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신 아들이 평양 영주를 선택한 속사정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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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9월 17일 북한 평양 애국열사릉에 최덕신 탄생 100주년을 맞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보낸 화환.
지난 2014년 9월 17일 북한 평양 애국열사릉에 최덕신 탄생 100주년을 맞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보낸 화환.
사진-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주에 저는 경상남도 함양이란 곳을 다녀왔습니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공기 좋고 살기 좋은 동네인데, 그곳에서 행사가 있어 1박 2일 머물렀습니다. 남쪽에서 지리산 인근 지역은 6.25전쟁의 아픈 상처가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전쟁 때 지리산 빨치산이 활동하다 보니 서로가 죽이고 죽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마치 6.25때 신천에서 벌어졌던 사건과 비슷합니다. 신천에는 미군이 한 명도 들어온 것이 없는데, 후퇴와 재진격이 반복되면서 좌익과 우익 사이에 살육전이 벌어져 한 개 군 인구의 4분의 1이 서로 죽였죠. 물론 북한은 신천박물관이란 것을 만들어놓고, 아직도 신천, 재령 등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을 미국이 벌인 짓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전쟁 때 벌어진 잘못된 일도 다 제대로 기록하고 아픈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1951년에 지리산에서 벌어졌던 사건 중에는 국군이 지리산 인근 부락 20여곳을 돌면서 1400여명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빨치산이 인근 부락에서 식량 등을 얻어 가다보니 빨치산 토벌을 위해선 이 공급선을 차단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이주를 시키면 될 일인데, 사람과 집을 몽땅 쓸어버린 것입니다. 이때는 국군도 빨치산에 전우들을 잃다보니 눈에 뵈는 것이 없어서 신천처럼 무자비한 광기가 벌어졌을 겁니다.

이 사건은 6.25전쟁때 국군이 남긴 가장 끔찍한 범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저지른 부대가 누군가하면, 바로 지리산 토벌을 맡은 국군 11사단으로 지휘관은 최덕신이었습니다. 김일성이 회고록에서 비중있게 회상한 화성의숙 숙장 최동오의 아들이죠. 그 우국지사였다던 최동오의 아들이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부대를 지휘한 것입니다.

그는 이런 짓을 저질러 해임되지만, 나중에 군단장도 되고 외무장관까지 합니다. 나중에 박정희 눈 밖에 나서 북으로 도망가죠. 이런 내용은 북에서 1992년에 만든 민족과 운명에서 잘 나옵니다. 1부부터 4부까지 주인공 최현덕으로 나오는, 최창수가 연기한 원형 인물이 바로 최덕신입니다.

최덕신은 남쪽에서 천도교 교령으로 있다가 해외에 나가는데, 천도교는 ‘사람 대하기를 하늘과 같이 하라’를 교리로 내세우는 종교입니다. 숱한 사람의 피를 손에 묻힌 사람이 할 자리는 아니었죠. 물론 영화는 최덕신이 빨갱이를 죽이라고 했더니 부하들이 민간인을 죽인 것처럼 나오지만, 남쪽에서 이후에 증언들이 다 나왔는데 최덕신이 지시했다고 합니다. 어찌됐든 남쪽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해방 후 육사를 다닐 때 그의 교관이었던 인연으로 최덕신은 군단장 외무장관까지 지냈으니 북으로 간 남쪽의 최고위급 인물입니다. 그는 평양에서 편안하게 살다가 1989년 사망했고 그의 부인 류미영은 천도교청우당 당수를 지내다가 2016년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부부가 북에 갈 때 남쪽에는 2남 3녀의 자식을 남겼습니다. 어찌됐든 그들이 북에 갈 때는 전두환 정권 때였으니 자식들은 아무래도 직업 구할 때 어려움이 있었겠죠. 하지만 2000년 8월 15일부터 3일간 적십자상봉이 있었을 때 류미영은 북한 이산가족 방문단 북측 단장을 맡아 서울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헤어진 자녀들과 23년 만에 서울에서 비공개 상봉을 했습니다.

이게 북한 기준으로는 가능한 일입니까? 남에 온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입니다. 그의 가족은 8족까지 멸족됐습니다. 제가 평양에 있을 때 벌어졌던 일이라 생생하지만, 김일성대를 다니던 제대군인 청년이 황장엽 6촌인가 됐는데 어느 날 저녁에 끌려갔습니다. 가면서 “나는 황장엽을 본 적도 없습니다”고 절규했던 일이 대학 학생들 속에서 소문이 났습니다.

만약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황장엽 전 비서가 이산가족 대표단장으로 북에 올라가 자식들을 만나고 온다는 일은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그런데 남쪽은 2000년 이때는 민주 국가니까 조국을 배반하고 김일성의 품에 안긴 류미영이 남쪽에 내려와 자식을 만나는 것을 사상과 이념을 계산하지 않은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허락해 주었습니다.

최덕신의 자식들 중 큰 아들은 독일에 가서 살다가 몇 년 전 사망했고, 둘째 최인국만 남았습니다. 서울에서 부인과 1남 1녀 자식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랬던 그가 6일에 평양에 가서 성명을 발표했죠. 평양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선친의 유해가 있는 공화국에 영주하기 위하여 왔다”며 “가문이 대대로 안겨 사는 품, 고마운 조국을 따르는 길이 곧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언을 지켜드리는 길이기에 늦게나마 공화국에 영주할 결심을 내리게 되었다”고 월북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사진 봤는지 모르겠지만, 북으로 말하면 망명한 황장엽의 아들로 평양에서 산 셈인데 풍채가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게 북이 좋으면 아내와 자식도 데려갈 만한데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70세 넘게 산 그가 북한이 어떤 곳인줄 모르겠습니까. 그러니 가족은 서울에서 풍요와 자유를 누리고 살게 하고, 자기는 북에 가서 천도교청우당 당수 자리를 물려받고 자식에게 손 안 벌리고 대접 받으며 살 수 있다 이렇게 머리를 쓴 것이죠. 물론 천도교청우당이란 것이 신자가 없으니 허울뿐인 자리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북에는 류미영이 남긴 큰 집도 있고 또 환대도 받으니 서울에서 평범하게 살기보단 낫다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뻔히 보이지 않습니까? 북한도 다 알겠지만, 일단 민족과 운명 주인공의 자식이 공화국에 왔다 이러면 상징성도 있고 선전에도 잘 활용할 수 있으니 속심을 알면서도 받아주는 것이죠. 최덕신이 아들이 온 것을 보고 북한 사람들은 “저 사람 미쳤나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뒤에는 다 이런 속셈들이 있으니 놀라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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