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농촌 빠져나간 농촌연고자 복귀 지시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18-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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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성협동농장의 농장원들이 볏단을 실어 나르고 있다.
평양 대성협동농장의 농장원들이 볏단을 실어 나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은 어디로> 시간, 이번에 진행에 이원희입니다. 기계가 아니라 손으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북한 농촌에서 노력 즉, 인력난을 겪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때문에 노동당에서는 농촌출신들을 모두 장악하여 다시 농촌으로 돌려보내는 조치들을 내부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에 대해 오늘 <북한은 어디로> 시간에 정영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정영기자, 북한 농촌에서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요. 지금도 북한당국이 계속해서 농촌 연고자들을 장악해서 다시 농촌으로 강제로 보낸다고요?

정영: 네 그렇습니다. 최근 자유아시아방송이 입수한 북한 내부 자료에도 이와 같은 방침 지시문이 있었는데요, 2016년에 발송된 지시문에 따르면 “농촌에서 비법적으로 빠져나간 농장원들과 농촌 연고자들을 모두 찾아 농촌에 배치할 데 대한 당의 방침을 철저히 집행할 데 대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어 지시문에는 “각급 인민보안기관들은 농촌에서 빠져나가거나 리탈한 농장원들과 농촌 연고자들을 빠짐없이 장악하여 농장에 배치하도록 하기 위한 사업을 끝장을 볼때까지 근기있게 내밀도록 할 것”이라고 지적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근기있게 내민다는 것은 방침 관철 기간이 특별히 설정없이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꾸준하게 벌인다는 소립니다. 그래서 여전히 진행중이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원희: 북한의 당의 방침으로 농촌출신들을 다시 다 불러들인다는 것을 강도높게 강조한 것을 보면 북한 농촌에 일손이 많이 딸리는가 본데, 실제로 그렇습니까,

정영: 사실 농촌 인력으로 볼때는 남한이나 미국에서 농사에 종사하는 사람에 비해 볼 때 많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협동농장은 노동집약형 산업이 아닙니까, 원래 손길이 많이 가지만 특히 북한에는 기계화가 되지 않아서 호미와 삽, 질통, 부림소 등 원시적인 정말 몇백전부터 농사짓던 방식대로 농사짓고 있거둔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한 겁니다.

북한이 그렇다고 해서 기계화가 안됐는가, 사실 농촌을 기계화 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는데요, 그런데 1990년대 중반에 북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북한에 하나밖에 없는 트랙터 공장이 가동을 멈추고, 생산을 하지 못해서 지금은 웬만한 한개 협동농장에 1~2대 정도의 뜨락또르가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여기에 타이어라고 하는 큰 바퀴도 공급되지 못하고 부속품도 공급되지 못해서 뜨락또르가 고장나서 멈추어서고, 그래서 부림소로 밭을 갈고 짐을 나르고 그래서 일손이 많이 딸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해마다 봄과 가을에 고급중학교 학생들과 중학생들을 농사일에 동원시키는 것입니다.

이원희: 여기 방침 지시문을 보니까, 농촌 연고자들을 모두 찾으라고 하는 글이 있던데, 농촌 연고자들이란 어떤 사람들인가요?

정영: 여기서 농촌연고자들이라고 하는 것은 도시의 근로자들, 도시청년들과 결혼하여 도시로 시집간 여성, 남자의 경우에는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으로 갔다가 도시 지역에 배치받은 사람, 그리고 요즘에는 젊은 청년들 속에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진출하려는 그런 움직임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원희: 그렇게 되면 농촌출신 여성과 결혼한 남자는 헤어지거나, 심지어 이혼이라도 해야 합니까,

정영: 그렇게 되면 농촌여성과 결혼한 남성의 경우에는 농촌 연고자가 되는거죠. 그래서 남편도 짐을 다 싸가지고 농장으로 가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 겁니다.

