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건강과 ‘의료외교’

워싱턴-박봉현 parkb@rfa.org
201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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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제1위원장이 왼쪽 다리를 절며 일용품을 생산하는 '10월8일 공장'을 시찰하는 모습.
김정은 제1위원장이 왼쪽 다리를 절며 일용품을 생산하는 '10월8일 공장'을 시찰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김정은의 건강과 의료외교’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며칠 전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제 이모부에게서 사진이 첨부된 전자우편을 받았습니다. 북한에 쿠데타가 발생했고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체포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진은 김정은이 군인 두 명에게 팔을 끼운 채 서 있는 장면입니다. 장성택이 군사재판에 회부되기 전 끌려가던 모습과 흡사합니다. 김정은이 한 달 넘게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자, 신변과 관련해 근거 없는 소문이 인터넷을 타고 급속히 퍼져 정치에 관심 없는 제 이모부에게까지 전달됐나 봅니다.

다리를 절던 김정은이 수술을 받았으며 현재 별장에서 회복 중이라는 설이 있고, 평소 술을 좋아해 통풍에 걸렸다는 좀 더 구체적인 추측도 있지만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김정은이 지난달 초 공식석상에서 사라지기 전 북한 매체가 ‘불편하신 몸’이라며 ‘건강 이상 설’을 시인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 두문불출하는 이유가 정확하게 밝혀질지 의문입니다. 추후 김정은이 등장하고 북한매체가 그 동안의 일을 보도한다 해도 전적으로 신뢰하긴 어렵습니다. 사실을 말한다 해도, 사안을 입맛대로 변조해 온 북한 당국의 전력 때문입니다.

이번 일로 북한의 불투명성이 새삼 도마에 올랐습니다. 과거 왕조시대에 군왕의 신변은 상당 부분 가려져 있었습니다. 왕이 행차하면 백성들은 얼굴을 땅에 대야 하고 만일 얼굴을 들어 볼라치면 몽둥이세례를 받던 것처럼 말입니다. 왕이 범접하기 어려운 신적인 존재로 간주되듯 김정은도 그렇게 여겨지는지 모릅니다. 북한의 국명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나타난 것처럼 적어도 겉으론 민주주의를 표방했지, 왕정을 자랑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신변과 관련한 현상은 왕정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 미국 등 대다수 민주국가는 대통령 유고 시 국정을 대행할 사람을 명문화해 국정 혼란을 최소화합니다. 하지만, 북한에선 김씨 일가 우상화로 수십 년이 흘렀고, 김정은이 거의 독점적으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구조라 김정은 유고 시 국정 혼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민심이 뒤숭숭하지 않도록 김정은의 신변에 대해 명쾌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한 달이 넘도록 장막으로 가리는 것이 진정한 민심 수습책인지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북한 당국이 ‘역심’을 품고 있는 인사들의 모반을 염려해 김정은의 행보를 비밀에 부쳤을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 면전에선 간이라도 빼줄 태세로 아부를 떨지만, 속으론 다른 생각을 품은 인사가 없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이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몸이 아프고 일정 기간 요양이 필요해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은 노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당, 정, 군을 아우르고 있는데 무엇이 그리 겁이 난단 말입니까? 그러고도 반대세력의 도전을 두려워해야 한다면 겁쟁이란 말을 들어도 유구무언일 겁니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괴한의 총탄을 맞고 수술대에 올랐었습니다. 전신마취 직전에 주위에 모인 의료진에게 “여러분 모두 공화당이면 좋겠는데”라고 말했습니다. 공화당원인 레이건은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정적인 민주당을 지지하는 의사들이 집도하면 이들이 혹시 자신에게 무슨 일을 저지를까 걱정된다는 뜻이었습니다. 물론 이는 농담이었습니다. 이후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농담입니다. 김정은에게 이런 여유와 배포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만일 형체도 불분명한 반대세력의 준동을 우려했다면 말입니다.

북한당국이 외부 세계의 음해와 사회혼란 책동 가능성을 고려해 김정은의 병세나 행보를 쉬쉬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국제사회는 북한사회의 혼란을 바라지 않습니다. 지도자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북한을 흔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는 정정당당한 결투에서 상대의 등에 총을 겨누는 것과 마찬가지이니까요. 세상은 북한사회의 개방과 바른 개혁을 통한 안정과 평화를 갈망할 뿐입니다. 이것이 북한 주민이 행복해지고 한반도가 진정 살만한 곳이 되기 때문입니다.

북한당국은 사실을 숨겨 세상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설이 난무하게 한 뒤 이 상황을 은근히 즐기는지도 모릅니다. 최고 지도자의 행보는 주목거리이므로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고선 공개하는 게 국제관례입니다. 국가지도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대외비로 해 북한에 득이 될 게 무엇이겠습니까? 투명하지 못한 나라라는 오명만 얻게 됩니다. 세계은행이 정부 효율성, 부패, 법치 등을 분석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북한의 통치구조는 세계 최악입니다. 김정은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69주년을 목전에 두고 불쑥 나타나더라도, ‘김정은 증발’과 관련한 북한의 행태를 보면 2014년 분석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겠습니다.

김정은이 진짜 다리가 아파 수술을 받아야 했을 때 국제사회에 이를 알리고 미국이든 남한이든 유능한 전문의의 도움을 받겠다며 열린 자세를 보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미국과 중국이 핑퐁외교로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텄듯이, 미국 최고 의료진의 방북이 양국 관계 개선과 한반도 긴장 완화의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정은의 몸을 보면 앞으로 유사한 증세가 재발할 수도 있다는 데 한 가닥 희망을 걸어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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