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균돼지의 위험성

워싱턴-박봉현 parkb@rfa.org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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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제621호 육종장. 이 육종장은 염소를 비롯한 우량 품종의 초식가축을 기르는 군부 소속의 축산농장이다.
북한군 제621호 육종장. 이 육종장은 염소를 비롯한 우량 품종의 초식가축을 기르는 군부 소속의 축산농장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무균돼지의 위험성’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미국의 교양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1961년부터 2011년까지 50년간 세계 22개국의 식단과 영양상태의 변화에 대한 조사 결과를 최근 소개했습니다. 이 기간에 두드러진 변화는 고기 소비량이 두 배나 늘었다는 점입니다. 남한 사람의 식단을 보면, 이 기간 영양섭취에서 곡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절반 가까이 줄어든 반면, 고기의 비중은 2%에서 12%로 6배로 증가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 경제가 고도 성장한 것이 주원인으로 지적됩니다. 특히 한국인은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편, 북한은 50년 전 고기 섭취 비중이 6%로 남한보다 높았으나 대기근을 겪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고기 소비가 급감했다가 이제 겨우 50년 전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요즘 북한이 주민들의 영양 개선을 위해 목축사업에 신경을 쓴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정작 주민에 고기가 원활하게 지속적으로 공급되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실제 북한당국이 올 봄에 몇 달간 일부 지역 주민에게 돼지고기를 배급했습니다. 겉으론 목축사업이 잘 돼 주민의 고기섭취가 쉬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돼지 사료로 주민의 식량인 강냉이를 쓰자 원성이 자자했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돼지 수를 갑자기 줄이면서 도축된 돼지의 고기를 주민에게 나눠줬다는 겁니다. 정책 실패로 말미암은 일시적인 배급이므로 지속적인 영양 개선과는 무관합니다.

하기야 돼지고기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이슬람교도들은 자신의 성전인 ‘꾸란’의 가르침을 따라 돼지고기를 멀리합니다. 종교적인 이유든, 문화적인 이유든, 위생적인 이유든 이슬람교도들은 돼지고기 섭취를 금기시합니다. 하지만 남한에선 돼지고기가 맛 좋고 영양 많은 음식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대다수 남한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손쉽게 구해 즐깁니다.

북한 사람도 돼지고기를 좋아할 겁니다. 하지만, 북한에선 돼지고기를 먹기 어렵습니다. 공급이 달리고 그나마 돼지고기를 사 먹으려 해도 대다수 주민은 돈이 부족해 군침만 삼키다 맙니다.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하고, 그것도 돈이 없어 그렇다면 서글픈 처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북한 주민에겐 돼지고기가 밥상에 오르는 것만으로 감개무량할 겁니다.

이런 북한에서 일반 돼지로는 성이 차질 않아 특수 돼지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정은과 고위층입니다. 이들은 일반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균이 없는 돼지고기만을 먹습니다. 잡식성인 돼지 몸에 기생충이나 사람의 몸에 해로운 병균이 들어 있어 불결하다는 생각에서 그런가 봅니다.

이에 대해 잘 아는 한 탈북자는 평안남도 안주시 운곡지구의 비밀목장에서 무균돼지를 사육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돼지에 균이 생기지 않도록 특급 사료를 제공하고 사육사들도 엄격한 위생관리와 통제 속에 지낸다고 합니다.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이젠 김정은과 고위층의 식탁에 무균돼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입니다. 일반 주민들은 무균돼지는커녕 일반 돼지고기도 먹기 어려운데 말입니다.

‘군주는 배, 서민은 물’이란 옛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배가 멋지고 성능이 좋아도 물이 없다면 한 치도 전진할 수 없으니 배와 물은 운명공동체입니다. 또 배가 물의 생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뒤집혀 침몰할 수도 있음을 가르칩니다. 김정은과 측근들은 무균돼지 고기만 먹고 북한 주민들은 돼지비계조차도 구경하기 어려운 현실은, 북한 지도부와 주민 즉 ‘배’와 ‘물’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배’와 ‘물’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 지도자 가운데 중국 왕조 후한 말기의 권력자 동탁이 있습니다. 삼국지를 보면,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한 동탁은 무고한 백성을 도륙한 폭군이었지만, 한편으론 누군가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두려움에 잠을 잘 때도 옷 속에 별도로 갑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동탁은 이 갑옷이 자신을 지켜줄 것으로 믿었을 겁니다. 하지만, 동탁은 심복 여포의 칼날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고 폭정을 일삼은 대가였습니다.

동탁이 갑옷을 입으면 안전할 거라 믿은 것처럼 김정은은 무균돼지고기를 먹으며 적어도 건강 염려는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김정은이 언제까지 무균돼지 고기를 먹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고기에 주린 주민들은 떠오르지 않고, 식탁에 오른 무균돼지 고기가 입안에서 살살 녹고 목으로 술술 넘어간다면 ‘김정은 호’의 순항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민심이 점차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균돼지 사육에 들인 공의 절반도 일반돼지 사육에 쏟지 않으면 언젠가 민심의 분노가 ‘김정은 호’를 삼킬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이 주민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지 않는 한, 무균돼지 고기를 즐길 수 있는 날이 무한정 보장되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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