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켰으면 절대로 못 할일

서울-이예진 xallsl@rfa.org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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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탈북예술인총연합회(NK예총) 창립식에서 김영남씨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지난 2007년 탈북예술인총연합회(NK예총) 창립식에서 김영남씨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한국의 학부모들이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아이가 하고 싶은 게, 되고 싶은 게 없다는 겁니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공부, 원하는 직업, 이루고 싶은 미래가 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인데요.

탈북자들도 비슷한 고민을 합니다.

한국의 토박이들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이 배우고 싶은 공부, 원하는 직업을 찾는다는 게 훨씬 어렵지만 말이죠.

여기는 서울입니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탈북자들의 얘기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취미처럼 좋아하던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는 게 쉽지는 않은데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교수가 되신 분도 있다면서요?

마순희: 네. 그런 유명한 분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그 중 제가 알고 있는 교수님은 지금 대학에서 음악 강사로 강의를 하고 있답니다. 북한에서의 직업은 군인이었는데, 아코디언을 전문으로 하셨대요. 군 복무시절 아코디언을 배워주면서 알게 된 남성과 결혼을 하였다는데 두 분이 다 노래도 잘 부르고 북한에서는 손풍금이라고 하죠. 아코디언도 수준급이었습니다. 남편은 사업을 하고 처는 한국에 와서 다시 대학은 물론 대학원까지 나오셔서 지금은 당당히 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10월 말에는 성수아트홀에서 아코디언 연주회를 크게 열기도 했지요. 저의 딸이 그 연주회를 촬영해서 집에서 영상작업을 했었는데 덕분에 저는 연주회에 가지는 못했지만 환상적인 무대를 화면으로 보게 되었답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밖엔 안 들더라고요. 그분은 아코디언을 배워주는 학원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정말 부부가 다 멋지게 살고 있답니다.

이예진: 아코디언을 잘 하는 것과 별개로 대학교와 대학원 등 고급교육을 받아야 교수가 되는 거잖아요. 힘들진 않았을까 싶네요.

마순희: 그분은 한국에 와서 대학교와 대학원까지 다 다니셨기에 교수라는 직함을 받게 된 거잖아요? 물론 잉꼬부부라고 소문난 남편분이 계셔서 많은 격려와 도움도 주셨겠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의 열망과 피타는 노력이 안받침되지 않고서는 그 경지에까지 오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사람들에게 희망도 주고 용기도 주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두 배, 세 배의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문화 예술분야만이 아니라 자신의 특기를 살려서 식당을 하든, 사업을 하든, 성공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저는 수없이 보아오고 있습니다.

26세의 청년이 운영하는 춘천의 닭갈비식당에도 가보았고 한국에 온지 5년 만에 30세에 미용실 사장이 된 창원에 살고 있는 탈북여성의 미용실에도 찾아 갔었답니다. 서울에도 미용관련 뷰티샵을 운영하는 30세 사장의 가게에도, 50대 중반에 유명한 청진복떡방을 운영하는 마포의 떡집에도 찾아갔었습니다. 그분들이 한 결 같이 하는 말이 있거든요. 누가 시켜서 하라고 했으면 절대로 못 했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서 힘든 줄 모르고 오늘까지 달려온 것 같다고 말입니다.

이예진: 그래요. 그런 힘이 바로 원동력이 되겠죠. 그런데 북한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어떤 전문적인 일도 배우지 못한 분들이 사실 많잖아요. 그런 분들이 한국에 오면 더 고민이 많을 것 같거든요. 그런 분들은 가장 먼저 뭘 열심히 해야 할까요?

마순희: 그런 분들이라고 해도 각자가 처한 환경이 다 다르답니다. 북한에서 직접 온 경우나 중국에서 오래 살다가 온 경우도 있고요. 북한에서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혹은 제대되면서 바로 오는 경우들까지 각자의 삶이 서로 다르다보니 고민도 역시 제각각이겠지요. 지금 하나원을 나오는 청년들 속에는 무학인 청년들이 적지 않습니다. 무학이라면 고난의 행군을 전후로 태어났거나 학교에 가지 못해서 아예 학교의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를 말하다보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공부인 것입니다. 그래도 한국에 도착하면 매 개인의 학력에 대비해서 자신에게 맞는 교육과정을 선택할 수 있고 힘들지만 단기교육을 통해서 그 동안 학업의 공백기를 메우고 있습니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하여도 기초교육은 선행이 되어야 하니까요.

제가 알고 있는 청년 중에는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과정까지 마치고 대학에서 공부하는 청년들도 많습니다. 하나원 교육이나 하나센터 교육을 받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적성을 잘 알고 자신의 진로를 잘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선택도 여러 번 바뀌기도 하고 그러면서 경험과 교훈을 쌓아가기도 하거든요. 물론 쉽지는 않더라고요. 하지만 그 적성이 종당에는 자신의 마지막 직업이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돌고 돌아서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쪽으로 오더라는 거죠.

이예진: 맞아요. 그렇게 한국에 와서 새롭게 자신이 배우고 싶은 걸 얼른 찾아서 전문가가 된 분들도 많더라고요.

마순희: 제가 요즘 또 어떤 청년에게 엄청 감동받은 일이 있거든요. 그 청년은 어머니랑 한국에서 살고 있는데요. 혹시 기자님은 오카리나를 아시나요?

이예진: 네. 새처럼 예쁜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말하죠.

마순희: 네. 저는 이번에 그 청년을 알게 되면서 오카리나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한 번 그 매력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는 말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오카리나라는 것이 이탈리아의 악기라고 해요. 손안에 드는 작은 것으로부터 크기도 서로 다르고, 몇 십 달러부터 어떤 것은 몇 천 달러짜리까지 있더라고요. 오카리나라는 말이 이탈리아어로 작은 새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정말 새처럼 생겼어요.

이예진: 그런 뜻이 있었군요.

마순희: 네. 위쪽이 뾰족하게 나와 있는데 그곳을 입에 물고 불더라고요. 뒤에 있는 울림구멍을 손가락으로 피리 부는 것처럼 조절하면서 소리를 냅니다. 그 청년이 가지고 다니는 악기 가방에 10여 개가 들어 있었는데 한 결 같이 음색이 우아하고 때로는 청아한 소리를 내는데 매 악기마다 소리가 다 달라요.

그 청년은 여섯 살 때에 탈북이 뭔지도 모르고 외삼촌의 목마를 타고 가족과 함께 압록강을 건넜고 중국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단속을 피하 식구들이 서로 갈라져 살았었는데 12살 되는 해에 그 친구는 외삼촌이랑 외할머니랑 함께 북한으로 도로 잡혀 나갔어요. 12살 어린 나이에 강제노동을 하면서 수용소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았겠어요? 그 청년이 한국에 온 것은 2011년이었습니다. 그동안 정규교육이라는 것을 받아본 적이 없다보니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모두 검정고시로 마치느라 고생도 적지 않았겠죠.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자원봉사자로 오신 선생님이 오카리나로 ‘고향의 봄’을 연주하는데 그 연주를 듣고 있노라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더래요. 그동안 가슴 아팠던 일, 힘들었던 일, 원망과 미움 같은 마음들이 저도 모르게 녹아내리고 마음의 평안이 찾아온 순간 그 친구는 저 악기를 나도 꼭 배우리라고 결심했던 거죠.

이예진: 그렇게 시작했군요. 처음 들은 오카리나 연주에 반한 탈북청년이 오카리나 전문가가 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다음 시간에 자세히 알아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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