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이 귀농에 실패하는 이유

서울-이예진 xallsl@rfa.org
2017-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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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 농촌진흥청 농촌인적자원개발센터에서 농진청과 경기지방경찰청이 개최한 북한이탈주민 영농교육에 30여명의 새터민들이 참여, 농진청 강사들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 농촌진흥청 농촌인적자원개발센터에서 농진청과 경기지방경찰청이 개최한 북한이탈주민 영농교육에 30여명의 새터민들이 참여, 농진청 강사들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올해 가뭄이 심해서 남한이나 북한 모두 농부들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할까 싶은데요.

농사라는 게 하늘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죠.

해마다 어떤 작물이 잘 되고, 좋은 값에 팔릴까, 또 유통경로는 어떻게 할까 등등 한국의 농부들도 따지고, 생각할 게 참 많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농부들은 이런 것들까지 잘 해내고 있을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탈북자들 중에 남한 전역에 퍼져 곳곳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봄에는 꿀을, 여름에는 포도를, 가을에는 윤기 나는 입쌀을 먹어본 적이 있는데요. 정말 다 맛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분들도 처음에는 고생이 많았다면서요?

마순희: 네. 진도에서 5년 째 오리 목장을 하면서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한 탈북남성은 처음에는 귀농을 위해서 못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자신이 스스로 찾아다니면서 경험해 보았다고 합니다. 염소목장에서도 일해 보았고 고사리 재배하는 곳에서도 일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항상 유기농, 유기농 하니까 유기농 농사를 지으면 잘 팔리고 돈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토지를 임대하여 강냉이도 심고 여러 가지 남새도 심었습니다. 무공해를 한다고 일체 농약도 안 쓰고 화학비료도 안 쓰면서 북한에서처럼 손으로 풀을 뽑고 김을 매면서 1년 동안 엄청난 고생을 한 거죠.

이예진: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퇴비나 유기질 비료로 재배하는 방식이긴 한데 이게 남한에서 오랫동안 농업에 종사해온 분들도 힘들 텐데, 경험도 없이 유기농 농사를 시작하셨단 말이에요? 대단하시네요.

마순희: 네. 그래서 보는 사람마다 안 된다고 해도 믿지 않았는데요. 그런데 결과는 너무 비참했답니다. 옥수수는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이삭이 한 뼘도 안 되었고 오이는 꼬부랑 오이가 되어버려서 누구도 사가지 않더라는 거죠. 선진 농업기술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고집을 부려 봤는데 그제야 모든 것이 주먹구구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한 해 동안 고생을 하고 그 다음에 시작한 것이 오리 목장이었습니다. 태풍에 무너져 파철더미로 변한 오리 목장을 헐값으로 넘겨받아서 자금을 아낀다고 기계를 사가지고 구부러진 철근을 하나하나 펴서 하우스, 온실을 지었답니다. 자재가 모자라면 근처 고물상들을 찾아다니면서 이용할 만한 철근들을 모아왔고 자신이 직접 용접으로 조각조각을 붙여서 그렇게 오리를 키울 수 있는 하우스를 지었답니다.

지금 그 오리 목장은 두 동으로 늘어났고 한 번에 15000여 마리의 오리를 사육하는, 진도군에서도 손꼽히는 오리 목장으로 성장했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거기서 교훈을 찾으면서 새롭게 도전해 나가는 그 사장님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어린 오리들이 혹여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할까봐 온 밤, 갓난아기 지키듯 오리사를 돌아보는 사장은 밤잠도 잃은 사람 같았습니다. 오리는 한 번 넘어지면 건드려주지 않으면 제 힘으로는 절대로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간다는 것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남북하나재단에서 발간하는 잡지인 ‘동포사랑’에는 항상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탈북민들의 정착사례들이 실리군 하는데 실패를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는 감동적인 사례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번 호 ‘동포사랑’에 실린 전라남도 담양군 무정면에서 MG내추럴이라는 주식회사를 운영하는 한 탈북민 남성의 사례도 동포사랑을 읽는 독자들에게 큰 감동과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10년을 서울에서 일하면서 모은 돈 1억 원, 8만9천여 달러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시행착오로 사업이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결코 주저앉지 않았고 남북하나재단에서 사육장 건축비용을 지원받았는데 그게 다시 일어서는 소중한 종자돈이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1인 기업으로 시작한 회사가 현재 직원 3명을 채용하고 있고 농업법인 회사가 되어 지역사회에서 성장과 나눔을 실천하는 모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다음에는 그 분을 만나려 꼭 담양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예진: 실패했지만 다시 꿋꿋이 일어나서 성공하시는 분들이 많네요. 탈북자 분들이 귀농, 귀촌에 실패하는 경우, 그 원인은 주로 어디에 있을까요?

마순희: 물론 사례들마다 원인들은 서로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원인을 꼽으라면 저는 마음가짐이 중요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탈북자들의 귀농은 단지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농촌으로 돌아가서 농업인으로 되는 한국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상담하다보면 번화하고 복잡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조금은 편하고 조용하게 살고 싶다면서 귀농에 대해 문의하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우리 탈북자들의 귀농은 농촌에서의 삶이 아니라 농촌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어찌 보면 회사생활 할 때보다 더 어려운 조건에서도 일하면서 소득을 창조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북한이나 중국에서 하던 농사나 아니면 가축을 키우는 일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대한민국의 실정에 다 맞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경험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선진기술을 배워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작목이나 업종을 잘 선택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경력 역시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지식이 있어도 현실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몸으로 부딪치면서 지어보고 키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남북하나재단의 영성패(영농정착성공패키지)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선 4주 정도의 이론 교육, 하려고 하는 작물이나 업종에 대한 컨설팅과 실습농가에서의 실습과정을 통하여 자신이 직접 체험해 보면서 귀농을 해야 할지 여부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끝난 후에 지급하는 1500만원, 13000달러의 초기영농정착자금 역시 영농을 시작할 소중한 자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볼 때에는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연고가 없는 것도 역시 실패할 수 있는 원인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와 그리고 남북하나재단을 비롯해서 귀농을 지원해주는 기관들의 협조와 관심이 많이 해소해주리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알고 지내는 사람도 있지만 살아가면서 서로 알아가고 친해지는 것도 역시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천천히 서로 알아가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다보면 진심은 언젠가는 통하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게 농촌에서도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면서 정착하는 거죠.

이예진: 아무래도 북한에서 농사짓던 방법과는 좀 다르겠죠. 농사도 나만의 비법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요. 농사뿐 아니라 자기 사업을 하는 탈북민들이 말하는 사업 잘 하는 비법, 다음 시간에 알아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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