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또다시 무력통일 꿈꿨다

서울-노재완 nohjw@rfa.org
201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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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54년 10월 1일 열병식을 함께 지켜보는 김일성 전 북한 주석(오른쪽 둘째)과 마오쩌둥 전 중국 주석(오른쪽).
사진은 1954년 10월 1일 열병식을 함께 지켜보는 김일성 전 북한 주석(오른쪽 둘째)과 마오쩌둥 전 중국 주석(오른쪽).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여러분, 안녕하세요. <통일로 가는길>의 노재완입니다. 최근 중국의 한 역사학자가 과거 김일성과 마오쩌둥 사이에 있었던 공개되지 않았던 내용들을 따로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저자는 “김일성이 1970년대 들어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다”며 당시 두 사람의 관계를 파헤쳤습니다. 오늘 <통일로 가는길>에서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김일성과 마오쩌둥의 갈등구조를 알아봅니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흔히 ‘피로 맺어진 동맹’이라는 말을 씁니다. 정권 초기부터 김일성과 마오쩌둥이 형제처럼 서로 돕고 살았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항일 무장투쟁을 함께했고 6.25전쟁 때는 중국이 참전해 꺼져가던 북한을 살려주기도 했습니다. 평양 인민경제대학 출신으로 조선-체코 신발기술합작회사 사장을 지낸 탈북자 김태산 씨의 말을 잠시 들어보시겠습니다.

김태산: 북중관계를 혈맹관계라고 말하는 것은 모택동과 김일성이 만든 겁니다. 둘 다 같은 사상을 갖고 어려울 때 서로 도왔으니까요. 북조선 인민들도 대부분 모택동 시절에는 두 나라가 혈맹관계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등소평 시대로 접어들면서 양국의 혈맹관계는 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양국은 불신과 견제도 심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중국 화둥사범대 선즈화(沈志華) 교수가 이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입니다. 선 교수는 지난 5일 일본에서 한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최후의 천조(天朝), 마오쩌둥·김일성 시대의 중국과 북한>입니다. 천조는 제후들을 거느리는 천자가 다스리는 조정이라는 뜻으로 선 교수는 “중국과 소련에서 나온 미공개 된 문서와 증언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고 밝혔습니다. 역사학자인 선 교수는 지난 2013년 한반도 정전협정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학술토론회에서 중국 학자로는 이례적으로 북한이 6.25전쟁을 일으켰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바 있습니다.

선즈화 교수
: ‘항미전쟁’은 전쟁에서의 중국의 지위를 강조한 것이고 ‘조선전쟁’은 전쟁에서의 중국의 역할을 축소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 최근 6.25전쟁을 ‘조선전쟁’이라고 언급한 것은 이 전쟁에 대한 중국의 의도와 책임을 부각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주요 언론은 이 책이 출간되기 전부터 깊은 관심을 나타냈는데요. 지난 1일 일본 아사히 신문과 회견을 가진 선 교수는 “김일성과 마오쩌둥은 ‘혈맹’을 내세우면서도 내면적으로는 강한 불신을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아사히 신문은 이 책을 소개하면서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불신감이 흐르는 제국과 제후국 관계”라고 묘사했습니다. 선 교수는 회견에서 “중국과 북한은 모순을 대외적으로 숨기면서 밀고 당기기의 관계를 반복해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김일성이 자주를 내세워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했던 게 마오쩌둥으로부터 신뢰를 잃는 원인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 모택동으로서 가장 어려웠던 게 1956년 소련 공산당 20차 당 대회를 계기로 해서 중국과 소련이 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때 김일성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면서 자주를 선언합니다. 이로 인해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던 1965년 중국이 북한을 완전히 적대적으로 대합니다. 압록강 건너편 단둥에서 홍위병들이 나타나서 김일성을 욕하고 그랬습니다.

마이니치 신문도 지난 1일 이 책을 소개하면서 “김일성이 1975년 중국에 방문했을 때 ‘제2차 한국전쟁, 무력침공의 의지’를 나타냈다”고 보도했습니다. 선 교수는 마오쩌둥이 1975년 4월 18일 베이징에서 마지막 회담을 했을 당시 김일성에게 “나는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이는 남한에 대한 무력공격을 허가받으려는 김일성의 의중을 미리 파악한 선수 치기였다”고 해석했습니다.

