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식 국제경쟁력

워싱턴-박봉현 parkb@rfa.org
201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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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통신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천지윤활유공장을 현지지도했다고 지난 6일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천지윤활유공장을 현지지도했다고 지난 6일 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김정은 식 국제경쟁력’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얼마 전 천지윤활유공장을 방문해 공장근로자들에게 “윤활유와 그리스의 기술적 지표를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부단히 갱신”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국내에서 아무리 경쟁력이 좋은 제품이라도 국제시장에 내놓을 수 없다면 경제발전을 바랄 수 없다 보니 한국이나 미국의 지도자들도 국제 경쟁력 제고에 힘쓰자고 역설합니다. 그런데 국제경쟁력을 높이려면 활발한 인적 교류와 정보 유통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나라가 개방돼야 합니다.

미국 동부 뉴욕 인근에 있는 스태튼 아일랜드 대학에서 국제정치를 가르치는 피터 카바치니크 교수가 며칠 전 제 사무실을 찾아왔습니다. 카바치니크 교수는 북한인권 문제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부모님에게서 연유했습니다.

카바치니크 교수의 부모님은 스탈린 치하 소련 노동수용소에서 인권 유린을 참다못해 탈출했고 유럽을 거쳐 미국에 건너왔지만 고향을 잊지 못했습니다. 마침 소련의 새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개방 정책을 펼치면서 국외 망명자들에게도 고향방문 허가가 나왔고 부모님은 1988년 꿈에 그리던 고향에 가 가족 친지를 만났다고 합니다.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은 인적 교류를 활성화했고, 결국 오랜 세월 ‘철의 장막’이 드리운 소련사회에 변화의 물결이 밀려들었습니다. 개방으로 서구사회의 발전상을 알게 된 소련 사람들은 소련 사회의 현실을 깨닫고 강력한 변화를 갈망했습니다.

북한의 폭정을 견디다 못해 모국을 떠난 수많은 탈북자도 고향을 그리워하긴 카바치니크 부모님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이들에게 고향방문을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유를 찾아 북한을 떠나는 것도, 자유세계를 알리려 북한에 들어가는 것도 불허합니다. 북한에서 태어나 자라고, 다른 나라에서도 살아 본 탈북자들이야말로 누구보다 공정하게 두 사회를 비교할 수 있으며, 이들이 북한사회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다면 김정은의 호위병보다 체제유지에 더 큰 힘을 보탤 텐데 말입니다.

실상 북한 당국은 탈북자들을 눈엣가시로 여깁니다. 너무 많은 진실을 알고 있는 까닭입니다. 탈북자들은 북한의 ‘어두운 삶’을 꿰뚫고 있으면서 바깥세상의 ‘밝은 삶’에 대해서도 견문을 넓혔습니다. 그러니 ‘북한을 떠나면 정말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주민에게 전해지는 게 무서울 겁니다. ‘북한에서는 수령님과 장군님의 하해와 같은 은덕으로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이 보장된다’는 구호가 허구임이 드러나는 게 두렵겠지요. 북한 당국은 탈북자만 적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북한에 남은 그들의 가족까지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해 특별관리합니다. 이들이 탈북자로부터 다른 세상에 대해 듣고는 이웃에게 전할까, 또는 이들도 탈북 대열에 동참할까 염려하나 봅니다.

소련의 개방이 미소 냉전체제의 종식을 가져왔듯이 북한의 개방은 한반도의 냉전구도를 끝낼 수 있습니다. 북한의 개방은 ‘수령님이나 장군님의 은덕’ 대신 ‘인적 교류의 혜택’을 북녘 땅에 소나기처럼 퍼부을 겁니다. 그런데도 북한은 개방의 ‘개’자만 꺼내도 반동으로 몹니다. 앞에선 국제경쟁력을 높이자면서, 뒤에선 국제경쟁력을 깎아 내립니다.

인적 교류와 함께 ‘국제경쟁력 제고’란 쌍두마차를 이끄는 것은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입니다. 이는 국제전화와 인터넷으로 압축됩니다. 북한주민은 국제전화 통화가 허용되면 외부의 소식을 신속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은 온갖 중요한 정보를 싣고 물리적인 국경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듭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주민의 국제통화를 차단할 뿐 아니라 중국 국경지역에서 국제전화를 하는 주민을 적발해 벌하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에선 소수만이 정책 목적으로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으며 대다수 주민은 인트라넷 즉 국내 연결망만 사용합니다. 당국은 주민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정보통신 전문가 수십 명이 지난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모여 북한에 정보를 들여보낼 방안을 마련하느라 머리를 맞댔겠습니까?

‘국제경쟁력’ 하면 단연코 스위스입니다. 스위스는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국제경쟁력 순위에서 5년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요르그 알레 딩 한국 주재 스위스 대사는 그 비결로 ‘개방성’을 꼽았습니다. 스위스는 김정은이 유학한 나라입니다. 김정은이 천지윤활유공장에서 한 ‘국제 경쟁력’ 발언이 스위스 유학 시절의 뼈저린 체험에서 우러나왔기를 기대해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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