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가 안 맞는 북의 ‘북침설’ 주장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1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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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북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6·25 미제 반대 투쟁의 날' 평양시군중대회가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25일 북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6·25 미제 반대 투쟁의 날' 평양시군중대회가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최민석: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를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최민석 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우리가 나눌 주제는 무엇입니까?

정영: 6.25를 맞아 북한 관영 매체들이 또다시 반미선전에 일제히 돌입했습니다. 각 도 시 군들에서는 미국을 성토하는 군중대회를 열고, 주민들을 향해 미제를 쳐부수자는 열띤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북한은 김씨 3대째 6.25 전쟁이 북침전쟁이었다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6.25를 북침전쟁으로 만들고 싶은 북한의 속내를 알아보겠습니다.

최민석: 북한이 주민들을 상대로 매년 벌이고 있는 6.25전쟁의 북침설을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정영기자, 지금 현재 북한에서는 6.25와 관련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정영: 6.25를 맞아 북한 전역에서 또다시 반미 대결선전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북한 매체의 동영상을 보시겠습니다.

북한 동영상 녹취: 미제반대 투쟁의 날 군중대회가 25일 각 도시들에서 진행됐습니다.

6.25를 맞아 평양과 청진, 남포 등 전국의 주민들은 지글지글 내려 쬐는 뙤약볕 아래서 “미제를 타도하자”는 고장 난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구호에 맞춰 열심히 타도하자는 구호를 반세기 넘게 반복하고 있습니다.

현재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미국과의 반미 대결전을 끝장내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상황에서 6.25 전쟁에 대한 선전효과를 노리고 극대화 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최민석: 북한에 계신 주민들은 만약 미국과 전쟁을 하면 어떻게 될지 아실까요?

정영: 북한이 이라크 전쟁이나 파나마 전쟁 같은 영상을 주민들에게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주민들은 잘 모릅니다.

최민석: 글쎄요. 저는 북한이 미국을 쳐부수자는 말을 하는 것은 괜찮은데, 백악관을 까부시는 영상을 공개할 때마다 뜨끔뜨끔 합니다. 저렇게 했다가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우려됩니다.

정영: 북한은 6.25를 맞아 서울을 3일만에 해방시켰다는 주장도 하고 있는데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8일 '탁월한 군사사상과 주체전법으로 원쑤(원수)의 아성을 짓부신(짓부순) 강철의 영장'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서울을 전쟁개시 3일 만에 해방한 이 승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천재적인 전략전술과 독창적인 전법을 훌륭히 보여준 현대전의 빛나는 모범"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이번에도 미국과 남한이 6월 25일 새벽 4시에 불의에 침공한 것을 격퇴하고, 3일만에 서울을 점령했다는 식의 앞뒤가 맞지 않는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최민석: 보통 전쟁을 시작한 쪽이 전쟁 초기에 우세했다는 사실은 세계 전쟁사에서 공식처럼 된 말인데, 북한은 남쪽으로부터 먼저 침공을 당했는데도 3일 만에 수도인 서울을 점령했다는 것은 말도 안되지요.

정영: 주민들도 6.25와 관련한 세계 여러 나라 자료들을 봐야 6.25진실을 알 텐데, 북한당국이 보지 못하게 엄격하게 통제하기 때문에 진실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민석: 6.25 전쟁 당시 남한의 상황은 북한을 공격할만한 수준이 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정영: 6.25 당시의 남북한의 전력을 비교해 보더라도 북한이 훨씬 우세했습니다. 무력부터 보면 북한군은 중국 내전에 참가한 우수한 빨치산 출신 군인을 포함해 20만명이 넘었습니다. 거기에 비해 한국군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찰 수준의 10만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군사장비를 지원받았습니다. 탱크 장갑차 242대였는데, 남한은 한대도 없었지요. 곡사포는 인민군이 552문이었고, 한국군은 90문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전투기는 북한이 226대였고,남한군은 22대의 연습기만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당시 상황을 보면 남한은 북침 할만한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소련이 해체된 다음 1994년 6월 러시아 보리스 엘찐 대통령은 한국 정부에 구소련 기밀문서 216건을 넘겨 보냈습니다. 거기에 따르면 김일성은 남한을 무력으로 공격하겠다고 스탈린의 승인을 얻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모택동의 지원 약속 등도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또 소련공산당서기장(총비서)였던 흐루시쵸프의 회고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1949년에 스탈린을 찾아가 남침에 대한 허락과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이것은 남한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북한의 우방이었던 소련의 최고 관리의 회고록에서 드러난 사실입니다. 러시아의 중학교 교과서에서도 1992년부터는 “6.25전쟁은 북한이 김일성이 주도하여 일으킨 전쟁이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한국 언론은 보도했습니다.

최민석: 그렇게 전력이 우수하니까, 북한이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전쟁 발발해서 석 달 만에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올 수 있었군요.

정영: 6.25는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되어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있기 전까지 미국과 한국이 일방적으로 밀리던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다 미군과 유엔군의 개입으로 6.25전쟁은 세계전쟁으로 변화되었는데요, 북한이 주민들에게 하나 해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최민석: 그것이 뭐죠?

정영: 왜 유엔군이 개입되었는지를 주민들에게 설명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엔은 침략전쟁에 대해서는 국제연합군이 개입해 침략당한 나라를 도와준다는 국제연합체 아닙니까, 때문에 미국을 위시한 16개 나라 군대가 북한의 침공을 막기 위해 전쟁에 참가했고, 세계 40여개 나라가 전쟁물자와 수송을 도와주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왜 유엔이 6.25 전쟁에 참가했는지, 당시 소련과 중국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회 성원국임에도 불구하고 유엔군의 파병이 결정됐는지 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민석: 북한이 먼저 침략했기 때문에 유엔이 그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참전한 것입니다. 그걸 북한은 숨기고 싶은 거죠. 그걸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영: 6.25가 일어난 지 지금까지 66년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째 세습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6.25의 진실은 김씨 가계가 정권을 잡고 있는 한 절대로 수정될 수 없습니다.

최민석: 북한에서는 김씨 일가가 정권을 잡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수련이나 중국에서 자료가 나와도 부정할 것입니다.

정영: 더욱이 북한 노동신문은 6.25 전쟁을 김정은의 대미 대결전과 결부시켜 자랑하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28일 "조선은 미제가 핵을 저들의 독점물로 여기며, 핵으로 위협 공갈하던 시대를 영원히 종식시켰으며, 이제는 우리의 핵 억제력이 미국의 숨통을 조이는 새로운 시대의 막이 올랐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도 지금은 외부정보에 눈을 뜨고 있고, 다큐멘터리 즉 기록영화와 같은 영화들이 북한으로 유입되면서 6.25의 진실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최민석: 북한이 반세기 이상 김씨 3대째를 이어오면서 6,25의 진실을 숨겨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외부정보에 눈을 뜨기 시작한 북한 인민들을 속이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정영기자, 오늘 수고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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