선 교수의 자료 분석에 따르면 김일성은 마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회담에 나섰지만, 당시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던 마오는 김일성의 무력통일 계획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노력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일성은 1970년대 초반을 무력통일의 적기로 봤습니다. 윁남(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했고 캄보쟈(캄보디아)에서도 공산주의 세력 확대가 계속되고 있어 대외적인 환경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내부적으로도 전쟁 준비가 완료된 상태여서 당시 김일성이 자신감을 가질만한 상황이었다”고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말합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 제1차 7개년 계획이 1961년에 시작한 것이 3년 연장해서 1970년에 끝납니다. 그리고 5차 당 대회에 들어가는데 그때 나온 게 4대군사노선입니다. 김일성은 1975년에 4대군사노선이 완성됐다고 봤습니다. 북한의 모든 인민은 다 총을 갖고 있고 총을 쏠 수 있다. 따라서 전쟁이 일어나면 잃을 것은 휴전선이며 얻을 것은 통일이라고 공언합니다.

6.25전쟁에서 공통의 이익을 갖고 미국과 대립했을 때는 관계가 좋았겠지만, 중국이 소련과 대립하고 미중관계를 개선하려는 시점에서 중국과 북한 사이에는 공통의 이익이 없었다는 겁니다. 선 교수는 "75년 베이징 회담에서 김일성이 남한과 전쟁을 하겠다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을 방문하기 전 조선노동당 내에서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한 것을 봐도 실제로 전쟁을 생각하고 있던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은 이 회담을 계기로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핵 개발을 진척시키는 등 독자노선을 걸었다”고 선 교수는 설명했는데요. 이에 대해선 강 전 장관도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 북한이 핵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1968년입니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과 일본과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서 김일성으로선 중국을 믿을 수가 없게 된 거죠. 믿었던 중국마저 미국과 손을 잡으니 북한이 살길은 오로지 핵이라고 생각했겠죠.

선 교수는 마오쩌둥과 김일성 두 지도자의 갈등을 사례로 들면서 “마오가 1956년 중국을 찾은 북한 고위 관료를 접견한 자리에서 김일성이 친중국적인 북한 연안파를 숙청한 것에 대해 질책했다”고 소개했습니다. 마오는 1956년 11월 30일 중국주재 소련대사를 불러 “김일성은 ‘너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너지는 사회주의 진영에서 이탈하려다가 실패했지만, 김일성은 성공할지 모른다고 경계했다”고 신 교수는 밝혔습니다. 마오가 말한 너지는 1956년 헝가리 반소혁명의 주역으로 소련에 처형된 너지 임레 전 총리를 말합니다. “후에 소련으로부터 이를 전해 들은 김일성은 중국의 지도자는 얼굴을 마주하고 말하는 것과 뒤에서 하는 게 너무 다르다는 인식을 드러냈다”고 선 교수는 전했습니다.

선 교수는 또 “마오에게 있어 북한은 양보와 인내의 대상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마오는 ‘북한은 내 자식’이라는 생각으로 북한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려 했다”고 선 교수는 주장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탈북자 김태산 씨는 “마오쩌둥은 북중관계의 모순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겉으로 내보이진 않았다”며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전략적 차원에서 계속 필요했고 굳이 관계를 나쁘게 할 이유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김태산: 김일성이 중국의 원조를 많이 받았는데도 중국편을 들지 않고 소련과 가깝게 지내니 모택동 입장에선 당연히 기분이 나빴겠죠. 그러나 모택동은 그것을 밖으로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렇다고 해서 북한을 차 버리면 자기네가 적지 않은 손해를 보니까요.

각국의 비밀문서를 찾아내 북중관계의 실체를 찾으려는 선 교수의 열정은 높게 평가받을 만합니다. 하지만 옛 문헌을 바탕으로 했다고 해도 이것이 전부 진실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공문서라는 것이 때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의도로 구성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선 교수의 저서는 중국에서는 아직 허가가 나지 않아 출간되지 않고 있는데요. 북한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중국으로서는 선 교수의 주장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을 무시한 채 부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통일로 가는길>, 오늘 순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재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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