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탈북 장애인

서울-이예진 xallsl@rfa.org
201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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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장애인의 날 기념 '남북한 장애인 복지대회 및 탈북자 북송반대 걷기대회'에서 장애인들이 행사 진행을 지켜보고 있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장애인의 날 기념 '남북한 장애인 복지대회 및 탈북자 북송반대 걷기대회'에서 장애인들이 행사 진행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북한에서 말하는 사회보장자, 남한에선 장애인으로 불리는데요.

남한에서‘장애인의 반대말은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라는 표어는 이제 익숙합니다.

장애가 비정상이 아니라는 거죠.

길을 오가다보면 삼륜차, 그러니까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자들 가운데 장애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저희가 이 상담시간에 한 번도 다뤄보지 않은 얘긴데요. 탈북하신 분들 가운데 신체적 장애를 갖고 계신 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보죠. 먼저 탈북하신 분들 중에 장애 진단을 받은 분들의 숫자가 파악이 되나요?

마순희: 네. 주변에도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북한이탈주민들 중에서 장애진단을 받은 분들의 숫자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아서 대체로 추정해 볼 수는 있겠지요. 제가 잘 알고 있는 탈북 장애인 자활지원센터의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 그 분도 역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국적으로 200-300여 명 될 것 같다고요. 탈북 장애인들 경우에는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신 분들은 크게 많지 않거든요. 다만 살아가면서 어떤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신체적인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주위에 보면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던 분들도 연세가 들어서 귀를 잘 못 듣는다던가 해서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았더니 청각장애 4급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음 달부터 생계비에 4만 원, 40달러 정도의 장애수당이 더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등록된 장애인 수는 변동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예진: 그렇군요. 한국의 장애인들과 비교를 좀 해보죠. 한국의 가장 최근 통계였던 2015년 장애인 현황을 보면 협회에 등록된 장애인이 249만 명이고 전체 인구의 약 4.8%정도입니다 신체적 장애가 87%, 그리고 정신적 장애가 13%정도 됩니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것은 신체적 장애인, 지체 장애인이라고 하죠. 이 장애인들의 87.7% 가량이 질환이라든지 사고 등 후천적 원인에 의해서 장애를 갖게 됐다는 것입니다. 선천적인 것이 아닌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긴데, 탈북자 분들의 상황은 어떠신가요?

마순희: 말씀하신 것처럼 탈북자들의 경우에도 선천적인 장애보다는 살아오면서 갖게 되는 후천적인 원인으로 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탈북 장애인들의 실태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면 조금은 특이한 현상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숫자는 남한이나 다른 나라들보다는 현저하게 낮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북한에서 의료부분에서 근무하다가 온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그렇고 저희들이 살아온 사례들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이 열악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장애인들의 인권은 언급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선천적으로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고 하면 살아남기가 힘들지요. 부모는 물론이고 주위에서도 모두 그냥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본인에게도 곁 사람에게도 좋다는 생각을 다들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낙태가 암암리에라도 스스럼없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만일 기형아라는 판정이라도 받는다면 태어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0%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의료시스템으로 하여 살아가면서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본인도 미처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가 잘 알고 있는 60대의 한 남성은 북한에서 대형차 운전을 했었는데 항상 소음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자신이 청각장애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조금씩은 귀가 잘 안 들릴 때가 있었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당연히 그런 현상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한국에 와서 건강검진을 받다가 청각장애 4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뒤늦게야 장애인 등록을 하고 하나원에 장애가산금신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360만원, 3100여 달러의 가산금을 받을 수 있었고 생계비에 3만원, 30달러 정도를 매월 더 지급받고 있습니다.

또 어떤 남성은 북한에서 일할 때 손가락 하나를 기계에 잃었었는데 하나원을 나오면서 장애가산금을 받고 또 매월 3만원, 그러니까 30달러씩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탈북자들의 지체장애 형태를 보면 가장 많은 것이 북한에서 일하다가 혹은 군사 복무하다가 사고로 다치는 절단장애가 많고 교통이 크게 발전하지 않다보니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인은 남한보다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이 한국에서 일하다 다친 것도 아닌데 장애수당을 받아서 감사한 마음이라는 말을 할 때 정말 저도 공감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일하다가 그 정도의 상해를 입어서는 아무런 보상도 없었는데 정작 한국에 와서 일하다가 다친 것도 아닌데 한국정부에서 매월 장애수당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예진: 일하다 상해를 입어 장애인이 되었는데 북한에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거군요. 만약 한국에서 일하다 장애를 입었는데도 국가기관이나 기업 측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고소하고 소송하고 언론의 비난을 받기 십상이죠. 탈북하신 분들 중에는 자체적으로 장애를 가진 분들을 위한 협회도 따로 조직했다면서요?

마순희: 네. 그런 단체들도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기존 장애인협회에서 함께 동참하는 경우도 있고 탈북자들이 새로 장애인 단체를 만들기도 하는데 서울에도 여러 개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봉사를 자주 나가기도 하는 단체가 있는데 ‘겨레얼 통일연대’라고 하는 단체입니다. 겨레얼 통일연대는 2010년 9월 9일에 창립되었는데 탈북 장애인들과 노인들의 남한정착을 도와주는 일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6년 12월에는 ‘탈북 장애인 노인재활요양센터’를 개소하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봉사단체에서도 여러 차례 재활요양센터를 방문해서 장애인들과 어르신들을 위한 노래교실, 손톱을 치장하는 네일아트 체험하기, 웃음치료, 강정 만들기, 오락프로그램 등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탈북어르신들 경우 거의가 장애진단을 받고 장애급여를 받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예진: 북한에서 젊어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거네요.

마순희: 그렇죠. 어떤 병을 앓고 후유증이 남거나 수술을 받은 뒤에 장애등급을 받기도 하니까요. 제가 잘 알고 있는 50대의 여성은 겨울에 중국에서 몽골을 거쳐서 한국으로 오면서 몽골에서 심한 동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구사일생으로 구출되기는 했지만 동상을 입은 두 발의 발가락을 절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수술을 잘 받고 일상 생활하는데 큰 지장을 받지는 않고 살고 있었습니다. 워낙 노래도 잘 부르고 성격이 낙천적이었던 그 여성은 저희랑 함께 예술단활동으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봉사활동을 많이 했었습니다. 지금은 본인이 장애인으로서 장애인단체를 만들고 탈북 장애인들의 남한정착과 생활상 어려움을 지원하는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예진: 한국에서 장애를 가진 탈북자 분들이 남을 돕는 봉사활동도, 그리고 사회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다음 시간에는 이분들이 한국에서 받는 지원과 혜택에 대해 알아보고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북한과는 어떤 차이가 나는지 알아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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