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할 일 없는 감사문

워싱턴-박봉현 parkb@rfa.org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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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금수산태양궁전 광장 조성에 기여한 일꾼들에게 보낸 감사문 전달모임 지난 4월 30일 궁전 광장에서 열렸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금수산태양궁전 광장 조성에 기여한 일꾼들에게 보낸 감사문 전달모임 지난 4월 30일 궁전 광장에서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감사할 일 없는 감사문’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감사문을 발표했습니다. 감사문은 쓰는 이의 마음이 겸손하고 그 내용이 진솔해야 호소력이 있습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됐듯이 마구 성내고 폭력적 권력을 휘둘러댄 김정은이 무슨 감사의 마음으로 글을 썼는지 의아합니다. 이를 대서특필한 노동신문의 행태도 이색적입니다. 5월 26일 자 노동신문은 1면에 감사문 전문을 대문짝만 하게 게재했습니다. 감사문은 ‘청년들을 시대의 선구자들로 키워낸 당조직들과 청년동맹조직들에게’ 보내는 글입니다.

온갖 미사여구로 장식된 감사문은 특히 청년의 자립성과 창발성(창조성)을 강조했습니다. 감사문은 당조직과 청년동맹조직이 이를 위해 애썼으며 앞으로 더욱 매진하라고 독려했습니다. 또한 자립성과 창발성을 고양하기 위해 ‘청년들의 심리적 특성’을 잘 살려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감사문은 개성을 존중하고 소질을 고려해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회 환경과 교육을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 보입니다. 이는 비단 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추구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성장과 발전이 나라의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감사문이 언급한 청년의 자립성은 개인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때 한결 수월하게 이룰 수 있습니다. 소중한 재능을 썩히면서 하기 싫은 일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건성으로 할 때 창발성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축구에 타고난 소질을 가진 사람에게 소질도 없고 흥미도 없는 음악을 시키면 자립성과 창발성을 높일 수 있을까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스페인 즉 에스파냐 프로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며 올해 최우수선수로 뽑힌 메시의 부모가 메시가 어릴 때 축구를 못하게 하고 음악을 강요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메시의 재능은 땅에 묻히고, 메시는 창발성은커녕 자립성을 갖춘 삶을 살기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아르헨티나는 축구영웅의 조국이란 영예를 얻지 못했을 것이고, 지구촌 축구애호가들은 메시를 향해 열광하는 기쁨을 맛볼 수 없었을 겁니다.

반대로 음악에 천부적인 능력을 보인 사람을 매일 축구장에 데려 가 연습을 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독일의 세계적 음악가 베토벤의 부모가 어린 베토벤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면 손을 때리고 잡아채 축구장으로 끌고 간 뒤 공을 던져주고는 밤 늦게까지 훈련시켰다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의 주옥 같은 곡과 연주는 세상에 등장하지 못했을 겁니다.

김정은이 감사문에서 강조했듯이, 자립성과 창발성은 ‘청년들의 심리적 특성에 맞게 긍정적 소행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는’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자립성과 창발성은 자율성에 기초합니다. 자율과 자유를 망각한 채 아무리 자립성과 창발성을 떠들어봐야 메아리 없는 외침에 불과합니다.

김정은이 감사문에서 언급한 대로 젊은이들의 재능을 잘 가려내고 살려 개인의 발전과 국가의 부흥에 이바지하도록 한다면 고무적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한쪽에선 자립성과 창발성을 강조하면서 다른 쪽에선 타율과 강제가 판을 치고 있는 까닭입니다.

일례로, 북한당국은 수재학교인 1고등중학교 졸업반 학생들 가운데 일부를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공군 조종사 요원으로 징발하고 있습니다. 군사동원부 간부들이 직접 학교에 와 조종사에 적합한 신체조건을 가진 학생들을 데려갑니다. 선발된 학생 본인과 가족에게 혜택이 주어지지만, 정작 학생과 학부모는 혜택은 안중에 없고 울상이라고 합니다.

전쟁 시 자살특공대로 죽을 수 있고 비행기 노후로 추락사가 빈발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이가 들어도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으면 쉽게 제대시켜 주지 않아 평생을 군대에 있어야 한다는 점도 기피 이유입니다. 그러니 조종사 요원으로 징발되는 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나 돼지처럼 처량한 신세로 여겨지는 겁니다.

더구나 이 학생들은 북한에서 가장 영민하다고 합니다. 국방은 나라의 근간이고 조종사 양성은 나라 지키기의 중요한 부분이니 영재들에게 이런 일을 맡기는 것도 터무니없는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북한에 당장 절실한 것은 전투기를 조종할 요원이 아니라 경제를 살릴 요원이라는 데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경제를 살릴 두뇌를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해야 하는 판에 영재들을 다른 데 징발하고 있다는 게 안타까운 일입니다.

신음하는 경제 위에 쌓아 올린 ‘선군’은 모래성일 뿐입니다. 김정은의 화려한 감사문은 청년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데 대한 통렬한 반성문이었어야 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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