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에서 망명한 한 북한유학생, 그 이후의 삶(1)

토론토-장소연 xallsl@rfa.org
2017-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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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단국대 난파음악관에서 열린 "망명북한유학생초청 자유대토론회"에서 귀순한 북한 유학생 김운학,동영준씨가 2백여명의 ROTC학생들과 대화를 가지고 있다.
1989년 단국대 난파음악관에서 열린 "망명북한유학생초청 자유대토론회"에서 귀순한 북한 유학생 김운학,동영준씨가 2백여명의 ROTC학생들과 대화를 가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캐나다 토론토에서 장소연 기자가 전합니다.

지난19 80년대 말에 동 유럽에서  유학하고 있던  북한유학생들이 한국으로 망명하는 일대 사건이 일어납니다.

당시 북한은 한창 남한보다 체제선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동 유럽의 붕괴도 아직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시점이어서 이들 북한유학생들의 남한 망명은 남한뿐 아니라 북한정부에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이들 유학생들중의 한사람이었던 김대혁씨는 그때 망명동기를 밝히면서 한번 자유를 맛본 사람은 절대로 북한과 같은 페쇄사회에서 살수 없다며 자유를 갈망하고 누리고 싶은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때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오늘 김대혁씨는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서 살고 있는데요.  오늘은 김대혁씨의 망명한 후의 그동안 삶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김대혁:  아무리 잘 살아도 외부세계만 하겠어요. 솔직히 모든 것, 자유, 모든 것, 물질적인 것 모든 것   솔직히 나는 북한에서 상류층으로살래, 아니면 캐나다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살래? 하면 당연히 캐나다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것이 북한에서 상류층으로 사는 것보다 백번 낫지요.

외국에 나가면 6개월이면 사상이 변해요. 아무리 북한에 충성하던 사람도, 어느날 삐또가 돌드라구요. 야 , 가야 하겠다.

김대혁씨는 평양출신이고 아버지가 군인으로서 당시 80년대 북한생활이 넉넉했다고 말합니다.

북한에서 살 때 과일이며 물고기가 풍족했고 뭐하나 부러울것이 없었지만 일단 북한을 벗어나 동유럽에 오니 사람들의 생활이 너무나 다름을 느꼈다고 말 합니다. 우선 사람들은 외부세계의 소식을 자유롭게 들을수 있었고 정부에 대해서 불만을 이야기 해도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김대혁: 동유럽은 북한하고 비교할 수가 없었어요. 잘살지, 자유롭고 공산국가인데도, 미국영화 다보고, 영국영화 다 보고, 외부세계를 다 알아요. 그리고 제가 이해가 안되었던 것이 너무 그렇게 자유롭고 그렇게 풍요로운데, 진짜 잘먹고 잘 살아요.  그런데 불만이 가득차 있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자기들의 상황을 서방국가와 비교하니까, 말이 공산국가이지 일당독재를 하지만 그리고 개인이 사업이나 땅을 가진다거나 그러지 못 하지만  외국여행 못하고 그 외에는 다 자유로웠어요.  정부비판도 하고, 나가서는 못하지만 모여앉으면 야, 공산주의 개판이다. 북한하고 완전히 틀렸어요.

그때 20대의 젊은 나이었던 김대혁씨는 언론에 알려진것과는 달리 남한보다 미국으로 가고싶어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망명이 허락이 안되어 한국으로 갈수밖에 없었는데요. 당시 한국으로 가면서도 자신의 망명에 대해서는 절대 비밀로 부쳐달라고 정부관계자들한테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망명은 워낙 큰 사안이라 자연히 언론에 날수 밖에 없었는데요. 그로 인해 김씨의 북한가족은 결국 풍비박산이 나고 맙니다.  군인이었던 김씨의 아버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그의 온 가족은 정치범수용소로 가게 됩니다.

김씨는 남한으로 들어갈 당시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언론에 노출시킨것으로 인해 북한의 온가족이 몰살당한 것에 대해 남한 정부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때 정치적 망명으로 인해 김씨는 남한정부로부터 혜택도 많이 받았다는데요, 이 갈등은 아직도 김씨의 마음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김대혁: 그당시에는 안기부 안가에서 사는 거예요. 그렇게 한 일년 살았어요. 밖에 나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나왔어요. 그때 나와가지고 외국어대학교로 갔어요.   한국에서 12년동안 살면서 사실 정착이 안되었어요. 저는 이것은 제잘못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사회가 잘못되었다 이것은 아니예요.  그리고 오랫동안 서방세계를 동경했어요.  북한에 살때부터 외국사람보면 너무 멋있었어요.   저는 서양적인 가치관이 맞아요.   개인 프라이버시를 중요시 하고,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동양은 이런 것이 있어요. 네가 나쁜 사람이라도 네가 나한테 잘하면 너는 내편이야, 그런데 서양은 네가 아무리 나한테 좋게 해도 니가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인거예요.

그 후 12년이 지나서 김씨는 그렇게 동경하던 서방세계, 이곳 캐나다에 오게 됩니다.

김대혁씨의 캐나다에서의 삶은 어땠는지, 다음시간에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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