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과 ‘햇볕정책’

워싱턴-박봉현 parkb@rfa.org
201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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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노동신문이 보도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참관하에 실시된 연평도·백령도 타격 포 사격훈련 장면.
지난해 3월 노동신문이 보도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참관하에 실시된 연평도·백령도 타격 포 사격훈련 장면.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김정은과 햇볕정책’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과거 남한의 김대중 정부는 한반도 냉전구도를 혁파하기 위해 대북 ‘햇볕정책’을 펼쳤습니다. 이 정책은 완고한 사람이 외투를 벗도록 강한 바람을 불어대는 대신 따뜻한 햇볕을 내리쏟는 포용정책입니다. 남북화해와 교류증진이라는 취지에서 시작돼 노무현 정부에까지 이어진 햇볕정책은 ‘교류 활성화’란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북한의 핵개발 지원’이란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남한의 현 정부나 차기 정부에서 햇볕정책을 구사할지는 예단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정책을 채택하더라도 북한을 상대로 해서 민족화해와 화합을 이뤄낼지도 미지숩니다. 순수한 의도로 햇볕정책을 펴더라도 북한이 이를 역이용한다면 효과는커녕 역효과만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햇볕정책과 관련해 분명한 게 하나 있습니다. 햇볕정책은 바로 지금 북한정권이 주도권을 잡고 전개해야 할 정책이란 점입니다. 남한 정부에서 이 정책을 펴거나 말거나 개의치 말고 일방적으로 이 정책을 만천하에 공표하고 남한과 미국을 상대로 즉각적으로 집행해야 한다는 겁니다.

북한이 햇볕정책을 채택한다는 것은 냉전적 사고를 버리고 국제사회의 세계화 구도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북한의 햇볕정책의 일차적 과녁은 남한과 미국의 연합군사훈련의 수위를 점진적으로 낮추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북한이 늘 주장했듯, 이 훈련을 북한의 안보에 위협적인 요소로 간주하는 까닭입니다. 남한이 대북 햇볕정책을 썼을 때 북한이 냉랭하게 대응했지만, 북한이 햇볕정책의 틀에서 화해의 자세를 보이며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면 남한과 미국은 긍정적으로 반응할 겁니다.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에 유난히 민감하게 짜증을 내는 이유는 안보불안 때문만이 아닙니다. 경제적인 이유가 더 크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국의 유력 정치인은 과거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비서에게서 직접 들었다며, “남한은 돈이 많으니까 군사훈련을 하지만, 우리는 돈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남한이 훈련에 전투기와 함정을 동원하면 그에 상응하면 전투기와 함정을 출동시켜야 하는데, 북한이 그 비용을 감당하려면 허리가 휜다는 겁니다. 또한, 훈련 참가 군인들의 이동에도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되니 남한보다 돈이 없는 북한으로선 울며 겨자 먹기 식의 맞대응입니다. “이제 그만 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을 겁니다.

북한이 허장성세를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남북한의 경제력은 해를 거듭할수록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경제력을 견주는 중요한 잣대인 국민총소득에서 올해 북한은 남한의 약 40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군사 훈련은 돈이 없으면 지탱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이 남한의 군사훈련, 그것도 단독훈련이 아니라 세계 최강국 미국과 함께하는 훈련에 핏대를 올리는 게 하등 이상하지 않습니다.

경제가 따라가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무리하게 대응 훈련을 지속하다간 민심이 돌아설 수 있습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뱁새는 뱁새만의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그게 바로 ‘북한의 햇볕정책’입니다. 황새와의 힘에 겨운 경쟁을 끝내는 정책입니다. 남한과 미국의 연합훈련을 단계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정책입니다.

어찌 보면 간단합니다. 북한지도자 김정은이 맘 한번 크게 먹으면 됩니다. 한반도의 긴장은 북한의 무력도발, 특히 핵개발 위협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러니 긴장의 원인이 된 핵심 요인을 제거하겠다며 핵개발 프로그램 포기를 선언하는 겁니다. 김정은이 유엔을 방문해 이를 천명하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평양에서 외신기자들을 불러모아 발표해도 아쉬울 것은 없습니다.

북한이 냉전구도를 깨기 위해 선제적으로 햇볕정책을 공표하고 구체적인 이행 청사진을 제시하면 남한과 미국은 군사훈련과 관련해 이에 비견할 가시적인 대응을 할 겁니다. 이로써 꽉 막힌 수도관이 뻥 뚫리듯 한반도를 휘감은 먹구름 정국이 물러가고 안정과 평화의 기운이 찾아올 겁니다.

한 때 남한이 야심 차게 추진하다 북한의 비 협조로 벽에 부딪힌 뒤 창고에 처박힌 대북 햇볕정책을 이번엔 북한이 꺼내 들고 세상에 나오는 장면을 그려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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