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수비형’ 정권

워싱턴-박봉현 parkb@rfa.org
201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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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6일 발간한 '2014 국방백서'에서 북한군 병력은 국군의 2배 수준인 120만명으로 늘었고 전차와 장갑차, 방사포 등 지상 전력과 전투함 등 해상 전력도 증강된 것으로 분석했다.
국방부는 6일 발간한 '2014 국방백서'에서 북한군 병력은 국군의 2배 수준인 120만명으로 늘었고 전차와 장갑차, 방사포 등 지상 전력과 전투함 등 해상 전력도 증강된 것으로 분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전원 수비형 정권’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축구는 남한은 물론 북한에서도 사랑 받는 운동입니다. 축구에서는 대개 공격과 수비를 적절히 배합해 운용하는 게 정상입니다. 그러나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극단적인 전략도 등장합니다. ‘전원공격-전원 수비형’ ‘전원 공격형’ ‘전원 수비형’ 등 세 가지 전략이 그것입니다.

소위 ‘토탈 사커’로 불리는 ‘전원 공격-전원 수비형’은 네덜란드 대표팀이 1974년 서독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처음으로 선을 보였습니다. 전 후반 90분을 수문장을 제외한 모든 선수가 쉬지 않고 공격과 수비에 가담하는 전법입니다. 네덜란드 팀은 전세계 축구 애호가들을 놀라게 했고 준우승을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습니다. 하지만 이 전법은 아무 팀에나 적용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선 선수들의 체력이 남달라야 하고 기량이 뛰어나야 합니다. 상대 팀 선수와 도토리 키 재기 정도의 체력과 실력으론 와르르 무너지는 전략입니다. 그래서 실제 거의 활용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전원 공격형’은 가끔 사용됩니다. 한 골 차로 지고 있는데 남은 시간이 별로 없을 때입니다. 수비에 소홀하다가 골을 더 먹어도 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그렇습니다. 심지어 수문장까지 적진에 뛰어들어 공을 발로 차고 머리로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벼랑 끝에 몰리자 전열을 흩뜨리면서까지 쓰는 고육책이지요.

세 번째, ‘전원 수비형’도 종종 볼 수 있는 전법입니다. 득점에서 앞서 가고 있는 팀은 현 상황을 지키기 위해서 선수 전원이 상대 진영에서 철수해 자기 진영에만 머뭅니다. 홍수로 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온몸으로 지켜내는 형국입니다. 물론 이 전법은 이기고 있을 때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에 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다면 목이 터지라 응원하는 제 나라 국민에게서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핀잔을 듣게 됩니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극단적인 축구 전략을 나라의 운용과 견줘봅니다. 축구의 공격은 국민의 삶을 풍성하게 하려는 국가 정책으로, 수비는 외부의 위협이나 침략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정책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축구의 공격은 경제발전, 수비는 국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겁니다. 국민의 삶이 피폐한 나라일수록 수비보단 공격, 즉 국방보단 경제에 국력을 쏟아야 합니다. 맹목적으로 ‘전원 공격형’을 따르라는 것은 아닙니다. 수비수를 공격에 더 투입하자는 겁니다. 국방에 들이는 힘을 일정 부분 비축해 경제 살리는 데 전환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세계화 시대의 무한경쟁에서 국가 경제를 살리고 탄탄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처럼 경제가 바닥 수준인 나라는 ‘수비’보단 ‘공격’에 무게를 두어야 수십 년 동안 뒤처진 경제를 되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 정권은 무슨 꿍꿍이속인지 ‘공격’보다 ‘수비’에, 경제보다 국방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아니 거의 ‘전원 수비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며칠 전 남한 국방부가 발표한 ‘2015 국방백서’를 보면, 2014년 기준으로 북한군은 120만여 명이고 남한은 63만 여명입니다. 남한 인구가 약 5천만 명이고 북한 인구가 2천450만 여명이니 인구 비례로 하면 북한군은 남한군의 4배 수준입니다. 경제 일꾼으로 전면에 나서야 할 젊은이들이 대거 국방에 투입된 셈입니다. 축구에서 골을 넣어야 할 공격수 대다수를 수비수로 배치해 발을 묶어 놓은 모양새입니다.

남북한의 경제규모에서 북한의 정책이 ‘전원 수비형’에 가깝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 인당 국민총소득에서 북한은 남한의 20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북한 주민 20명이 1년간 열심히 일해서 버는 소득을 합해야 남한 주민 한 명의 소득과 엇비슷하다는 겁니다. 같은 민족인데 수십 년간 다른 체제에서 살다 보니 이런 극명한 차이가 생겼습니다. 그런데도 북한 주민은 터무니없이 많은 군인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북한 주민에겐 정말 힘 빠지게 하는 현실입니다.

북한정권의 ‘전원 수비형’ 전략에 국제사회가 훈수를 두고 있습니다. 수비에 너무 몰입하지 말고 공격에 진력할 것을 간절하게 권고합니다. 국방에 몰두하는 ‘선군정치’ 대신 경제발전에 도움되는 ‘개혁 개방 정책’을 독려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북한은 지킬 것보다 새로 이뤄야 할 것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북한 정권은 ‘전원 수비형’의 진용을 허물지 않습니다. 온 힘을 다해 지켜야 할 대상은 바로 주민이며, 경제발전으로 이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공격’에 나서야 하는데 딴청을 부리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조금이라도 변화를 촉구하면 배우려는 자세를 보이는 대신 발끈하며 원색적인 욕을 해댑니다.

북한 정권이 이토록 철벽 수비로 지키려는 게 과연 무엇일까요? 주민의 편안한 삶일까요? 주민의 인권과 자유일까요? 아닙니다. 주민에 고난의 삶을 안긴 ‘김씨 일가의 세습 독재’가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내던져버리라고 당부하는 것을 북한 정권은 보물단지인양 부둥켜안고 있습니다. 이가 썩는 줄 모르고 온종일 사탕을 물고 있는 어린아이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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