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후 북한 사람을 만나보니

장진성∙탈북 작가
201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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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을 경계로 북한과 마주 보고 있는 중국의 단동에 있는 북한 식당.
압록강을 경계로 북한과 마주 보고 있는 중국의 단동에 있는 북한 식당.
AFP PHOTO/ LIU Jin

일본 초청여행 말이 나온 김에 중국 여행 후기도 적고 싶다. 일본에 갔다 오고 나서 몇 달 후 나는 중국 동북3성에 갔다. 휴가 차로 나의 추억 속에 진한 탈 북 여정도 다시 밟아볼 겸 그 과정에 만났던 고마운 은사들을 찾아 작은 정성으로라도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중국 심양 공항에 내리니 가장 눈에 띄는 중국 공안의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쫓겨 다닐 때에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였는데 남한 국민의 시각으로 다시 보니 군복이 조금 촌스러워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난생 초면의 외국인들 앞에서까지 저들의 권위를 강조하려고 애쓰는 중국 공안의 거만함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해 보였다. 북한과는 차이가 있지만 중국도 일당제 체제가 만든 속 좁은 공무원 권위주의가 판치는 것 같았다.

심양에 내려 북한 신의주 마주 켠에 있는 단둥까지 택시를 타고 갈 때에도 남한과 다른 후진성을 느낄 수 있었다. 차선 구분이 없이 마구 달리는 교통질서도 엉망이었지만 무엇보다 더 황당했던 것은 시원한 실내 바람을 쐬고 싶으면 1위안 씩 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단둥에 도착했을 때에는 오후 4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나는 북한 땅이 바라보이는 압록강가로 나갔다. 마음이 답답했다. 추억의 땅이 아니라 아픈 땅 이어서였다. 단둥은 현대건물들이 즐비한 천연색이고, 신의주는 과거의 흑백처럼 건물도 산야도 하나같은 색깔이었다. 그 차이를 분명히 선 그으며 흐르는 압록강은 거대한 국경선 같았다.

북한 땅을 바라보는 중국 관광객들의 얼굴도 마치 지옥을 바라보듯 이마를 찡그리고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됐다. 나는 고향의 음식을 맛보고 싶은 간절함에 단둥에 있는 평양 관을 찾아갔다. 음식의 즐거움만 생각하며 현관으로 들어서던 나는 식당 봉사원들의 가슴에 달린 김일성 초상화를 보고 흠칫했다. 북한 공민이라면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팍에 반드시 달아야 되는 김일성 초상화, 그 절대적 의무가 마치 현재형처럼 나의 가슴을 옥죄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북한을 버리고 남한에서 자유 국민으로 산지 몇 년 됐는데도 습관처럼 반응하는 자신의 심리가 무척 놀라웠다.

그러나 곧 이어 나 개인의 권리가 존중되는 빈 가슴이 뿌듯해졌다. 북한 주민들은 수령의 초상화에 구속된 전체주의지만 나는 나의 존재가치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자유시민이란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그 당당함으로 요리책자를 찾는 내 목소리마저 멋있어 보였다. “남조선에서 오셨습니까?” 요리 책자를 들고 오는 봉사원 아가씨기 나에게 웃으며 물었다.

“네, 한국 사람입니다,” 그때만큼 한국이란 국호가 돋보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음식을 선택하기 전에 평양에서 왔냐고 조심이 물었다. 김일성 초상화를 단 북한 주민이라 자랑할 것이 평양 밖에 없는지 그렇다고 신나서 대답했다. 나는 은근슬쩍 남한에 온 탈북자들 중에도 평양출신 탈북자들도 꽤 된다며 올해 벌써 탈북자 숫자가 2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평양 아가씨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도 믿지 않는다는 듯 재차 음식이나 주문하라고 거의 강요하다시피 했다.

나는 남과 북이나 같은 민족이니 평양냉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평양 아가씨의 대답이 참 가관이었다. 남조선과 북조선이 어떻게 같은 민족일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남조선은 미국의 식민지이고 북조선은 자랑 찬 김일성 민족이라는 것이다. 순간 입맛을 잃었다. 북한에서 살았다면 나도 이 상황에서 똑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더 가슴이 먹먹했다. 민족성마저 왜곡하는 김씨 일가의 지독한 수령이기주의가 정상적 사고와 말을 할 수 있는 인성마저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북한의 선전처럼 김일성이 그렇게 위대하다면 외국에서 돈을 벌 필요도 없지 않겠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다. 나는 그 말 대신 식당을 나오기 전 평양 아가씨에게 몰래 달러로 팁을 주었다. 김일성 초상화보다 더 값진 달러, 그 속에 새겨진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를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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