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귀농과 ‘영성패’

서울-이예진 xallsl@rfa.org
2017-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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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 농촌진흥청 농촌인적자원개발센터에서 농진청과 경기지방경찰청이 개최한 북한이탈주민 영농교육 모습.
경기도 수원 농촌진흥청 농촌인적자원개발센터에서 농진청과 경기지방경찰청이 개최한 북한이탈주민 영농교육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직장인들이 도시탈출을 꿈꾸며 귀농과 귀촌을 선택하는 일이 한국에선 잠깐 유행처럼 번졌는데요.

지난 3년간 귀농귀촌 인구는 꾸준히 늘어 전국적으로 총 14만6818명, 가구 수로는 10만4132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귀농, 귀촌을 선택했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의 수도 사실 꽤 될 겁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귀농을 선택하는 탈북자들도 그 수가 늘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잘 해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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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한국에선 직장도 탄탄하고 돈도 많이 줘서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인 대기업 회사를 박차고 나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가끔씩 화제가 되곤 하는데요. 도시에 살던 탈북자 분들 중에서도 농촌이나 어촌, 산촌이라는 의외의 선택을 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마순희: 대도시에서 정장 입고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 보며 일만 하던 한국 분들이 귀농, 귀촌하는 이유와 비슷할 겁니다. 저도 상담센터에서 근무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가끔 귀농에 대한 상담 전화를 받기도 하는데요. 탈북자들도 처음 한국에 오면 북한에서 했던 일과는 달리 깨끗한 와이셔츠를 입고 즉 정장차림으로 멋진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데요. 하지만 적성이라고 하죠. 자신의 성향이나 능력에 맞는 일이 아니면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왠지 거북스럽고, 불편하기도 하고, 정착한지 얼마 안 되어 전문적인 업무를 소화하기 어렵다 보면 회사보다 차라리 농촌에 가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귀농을 선택하는 탈북자들이 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귀농, 귀촌을 많이 하고 있지만 탈북자들의 경우에는 거의 귀농입니다. 즉 귀농은 소득의 일부 혹은 전부를 농업에서 얻는 경우이고 귀촌이라고 하는 것은 농업에서의 소득은 없고 거주공간을 농촌으로 이동하여 생활하는 것입니다. 귀촌은 일정한 경제적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번잡한 도시를 떠나서 공기 좋고 한적한 시골에 전원주택을 짓고 주거생활을 하는, 소일거리로 과일나무를 가꾸거나 텃밭을 관리하는 정도의 생활인데 우리 탈북자들인 경우에는 그렇게 여유로운 생활을 위해 귀촌을 할 정도는 아니거든요. 거의 대부분이 북한에서부터 혹은 중국에서 많이 접했던 농촌생활이라 거부감이 없고 농촌일은 자신 있다는 생각으로 귀농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처럼 농사를 지으면 된다고 생각했다가 실패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분들 중에도 그런 분이 계시는데요. 북한의 농촌에서 살아봤고 아버지가 농촌 리의 관리위원장을 하다 보니 도 농촌간부학교에서 공부까지 했답니다. 한국에 와서 일용직 근로자로 김치공장에서도 일하고 주유소에서도 일하면서 돈을 좀 모았지만 자신은 늘 농촌에 가서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70대의 어머님과 함께 흑염소를 키운다고 충청북도의 한 농촌에 내려갔거든요. 거기서 3년을 애쓰다가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서울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예진: 그렇군요. 한국 분들 중에서도 도시에만 살다 농사를 짓겠다고 귀농했다가 낭패를 본 분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요즘엔 귀농학교, 귀촌학교 등 도심에서 농촌으로 가기 전에 교육을 받아 준비를 철저히 하고 가는 분위기로 바뀌었는데 탈북자 분들도 그런 준비를 좀 해야겠네요.

마순희: 맞습니다. 그 분도 귀농을 위해서 교육도 받았고 심사를 거쳐서 성공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농촌에 갔던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단기간의 교육을 통해서 귀농의 모든 것을 다 배우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거죠.

이예진: 탈북자 분들은 한국에 따로 연고나 지인들이 없어서 귀농이나 귀촌을 해도 도움받기가 좀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 어떤가요?

마순희: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탈북자들이 귀농을 해서 성공하는 사례들 중에는 남성분들도 있지만 여성 대표들의 비율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금년까지 4년 차 남북하나재단의 착한사례 발굴 사업, 그러니까 잘 정착한 탈북자들의 얘기를 전하는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대부분의 귀농정착 여성들이 한국인 남성들과 결혼하여 함께 성공한 사례들이라는 것입니다. 충주 밤자골 농원의 대표인 탈북여성이나 마산의 국화양봉원의 대표도, 익산 포도원의 대표도 모두 한국 남편과 함께 성공한 것이어서 특별히 귀농이라고 이름하기도 좀 그렇더라고요.

이예진: 원래 농촌에 계신 남성분과 결혼을 했다는 거죠.

마순희: 네. 그래서 그냥 대한민국의 농촌에 잘 정착하고 있는 사례들이라고 볼 수 있죠. 농촌에 연고가 있는 남편과 함께 사업해 나가다보니 경제력도 정보력도 거기에 인맥까지 큰 어려움 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거죠.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고 남성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봐야겠죠. 종잇장도 맞들면 가볍다는 속담처럼 혼자가 아닌 둘이서 함께 영농기술전수도 받고 농사일도 함께 하다 보니 어려움은 반으로 줄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거기에 북한여성의 깐진 살림솜씨와 억척같은 일본새가 한 몫 단단히 했지요. 얼마 전 제주도에서 인터뷰할 때 이야기인데요.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여성을 인터뷰하면서 본인의 장점이 무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옆에 있던 남편분이 제꺽 ‘짠돌이’라고 대답해서 엄청 웃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사실 북한이탈주민들이 귀농을 하면서 실패사례가 많다보니 지금은 남북하나재단의 영농정착 지원 사업에도 많은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금년도 ‘영농정착 성공패키지’ 대상자 모집 공고에서도 알 수 있는데요. 지난 4월 남북하나재단에서는 영농을 희망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하기 위해 2017년 제2기 영농정착 성공패키지 참여자를 모집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줄여 영성패라는 건데요. 혹시 영성패라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보셨는지요?

이예진: 아뇨. 영성패라는 말은 처음 듣는데요.

마순희: 취업성공패키지는 취성패, 영농성공패키지는 영성패라고 해요. 영성패라는 것은 영농창업을 통해 귀농을 희망하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영농정착에 필요한 이론교육과 실습교육, 영농창업, 사후관리를 통하여 영농정착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을 말합니다. 영성패는 남북하나재단과 제 2 하나원, 농촌 진흥청, 귀농귀촌센터와 협력으로 진행합니다. 남북하나재단은 모집공고를 해서 대상자를 모집하고 선정하고 영농실습이나 초기영농자금지급, 자문 등 사업 전반을 총괄 관리합니다. 제2하나원은 교육생 숙식을 보장하고 교육장과 교육생 관리를 하며 농촌진흥청은 작목별, 지역별로 실습 농가를 섭외하고 작목 자문, 농지분석 등 사업을 지원하고 귀농귀촌센터에서는 교육프로그램과 전문 강사를 파견하는 사업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예진: 굉장히 꼼꼼히, 체계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지역별로 인구가 적은 곳에서는 귀농하는 탈북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공을 들이기도 한다는데요. 다음 시간에 자세히 알아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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