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숙청 동정여론 커지다

장진성∙탈북 작가
2014-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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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에 견학온 조선노동당 당원으로 보이는 북한 주민들이 북한군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판문점에 견학온 조선노동당 당원으로 보이는 북한 주민들이 북한군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장성택 처형 이후 1월부터 노동당 조직지도부를 중앙지휘 본부로 하고 전역의 당위원회들에서 당원등록 재조사 사업을 선언했습니다. 올해 1월 5일부터 중앙에서는 각 도 당으로, 또 도 당은 시 당으로, 리 당위원회까지 상급 당위원회 간부들이 파견되어 당원 점검과 관리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분파적 요소들에 대한 응징의 연장선에서 한 달 이상 직장을 이탈하여 당 조직생활과 당비를 바치지 않은 당원들을 일벌백계 한다는 것이 당원등록 재조사 사업의 1차 목적이었습니다.

당증 회수는 물론 심할 경우 시골로 추방까지 시킨다고 엄포했지만 당 조직지도부는 한 달도 채 안 돼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배급을 주지 못하는 직장에서 이탈하여 시장에서 생존방식을 터득한 개별적 당원들의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평양과 달리 지방의 경우 먹고 살기 위해 타 지역을 떠도는 당원 숫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어서 당의 원칙대로 일 년 넘게 당비를 바치지 못한 미납자 숫자가 대부분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북한의 유일한 집권당이라는 ‘조선노동당’은 가장 기초적인 당원등록 재 조사마저 제대로 못하고 전전긍긍하다 끝내는 없던 일로 미루고 말았습니다.

그렇듯 장성택 처형 이후 당원등록 재조사와 함께 장성택 독소를 뽑겠다는 정권의 의지가 강해 상반기는 공포 확산이 커지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장성택 일가와 그 측근 가족들에게만 3대 멸족 제를 제한적으로 적용하고 1997년부터 2000년 사이에 벌어졌던 심화조사건 때처럼 전역에서 연쇄적으로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는 공포정치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심화조 때는 김정일의 비준동의가 있었고 그 강력한 무기로 본부 당 책임비서를 했던 문성술도 고문으로 때려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성택 세력 숙청에선 김정은의 구체적 지시도 없고, 또 그런 상황에서 누가 나서서 제 손에 피를 먼저 묻히겠다는 간부들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장성택 일당이라고 주시했던 인물들이 현직의 고위간부 자녀라는 이유로 다른 좋은 직업으로 옮겨가는 현상이 비일 비재했습니다. 김정일 정권 때 같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방임, 혹은 동조인 셈이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당위원회들에서 장성택의 독소를 뽑자며 사상검증과 반성을 강요하지만 비판 받는 사람이나 비판하는 사람이나 눈치만 보는 실정이었습니다. 요즘 북한에 절대충성이란 말은 사라지고 눈치충성이라고들 한다는데 단순히 그래서만이 아니었습니다.

토요일 정치행사 때마다 직장들에서 '김정은동지께서 장성택 동지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내용의 당 문헌학습을 계속 받아왔었던 당원들이어서 장성택에 대한 숙청은 정권의 모순만 강조될 뿐, 또 그것을 깊이 인지하는 계기가 됐었던 것입니다. 장성택과 연결시켜 명백한 반당반혁명적 범죄나 종파적인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기껏 해봤자 여자문제, 돈 문제에 그쳐 더 싱겁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심화조 경험자들인 북한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장성택 독소 청산 분위기에 김정일에 비해 신격화 권위가 작은 김정은 정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나니 고모부마저 잔인하게 즉결 처형한 김정은의 포악 성만 부각되어 온갖 유언비어가 속출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판결문에서 공개된 장성택의 개혁개방 시도가 북한 주민들 속에서 동정 여론으로 바뀌는 추세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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