북한은 소위 농촌진지를 튼튼히 다진다고 하면서 아무튼 농촌과 관련된 사람들을 농사를 짓게 하는데요. 그래서 농민들 속에서는 어떤 말이 있는가 하면 “나는 괜찮은데, 내 자식대까지 농사를 시키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자녀들을 농촌에 두지 않고 도시로 보내려는 경향이 많은데요,

최근 자유아시아방송과 연락이 된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농촌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졸업을 한 1~2년 앞두고 도시로 전학을 시킨다고 합니다. 그러면 졸업할 때는 도시 학생으로 신분이 바뀌게 되는거지요. 그렇게 해서 대학을 가거나 또는 군대에 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문건에 농촌연고자가 아니고, 도시출신으로 되기 때문에 제대될 때는 공장에 배치받을 수 있고, 대학에도 갈 수 있고, 그렇게 신분세탁의 경로로 되어왔는데, 북한당국이 그걸 알아채서 이번에 강력한 방침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원희: 그러면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농촌에서 빠져나갈 수 가 있을까요,

정영: 북한 농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나 빠져나오려고 머리를 쓰는데 그래서 대학추천을 받아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농촌으로 가지 않고, 도시에 있는 직장에 가거나 도시 공무원으로 배치받기를 원하지요, 하지만, 이렇게 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전문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농촌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이원희: 이럴때는 뇌물이 오가지 않을까요?

정영: 그것은 안봐도 삼천리이지요.

이원희: 한국이나 미국 같은 곳에서는 농사일을 하다가도 자신이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데, 북한의 농민들은 철두철미 봉건사회의 신분제도처럼 엄격하게 불이익을 받고 있군요.

정영: 남한이나 미국 같은 경우에는 자유시장경제가 아닙니까, 그래서 농민들은 자기가 심고 싶은 작물을 심고, 그리고 예를 들어서 이거 벼농사가 잘 안된다고 하면, 과수원도 할수 있고, 그리고 콩농사가 잘 안된다고 하면 이윤이 많이 나는 작물을 골라서 심을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북한에서는 협동농장체계이기 때문에 그리고 품종을 자기마음대로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벼를 심어야 하는 곳에서는 계속 벼를 심어야 하고, 강냉이를 심어야 하는 곳에서는 강냉이를 심어야 하고, 만일 이걸 어기면 엄하게 처벌받습니다.

왜냐면 국가 수매계획이 있기 때문에 농민들이 자기 마음대로 품종을 바꾸면 나라의 쌀 생산이 안된다는 의미가 되거둔요.

이원희: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농촌을 빠져나오기 위해서 정신이상자로 가장하고, 정신병동에 입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실제 그렇습니까,

정영: 네, 제가 직접 본적이 있는데, 한 농촌 청년이 농촌에 있기 싫어서 빠져나오려고 모지름을 썼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49호병원이라고 있습니다. 그곳은 정신이상자들을 수용하는 곳인데 거기에 6개월 동안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6개월 이상 입원해 있으면 “아, 이사람은 정상인간이 아니다”고 판단해 국가적으로 경노동 대상자로 판단합니다. 보통사람보다 노동을 적게 시키는 분야로 보내주는데, 이 사람이 그걸로 가장하고 정신환자처럼 가장하고 있다가 6개월이 거의 다 지나갈 때 신소가 자꾸 들어갔습니다.

저사람은 진짜 정신이상자가 아닌데, 농촌에서 빠지기 위해서 지금 가장하고 있다고 신소하니까, 당에서 또 불러다 놓고 아주 엄포를 놓았습니다. 가짜로 하지 말라고 그래서 그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그래서 자살까지 한적이 있습니다.

이원희: 여기 보니까, 이러한 농촌사람들을 다시 데려오는 일을 보안서가 한다는데, 결국 경찰이 이런 일을 한다는 겁니까,

정영: 네, 하도 농민들이 결사 반대하기 때문에 북한은 사회치안을 다루는 보안서원들을 내세워 농민들을 장악하고 농촌으로 재배치하는 일을 시키는데요, 북한 방침지시문에도 이런 기관들이 나옵니다.

“각급 인민보안기관들에서는 10월 안으로 당조직의 지도밑에 농촌에서 비법적으로 빠져나가거나 리탈한 농장원들과 농촌 연고자들을 모두 장악하는 것과 함께 312상무들과의 긴밀한 연계밑에 그들이 가있는 곳을 확증하고 돌려보내기 위한 사업을 집중적으로 조직진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312상무는 아직 외부 사회에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조직같아 보이는데요. 지시문의 맥락을 보니까, 312상무는 북한 주민들의 일탈행위를 장악하고, 강제로 집행하는 검열 감시기관으로 보입니다.

이원희: 옛날 봉건시대도 아닌 지금 시대에 북한에서만 농촌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일생 농촌에서 힘들게 일하고 살아야 하는 신분착취 제도라고 볼 수 있군요. 북한 농민들이 일한만큼 수입이 생긴다면 왜 농사를 마다하겠습니까, 북한 농민들이 자유로운 사회에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오늘 이야기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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