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란 이름이 소중했다

장진성∙탈북 작가
201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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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의 국내 적응을 12년간 돕고 있는 새조위(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 주최로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인의빌딩의 새조위 교육장에서 열린 남성학교 4차 수업 모습.
북한이탈주민의 국내 적응을 12년간 돕고 있는 새조위(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 주최로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인의빌딩의 새조위 교육장에서 열린 남성학교 4차 수업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남한에서 정착하는 과정에 나에게서 가장 버리고 싶었던 것, 그것은 북한 사투리였다. 탈북자라고 하면 어김없이 정말? 하는 눈으로 다시 쳐다보는 이들이 많아서였다. 외롭지 않는지? 정착이 힘들지 않는지? 우선 그런 질문들에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나의 소심함이 참 싫었다. 그런 경우는 다행히도 양호한 편이었다. 가끔 교회에 가면 밥은 먹고 다니는지? 옷은 제대로 챙겨 입는지? 하면서 용돈이라고 봉투를 건넬 때에는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나름 국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이고 남부럽지 않는 월급도 받고 있는데 -탈북자이니깐! 단지 그 선입견 하나만으로도 동정의 대상이 되는 탈북자에 대한 남한 사회의 인식과 현실이 참 서글펐다.

무엇보다 나를 제일 힘들게 했던 것은 고향과 관련한 질문들을 받았을 때였다. 남한에 혼자 왔는가? 왜 혼자 왔는가? 북한에는 누구누구 있는가? 그 질문들 앞에서는 솔직히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북한을 유례없는 극악한 3대멸족 연좌제 체제라고 하면서도 그 속에 가족친척과 친구들을 남겨두고 남한에 홀로 온 나 자신에 대해서는 과연 그 어떤 말로 설명할 수가 있단 말인가.

백화점에서 비싼 옷을 사 입고 겉을 꾸며놔도 말문을 여는 순간 북한에서 왔냐는 질문들은 여전했다. 하는 말마다 신경을 쓰다나니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고, 그렇게 사고가 위축되니 자신감도 상실했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나도 이럴진대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많은 탈북자들에겐 오죽 심적 부담이 크랴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한정착 성공인물로 언론들에서 널리 소개된 어느 탈북선배를 만날 기회를 갖게 됐다. 그에게는 행운도 있지만 분명 그 행운을 뛰어넘는 어떤 천성이 있을 것이란 호기심에 그 비결을 막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뜻밖에도 그 선배는 나의 시가 자기에게 많은 힘을 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탈북자, 우리는 먼저 온 미래’, 그 시어를 머리 속에 담고 어디가나 그 말을 옮긴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못내 부끄러웠다. 시에서는 ‘미래’라고 써놓고 정작 자신은 ‘과거’에 묻혀 살았다는 자책감에 말이다.

북한관련 전문성을 이야기할 때에는 탈북자란 이름을 벼슬처럼 활용하다가도 일상의 개인으로 돌아오면 고향마저 숨기려는 자신의 이중성이 비겁 해 보였다. 왜 그랬을까? 하고 돌아보니 북한에서 굳어졌던 사고에서 해방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권위주의 체제였던 북한인이어서 남한에 와서까지 자신의 인격을 인위적으로 부각시키려 했던 점, 또한 감시체제에서 항상 권력을 의식했던 탓에 자신을 은폐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점, 그 외에도 남한 사회의 탈북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서 비롯된 열등감도 작용했다고 본다.

그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왜곡하며 살다나니 업무적으로는 선배가 있고, 지인이 있었지만 일상에서는 우정의 친구도 없고, 편한 이웃이 없는 외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체제차이를 두려워 말자, 북한에서 태어난 죄를 죄스럽게 생각하지 말자, 그 결론에 이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때부터 나는 확실히 떳떳해졌다. 남의 눈치를 보는 소심한 탈북자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다가가고, 어울리는 낙천적인 탈북자가 됐다. 그래서 좋은 친구들도 가지게 됐다.

그 친구들 덕에 학연, 지연, 혈연으로나 가능할 절실한 도움도 받을 수 있었고 예쁜 서울출신 여성과 맞선이라는 것도 보게 됐다. 또 그 친구들 덕에 어르신들의 훈시로도 얻을 수 없는 내 나이에 맞는 정착의 지혜와 요령도 익혀나갈 수 있었다. 탈북자들에겐 너무도 낯선 땅인 자유세계의 정착, 그것은 기필코 인간성의 정착으로부터 시작되고 발전한다는 것을 확신하는 경험이기도 했다. 남북통일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분계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끼리의 생각과 말이 같아질 때 비로소 통일이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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