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최고존엄’

워싱턴-박봉현 parkb@rfa.org
2015-03-23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지난 2013년 "우리의 최고존엄까지 시비중상하는 것은 또 하나의 특대형도발 추태"라고 비난하는 조평통 대변인의 담화 발표 모습.
지난 2013년 "우리의 최고존엄까지 시비중상하는 것은 또 하나의 특대형도발 추태"라고 비난하는 조평통 대변인의 담화 발표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두 종류의 최고존엄’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마하트마 간디가 하루는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열차가 도착하자 간디는 열차 계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런데 한쪽 신발이 벗겨져 땅에 떨어졌고 열차는 떠나려 했습니다. 안타깝게 신발을 내려다보았지만 열차를 세울 수 없는 상황이라 간디는 주저하지 않고 다른 쪽 신발을 마저 벗어 이미 땅에 떨어진 신발 쪽으로 던졌습니다. 어차피 자신이 신고 있던 반쪽 신발이 무용지물이 된 터라 두 신발을 한 곳에 몰아주면 누군가 신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간디에 관한 이 일화에는 이웃에 대한 그의 배려가 배어있습니다.

간디의 이웃 배려는 조국 인도와 인도국민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됐습니다. 영국의 식민지배 하에서 인도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간디는 그의 비폭력 저항 정신으로 인도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간디는 국민적 추앙을 받았지만 세속적인 권력욕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국민의 안위만을 생각했지, 국민을 휘두를 권력을 탐하진 않았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훌륭한 지도자로 인식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인도에 간디가 있다면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넬슨 만델라가 있습니다. 만델라는 인종차별주의 백인정권하에서 고통 받는 흑인 주민을 구하려 투쟁하다 종신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국제사회의 압력에 힘입어 옥고 26년 만에 출소한 만델라는 다시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정치적 보복도 하지 않았고 되레 백인과 흑인의 국민 화해에 혼신을 다했습니다. ‘용서란 이렇게 하는 거야’ 하고 가르치는 듯 했습니다.

퇴임 후 만델라가 노환으로 2013년 7월 18일 병실에서 95회 생일을 맞자 유엔은 이날을 ‘만델라의 날’로 선포하고 쾌유를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몇 달 뒤 사망하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오바마 미국대통령 등 전 세계 70여 개국 정상이 장례식에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대통령 퇴임 후 14년이 지나 평범한 주민으로 생활했으니 특별히 눈도장을 찍으려 했다거나 이권 때문에 참석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의 삶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었으면 권력에서 떠난 만델라의 장례식에 그 많은 각국 정상들이 참석하진 않았을 겁니다. 만델라의 흡인력은 숭고한 그의 삶에서 나왔습니다. 만델라는 자서전 ‘Long Walk to Freedom’에 기술한 대로 용서와 화해 정신을 실천하는 데 솔선수범했습니다.

간디와 만델라는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며 희생을 감수하고 고통을 감내한 ‘큰 지도자’입니다. 두 사람 각각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만 큰 지도자로 추앙받는 게 아닙니다. 이들은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매우 존엄한 지도자로 각인돼 있습니다. 자유 세계에서는 존엄이니 최고존엄이니 하는 표현을 지도자에게 붙이지 않지만, 간디와 만델라는 그 정도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대놓고 최고존엄이란 말을 씁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북한 매체에서 심심치 않게 맞닥뜨리는 용어입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도발이나 인권문제를 언급하면, ‘최고존엄을 건드린다’며 버럭 화를 냅니다. 김정은 측근이나 당 간부, 그리고 김정은 정권에서 단물을 빨아 먹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겠지요. 하지만 일반 주민들도 그럴까요?

북한에서 이른바 최고존엄은 그나마 세뇌교육과 정치조작으로 90년대 중반까지는 그럭저럭 유지됐었으나 대기근을 겪으면서 민심이 서서히 최고존엄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김일성 김정일 회고록이나 노작이 통째로 아궁이에 던져져 불쏘시개로 사용되기 일쑤라고 합니다. 걸리면 경을 칠 일이지만 재로 변했으니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집에 소중히 간직해 읽고 또 읽도록 지시받은 최고존엄에 관한 책이지만 보통 소설집보다 푸대접을 받습니다. 이렇게 최고존엄의 빛은 바래고 있습니다.

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북한당국은 김일성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멋들어지게 단장한다는 명목으로 벼룩의 간을 빼먹듯 주민들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습니다. 아예 ‘김일성 김정일 기금’이란 것을 만들어 대놓고 모금 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여윳돈이 있으면 몰라도 살아갈 걱정이 태산인 주민들을 북한의 최고존엄은 자꾸만 몰아치고 있습니다.

자유세계의 최고존엄은 아래로부터, 민심에서 솟아납니다. 그런데 북한의 최고존엄은 위에서 막무가내로 내리누릅니다. 민심을 딛고 일어선 최고존엄은 오래갑니다. 그러나 강제로 내리 먹인 최고존엄은 한순간에 아궁이 불쏘시개로 전락하고 마는 법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