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조직지도부 실체를 세상에 알리다

장진성∙탈북 작가
201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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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난해 12월 12일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을 열어 장성택에게 '국가전복음모의 극악한 범죄'로 사형을 선고하고 이를 바로 집행했다. 양 손을 포승줄에 묶인 장성택이 국가안전보위부원들에게 잡힌 채 법정에 서 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12일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을 열어 장성택에게 '국가전복음모의 극악한 범죄'로 사형을 선고하고 이를 바로 집행했다. 양 손을 포승줄에 묶인 장성택이 국가안전보위부원들에게 잡힌 채 법정에 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장성택 해임 사건을 세상에서 제일 먼저 안 언론사는 뉴포커스이다. 뉴포커스와 기사제휴 관계에 있던 일부 외신들도 뉴포커스 덕분에 장성택 해임 소식을 미리 입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엄청난 사건이라 모두들 잘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하긴 그 정보를 처음 제보 받았을 때에도 나부터가 선뜻 믿질 못했다. “네가 살던 때의 평양과 달라, 이젠 수령 유일지도체제가 아니라고, 당 조직지도부가 장성택을 가택 연금시켰어, 쿠데타나 마찬가지야,” 항상 정확한 정보 제보로 신뢰관계가 두터웠던 통신원이었지만 그 말만은 북한의 이치상 너무 모순적으로 들렸던 것이다.

그래서 평양에서 신의주까지 일부러 나와 전해준 다급한 특종이었지만 나는 기사를 쓰지 못했다. 친분 관계의 사람들에게만 말하는 수준에서 망설이기 만 했다. 장성택이 다시 북한 공개 매체에 얼굴을 내미는 순간 나는 물론 뉴포커스의 언론생명도 끝난다고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러나 통신원의 구체적이면서도 논리적 설명이 나의 결단을 부추겼고, 결국 뉴포커스가 12월 4일 공개하려던 참에 하루 전 12월 3일 정부 기관 브리핑을 통해 장성택 해임소식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 날 뉴포커스 사무실은 하루 종일 장례식장 같았다. 기자들은 언론 역사에 남을 업적을 스스로 포기했다며 면박을 주었다. 그러나 결코 다 잃은 것이 아니었다. 뉴포커스를 통해 이미 장성택 가택 연금 소식을 전해 들었던 대 내외 증언자들이 뉴포커스의 신뢰에 환호해 나섰다. 장성택 해임소식 당일 일본 NHK가 북한 권력 구조설명에 관한 나의 과거 인터뷰 장면을 실었다. 뉴포커스 정보의 사실여부를 주목하던 참에 터진 사건이어서 편집부가 가장 먼저 나의 인터뷰를 선택한 것이다.

누구보다 아쉬움이 컸던 해외언론사는 일본 산케이 신문이었다. 내가 월 1회 씩 칼럼을 기고했던 관계여서 “김정일 사망에 버금가는 큰 사건”이라는 설명에도 반신반의했었던 것이다. 정치국의 여차장은 앞으로 뉴포커스 기사를 무조건 믿겠다는 내용으로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몇 개의 큰 해외신문사 기자들에게서도 특종을 놓친 데 대한 때 늦은 후회와 신뢰관계를 약속하는 편지가 왔다.

한국의 한 유명 기자는 기고 글을 통해 언제 어디서, 몇 시에 장성택 가택연금 소식을 자신이 제일 먼저 아는 행운을 가졌다며 뉴포커스의 정보력을 평가하기도 했다. 방송출연 제안도 잇달았지만 나는 거절했다. 다 알려지고 난 뒤 정보의 최초를 주장하면 오히려 신뢰도가 의심받을 수 있어서였다. 온갖 추측과 상상력이 동원된 기사들도 쏟아지는 때라 차라리 분석 글로 장성택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고 싶었다.

장성택 해임 특종은 놓쳤지만 장성택 처형을 주도한 당 조직지도부의 실체는 그렇게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김정은이가 유일지도체제 완성을 위해 고모부의 처형을 주도했다느니, 또한 군부가 북한의 핵심부서로서 김정은을 도와 장성택을 죽음으로까지 몰아갔다느니,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별의별 구체적 정황과 사건들이 열거되는 상황에서 그 동안 대외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당 조직지도부의 존재를 최초로 거론한 언론은 국내외 언론과 학계 중에서 오직 뉴포커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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