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세계에서 자신을 키우는 방법은?

장진성∙탈북 작가
201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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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모 연수원에 도착한 모자로 보이는 탈북자 가족.
경기도 안산 모 연수원에 도착한 모자로 보이는 탈북자 가족.
사진-연합뉴스 제공

남한은 나에게 자유와 인권의 기본적 질서와 혜택을 알게 해주었다면 영국은 나에게 자유세계에서 살아가는 삶의 가치와 믿음을 주었다. 우선 한국을 좌우 이분법 적으로만 보던 나의 시각에 근본적 변화가 왔다. 예전까지는 그 깊은 갈등과 대립의 한 가운데서 생존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탈북자의 최선이라고 만 여겨왔었다. 북한 인권과 해방을 주도하는 보수진영과 한 목소리를 내며 그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조금씩 굳혀나가는 방식의 삶이 정착의 전부라고 믿어왔었다. 또 그것이 학연, 지연, 혈연이 없이 홀로 성장해야 하는 탈북자의 숙명이라고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영국은 나에게 자아를 깨우쳐 해주었다. 한마디로 세계는 인간평등을 넘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기회도 평등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기회는 일관된 진실의 설득력이며 그것을 인정해주고 지지해줄 언론과 여론의 힘이 남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을 직접 보았던 것이다. 나의 문학과 뉴 포커스가 내 운명 뿐 만이 아니라 북한해방을 주도하는 세계의 빛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이 생겼다. 내가 누구보다, 또 무엇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에 지혜와 열정을 묻으면 그 우직한 돌덩이가 나중엔 만인을 감동시킬 보석으로 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충만했다.

그래서 나는 TV나 신문사들에서 출연이나 인터뷰제안이 오면 되도록 거절했다. 이미 결론이 나와있는 각본에 등장하는 배우 같아서였다. 나만의 분석과 주장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인터뷰란 무의미해 보였다. 그만큼 대북 관련 문제에서 나의 존재와 목소리는 너무 작고, 그렇다고 억지로 커 보이겠다고 조급하고 싶지도 않았다. 더구나 경력과 증언이 검증 안된 일부 탈북자들의 무리한 언론경쟁에 결코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언론 앞에서 하는 거짓말은 궁극적으로 자기 역사에 아픈 대못을 박는 것이나 마찬가진데 그런 자각과 준비가 없는 이들을 볼 때마다 찾아가서라도 말리고 싶을 정도였다.

사실 그들보다 무책임한 언론이 더 궁색해 보였다. 그런 자해가 궁극적으로 신문과 그 이름의 역사로 기록되는데도 오늘에 대한 조급함 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비록 쫓겨 나온 국책연구소지만 나를 버린 그 직장에 다시금 감사했다. 만약 내가 한국에 입국한 첫날부터 일자리가 없었다면 기필코 자기가치를 인위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도 처세술부터 배웠을 것이고, 그러면 오늘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사명감과 긍지도 감히 갖지 못할 것이다.

기관의 명예와 권위로 부단히 통제하고 관리해준 연구소의 규제가 정착의 첫 걸음부터 헛짚지 않도록 나의 이기적 사심과 욕망을 지속적으로 정제해준 셈이다.

내가 이런 개인적인 글을 기어이 써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다. 다름아닌 탈북자들을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이다. 아무 인연이 없는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 우리가 기댈 곳은 솔직히 자신 밖에 없다. 누구를 만나든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출발이 좋아야 그 다음부터도 좋은 결과들이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때로 잘못 만나고 아프게 부닥치는 것들은 원래 우리 것이 아니라 세태가 지그재그로 그어놓은 것들에 어쩌다 발이 걸리고 넘어지는 것일 뿐이다. 자신만의 진실이 크면 세상이 작게 보인다. 그 너머로 세계도 보일 수 있다. 자유세계에서 자신을 키우는 방법은 그렇게 진실을 키우는 것이다. 그 열정이 부도 주고, 명예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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