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멸망

워싱턴-박봉현 parkb@rfa.org
201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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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북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관한 국방위원회 성명을 지지하고 미국을 비난하는 평양시 군민대회가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25일 북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관한 국방위원회 성명을 지지하고 미국을 비난하는 평양시 군민대회가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제국의 멸망’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11월 25일자 논평에서 작심하고 미국을 비난했습니다. 미국의 정치, 군사, 경제 정책을 꼬집으면서 미국이 파멸의 길을 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대해 ‘락엽 속에 영원히 묻혀버린 옛 로마제국을 연상케 하고 있다’고 저주 담긴 표현을 했습니다. 미국의 역사와 현실을 볼 때 응당한 미래가 보인다는 투로 ‘로마제국의 멸망과정을 방불케 하는 미국의 가련한 운명’이라고 마무리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의 논평은 두 가지 측면에서 얼토당토않습니다. 하나는 미국이 멸망하리라 예측한 점이고, 다른 하나는, 나라를 평가할 때 그 위세에만 몰두했다는 점입니다.

21세기 초강대국 미국의 100년, 200년 후의 모습은 아무도 예단할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강력한 나라로 남아 있을 수도 있고, 국력이 현저하게 쇠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히 말하지만, 미국은 로마제국처럼 멸망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 이유를 열거하자면 수십 개가 되겠지만, 여기에선 한 가지만 언급하겠습니다. 미국이 쉽사리 쪼그라들지 않는 이유는 시민정신 때문입니다. 이는 ‘질서의식’라는 말로 대변할 수 있습니다. 이 질서의식이 미국의 뿌리를 튼튼하게 유지합니다.

제가 20여 년 전 미국에 유학 와 매우 놀란 적이 있습니다.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의 한인타운에 살 때입니다. 차를 운전하고 가는데 마침 전방 사거리에 신호등이 고장 났습니다. 이 교차로는 일반 교차로보다 사방이 넓고 차량 통행이 잦은 곳이라 사고 위험도 그만큼 큰 곳입니다. 그런데 신호등이 고장 났으니 일대 혼란이 일어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교차로는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했습니다. 운전자들은 정지선에 멈췄다가 교차로 다른 차들과 순서대로 한 대씩 움직였습니다. 한 차량이라도 먼저 가려 했다간 교차로는 아수라장이 되고 운전자들 간 고성과 멱살잡이가 빚어졌을 겁니다. 이런 불미스런 일이 있을 거란 점을 아는 듯 운전자들은 자로 잰 것처럼 자신의 순서를 인식하고 차례대로 이동했습니다. 저는 당시 몸에 가벼운 전율을 느꼈습니다. 혼란 가능성을 질서유지로 소화해낼 수 있는 시민정신에 감동했습니다.

이 시민정신이 미국의 힘입니다. 군사력, 경제력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고 국력도 같은 궤를 갑니다. 하지만, 시민정신이 살아 숨 쉬는 나라는 멸망하지 않을 겁니다. 위기에 빠져도 이 시민정신으로 똘똘 뭉쳐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위세가 약화할 순 있지만, 세상 모든 나라가 깔보는 수준까지 떨어지진 않을 겁니다. 논평이 강조했듯 미국이 로마제국처럼 멸망하는 것은, 세습 독재 북한이 훗날 초강대국이 되는 것보다 어려울 겁니다.

조선중앙통신 논평의 두 번째 허점은 나라의 품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품격은 주민 삶의 질과 관계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번성할 때가 있고, 기나긴 시련의 굴에서 헤맬 때가 있습니다. 장래 미국의 국력이 약화됐다고 해서 미국이 더는 살만한 나라가 아니라고 한다면 너무 표피적인 분석입니다. 힘 있는 나라에 산다고 해서 삶의 질이 높고, 힘 약한 나라 주민은 불만이 많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국력의 외형적 크기가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까지 보장하진 못하기 때문입니다. 국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입니다. 나라의 품격은 바로 국민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에서 나옵니다.

나라의 품격과 주민 삶의 만족은 ‘자유’에서 샘솟습니다. 말하고 싶은 것 맘껏 말할 수 있는 자유, 듣고 싶은 것 실컷 들을 수 있는 자유, 보고 싶은 것 언제든 볼 수 있는 자유, 하고 싶은 일 대담하게 할 수 있는 자유 말입니다. 이웃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이런 자유가 보장된 나라는 살 만한 나라입니다. 반대로 이처럼 기본적인 자유마저 제약하고 처벌하는 나라는 살만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도 살만하다고 강변하면, 아마 자유를 제약하고 처벌하는 권력자들에게만 그렇겠지요.

하기야, 권력자에게 북한은 천국입니다. 견제와 균형이 제도적으로 갖춰지지 않았으니 권력을 제멋대로 휘둘러 불쌍하고 힘없는 주민들을 공포와 완력으로 내리누르면 그만이니까요. 북한이 미국을 향해 피를 토하듯 뿜어대는 독설은, 세습독재로 자유가 압살되고 우상화로 사회 전체가 타율화된 북한을 부각할 따름입니다.

로마제국의 역사를 논하기에 앞서 북한이 할 일이 있습니다. 내부 문제로 신음하던 로마제국의 멸망을 반면교사로 삼아, 권력자들의 오랜 전횡으로 곪을 대로 곪은 북한의 오늘을 반추하는 일입니다. 황제와 같은 권력을 누리는 김정은의 ‘북한 제국’의 현실을 정신차리고 관찰하는 일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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