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신년사 ‘자아반성’의 함정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17-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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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이 2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를 경청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2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원희: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를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이원희 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우리가 나눌 주제는 무엇입니까?

정영: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2017년 신년사에서 이례적으로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속에 지난 한해를 보냈다”며 지도자의 부족함을 반성했습니다. 김정은이 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을까, 이를 두고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는데요, 한쪽에서는 주민친화적인 새로운 통치술을 구사하고 있다는 해석과 북한 경제의 궁핍한 책임을 간부들에게 돌렸다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김정은의 신년사 반성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이원희: 김정은이 2016년을 전체 주민들앞에서 사과를 했다는 거죠? 지금까지 이런 사과는 없던 일이 아닙니까,

정영: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이례적으로 자성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직접 한번 들어보시고 이야기를 나누시죠.

김정은 육성(북한 TV):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주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해를 보냈는데 올해는 더욱 분발하고 전심전력하여…

북한 대중매체가 이처럼 수령의 능력부족을 인정한 사례는 김일성, 김정일 시절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입니다.

이원희: 지금까지 북한에서는 수령은 완전무결한 존재로 되어 왔는데,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것은 새로운 접근 같은데요.

정영: 청취자 여러분들도 아시다 시피 북한은 수령중심의 독재 국가입니다. 수령의 교시와 지시가 곧 법으로, 헌법 위의 최고 법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수령은 하늘이 낸 ‘천재’로 절대로 실수가 없다고 교육해왔습니다.

북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완성된 인간은 수령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현재 김정은도 북한에서 수령의 지위만큼 올랐습니다. 북한은 2013년에  노동당 10대원칙을 개정하고, 김정은을 김일성 김정일과 같은 동급으로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노동당 7차 대회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됐습니다.

이원희: 북한에서 ‘수령의 교리’라고 할 수 있는 10대 원칙을 어떻게 개정했습니까,

정영: 북한이 39년만에 개정한 10대 원칙을 보면요, 10조 제1항에는 “수령의 영도밑에 당중앙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확고히 세워야 한다”라고 됐던 것이 “당의 유일적 영도 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끊임없이 심화시키며 대를 이어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바꾸었습니다.

여기서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는 김정은의 영도체계를 말하는 데 사실상 김정은의 영도를 따르라고 법제화한 것입니다.

이원희: 그런 김정은이 자아비판을 했다는 것은 할아버지 아버지 때와는 다르다는 피상적인 효과는 있네요.

정영: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는 저렇게 수령의 부족함을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2009년에 있었던 화폐개혁때도 민심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화폐개혁을 망쳐놓았다”는 혐의로 박남기 노동당 재정계획부장을 처형했습니다. 그리고 김영일 총리가 수천명 평양시 인민반장들 앞에서 자아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중대한 화폐개혁 실패도 수령의 잘못이 아니라 측근들의 잘못으로 떠넘긴거죠.

하지만, 김정은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그처럼 완벽하게 구축해 놓았던 ‘수령완벽주의’에 구멍을 냈습니다.  이를 두고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속심은 다른데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원희: 전문가들은 어떤 술책으로 평가하고 있습니까,

정영: 김정은이 사과를 한 것은 그만큼 통치력을 완전 장악했다는 자신감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성과가 부진한 점을 간부들에게 돌리고, 인민을 중시한다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임으로써 대중적 기반을 넓히려는 의도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원희: 김정은의 사과의 의미에 대해 북한 청취자 분들도 알고 있을 지 궁금하네요.

정영: 일단 주민들은 김정은이 주민들에게 허물없이 사과도 하고, 인민의 고민을 알아주는 지도자라고 비쳐질 수 있지만, 이제는 외부 정보를 알기 때문에 김정은의 속내를 점쳐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는 겁니다.

김정은은 집권초기에 김정일처럼 은둔의 지도자가 아니라, 개방적인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시킨바 있습니다.

2012년 봄이었지요. 김정은이 만경대 유희장을 둘러보고 보도 블록 사이에 난 잡초를 뜯으면서 관리가 엉망이라고 질책했습니다. 그리고 평양 순안국제공항을 찾아서는 민족성을 살리지 못했다고 간부들을 질책했습니다.

언제나 완벽함만을 주장하던 북한 매체에 이러한 북한의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은 김정은 체제 들어 새로운 모습으로 비쳐졌습니다. 아마 주민들도 이러한 보도행태를 보면서 “역시 젊은 지도자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이번 신년사에서도 김정은이 사과를 발표한 것은 주민 친화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번에 사과 반성에 특별히 주의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원희: 그 사람들이 누구지요?

정영: 바로 간부들에게는 혹독한 선전포고가 된다는 지적입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일심단결의 화원을 어지럽히는 독초인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 행위를 뿌리뽑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자신은 잘하고 있지만, 밑에 있는 간부들이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민들이 못산다는 ‘간부 책임론’을 전면에 내세운 것입니다.

지난해 한국으로 귀순한 태영호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전 공사의 말입니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한국언론 녹취): 나는 어떻게 하면 너희들 잘 살게 해보겠다고 진짜 쉬지 않고 뛰어다니고 있는데, 문제는 나를 받치고 있는 간부층, 간부들이 내가 하라는 대로 제대로 못해서 너희가 못 살아….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23일 진행된 제1차 전국 노동당(전당) 초급당위원장 대회에서 부정부패가 하부 당조직까지 만연한 것을 질타하고 이를 시정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는 김정은의 통치권에 도전하거나 권위를 훼손하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강력히 응징할 것을 주문한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당시 진행된 제1차 초급당 위원장 대회는 처음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노동당 일꾼 대회라는 취지에 맞지 않게 살벌했는데요. 사상 선동을 책임진 김기남 노동당 부위원장은 “당과 수령의 권위를 훼손시키거나 그에 감히 도전하려는 자그마한 요소도 가차 없이 짓뭉개버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 매체에 이처럼 강도높은 폭압적인 발언이 그대로 보도되었다는 것은 당시 회의 상황이 살벌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요. 때문에 올해에는 간부들에 대한 숙청가능성이 어느때보다 더 높게 점쳐지고 있습니다.

이원희: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부각시킨 지도자의 능력 부재 표현이 결코 겸손한 표현이 아닐 것이란 지적이군요.

정영: 눈여겨 볼 것은 김정은 사과의 후과가 곧 주민들에게 닥친다는 점입니다. 김정은은 신년사 말미에 “우리 인민을 어떻게 하면 신성히 더 높이 떠받들 수 있겠는가 하는 근심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라고 하면서 “올해에는 더욱 분발하고 전심전력하여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찾아할 결심을 가다듬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채찍을 든 간부들의 분발을 요구한 것으로, 그 채찍은 당연히 인민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제시한 경제관련 과제들이나 목표들을 보면 원론적인 내용이고, 이미 전에 되풀이했던 말들입니다.

전력, 금속, 화학공업 부분, 그리고 석탄공업과 철도, 운수부분 선행발전은 김일성때부터 강조된 것인데,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문제는 지난해 북한이 목표로 내세웠던 평양 려명거리를 올해 4월 15일까지 끝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전국가적 역량이 여명거리에 투입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드는 돈과 노력은 어디서 날것인가, 바로 인민들에게 열심히 내라고 할 것입니다. 노력동원을 시키고, 주민들에게 세부담을 늘려서 돈을 걷고, 그렇게 되면 결국 인민들의 허리만 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이원희: 결국 김정은이 간부들에게 분발하라고 하는 것은 인민들을 더 호되게 다루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그러면 인민들은 더 죽게 되는것입니다.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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