월 5일로 기억하는데요, 스티스 잡스가 8년전에 떠났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세계 컴퓨터 과학을 이끌었습니다.

진행자: 스티스 잡스가 떠나간 다음 세계인들이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인 50대에, 그 나이면 인생경험이 축적되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닙니까, 그런데 세상을 떠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는데요. 그런데 북한 주민들은 스티브 잡스가 만든 컴퓨터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궁금할텐데요. 북한에도 애플 컴퓨터를 쓰는 사람들이 있지요?

김흥광: 2001년인가 김정일이 과학원을 현지지도 하면서 과학자들이 쓰는 컴퓨터를 보면서 “왜 맥킨토시 컴퓨터를 쓰지 않는가?”라고 하면서  “도형처리는 맥킨토시 컴퓨터로 처리하면 더 잘될 것이다”라고 해서 과학자들은 속으로 ‘야, 우리 장군님은 과학자들도 모르는 컴퓨터까지 다 아신다”고 소문났었는데, 그때 김정일이 말한 맥킨토시가 바로 애플 컴퓨터입니다.

맥컴퓨터는 외형상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모니터로 나오는 모든 동영상과 사진이 너무 잘 보여서 윈도우 컴퓨터보다는 미학적으로는 뛰어난 컴퓨터이고, 이 컴퓨터는 아이콘이라고 하는 그림모양의 직관성이 있는 것을 쓰기 때문에 굉장히 쓰기 좋고, 결과도 잘 나오고, 속도도 빠르고 보안도 뛰어난 부분이 있습니다.

몇 년전에 김정은이 자기를 과시하느라고 보여준 사진이 여러장이 있는데, 그 사진을 보면  그가 애플 컴퓨터를 자기 사무실에 놓고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패드도 애플을 쓰는 ‘애플 광’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여동생 김여정도 그렇게 애플 제품을 좋아한다고 하네요.

진행자: 결국 김씨 일가는 세계 최고의 제품인 애플 전자제품을 애용한다는 애기가 될텐테요. 그런데  최근에 공개되는 노동신문이나, 북한 매체에는 그 애플 제품을 쓰는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미국과 대결하는 마당에 미국제품을 사용하다는 외부의 따가운 눈초리를 의식했을 수 있겠네요. 자,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하고 다음시간에 계속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김흥광: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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