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 밭에 나가 살았시요’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
201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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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 인근의 한 협동농장에서 농장원이 밭에 줄 물을 퍼고 있다.
남포 인근의 한 협동농장에서 농장원이 밭에 줄 물을 퍼고 있다.
ASSOCIATED PRESS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기대를 저버리고 얼마 전 두 차례에 걸쳐 단거리미사일 발사시험을 했죠. 2017년 마지막 발사이후 1 5개월만입니다.

김정은이 지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실패에 대해 평가하고 올해 연말까지 미국의 태도변화, 노선변화를 지켜볼 것이라고 발언하였지만 아마도 북한 사정상 연말까지 기다리기가 무척 고달파보입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최근 북한의 식량사정이 매우 나쁘기 때문입니다. 작년 작황이 10년 만에 최저라면서요. 보통 한해에 40만 톤-60만 톤 부족했는데 올해는 136만 톤 정도 부족하다니 정말 문제가 심각한 것 같습니다.

북한 인구 하루 식량소비량이 1만 톤 정도인데 136만 톤 부족하다면 결국 연간 136일 식량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3월 유엔 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이 북한에 들어가 6개 도, 12개 군을 조사한 결과입니다.

북한당국은 이미 작년부터 해외 대사관들에 식량지원을 끌어들일 데 대한 지시를 하달했죠. 그런데 이 지시집행이 대북제재로 여의치 않은가 봅니다. 유엔본부에서도 지원요청을 했으니 말이죠.

북한의 비핵화과정에 진전이 없고 또 최근 단거리미사일을 두 차례 발사했음에도 식량지원에 대한 인도주의적 사안은 유연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미대통령도 이번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 국제사회의 신뢰를 깨는 행동은 아니라고 부드럽게 반응했고, 또 남한정부에서도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정치사안과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참 의외입니다. 대남선전매체들을 통해 남북선언들을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면서 주변 환경에 매여 선언이행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뒷전에 밀어놓고 그 무슨 계획이니 인도주의니 하며 공허한 말치레와 생색내기나 하는 것은 남북관계의 새 역사를 써나가려는 겨레의 지향과 염원에 대한 우롱이라고 했습니다.

시시껄렁한 물물거래나 인적교류 같은 것으로 역사적인 북남선언이행을 때우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북한 TV에서 농사작황이 좋은 농장에서의 농민들 인터뷰 내용이 생각나는군요. 기자가 어떤 비결로 이렇게 농사를 잘 짓게 됐는지 묻자 한 농민은 이렇게 답을 했죠. ‘딴게 없시오. 거저 밭에 나가 살았시요.

북한식 시나리오대로라면 ‘모든 것이 다 장군님의 은덕입니다. 우리 당의 주체농법대로 하니까 그리고 당에서 하라는 대로 하니까 이렇게 훌륭한 결실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라고 첫째도, 둘째도 공을 당과 수령에게 돌려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일밖에 모르는 근면한 농민들에게는 기자들의 유도나 회유가 통하지 않은가 봅니다.

북한에서 농민들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근면한데 왜 북한은 수십 년간 식량이 부족해 있을까요? 그리고 한 동포가 사는 남쪽나라에는 왜 쌀이 남아돌고요? 인구가 2배나 많은데. 한쪽에는 먹을 것이 없어 인구의 반이 굶주림에 허덕이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덜 먹느라고 난리가 나 있습니다.

주구장창 밭에 나가 살아가야하는 북한농민들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요?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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