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김충성 기독교 선교사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5-05-25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뮤지컬 ‘요덕스토리’ 리허설 모습.
뮤지컬 ‘요덕스토리’ 리허설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북한에서는 출신성분 때문에 펼치지 못했던 25년간의 사방미인 재능을 남한 생활 10여년 동안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탈북자 김충성 씨. 연극인 성악배우 방송인으로 활약하는 한편 탈북자를 구출하고 이들의 한국사회 정착을 돕는 교육사업도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충성씨가 그 무엇보다도 혼신을 쏟고 있는 일은 탈북자와 북한주민에게 기독교의 복음을 알리는 선교입니다. 남북 분단 70년의 한반도가 머지않아 하늘의 섭리로 평화통일 될 것을 굳게 믿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초대석에서는 김충성 선교사를 모시고 그의 다양한 활동에 관해 얘기를 들어 봅니다.

전수일: 한국에서는 김충성씨를 지칭할 때 탈북가수, 통일선교사 방송인이란 수식을 붙입니다. 그만큼 다재다능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인데요, 북한에서도 가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김충성: 그렇습니다. 북한에서 가수를 했었고 한국에 와서도 뮤지컬배우와 연극을 하면서 음악 활동을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 북한에서 가수활동은 어떤 형태로 하셨습니까?

김: 북한에서는 성악배우였습니다. 북한에서는 가수라고 하지 않고 성악배우라고 합니다. 예술단체 인민군선전대 등에서 가수 활동하다가 2001년도 탈북해 2004년도에 한국에 들어 갔습니다.

전: 한국에서 하는 가수활동과 연극활동 내용을 소개해 주시죠.

김: 한국에서 뮤지컬 작품 2개를 했습니다.

전: 뮤지컬을 북한에선 무엇이라 합니까?

김: 북한에는 뮤지컬이란 형식이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것이 혁명가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대혁명가극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불의 검’이란 뮤지컬을 처음 봤는데 매우 역동적이었습니다. 주인공이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북한에서는 혁명가극을 할 때 주인공이 노래와 화술만 하지 춤까지 추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 때문에 뮤지컬이 너무 좋았습니다.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와이키키 브라더스’ 란 뮤지컬을 했습니다. 광수 라는 역을 했습니다. 그 뒤에는 북한 정치범수용소를 다룬 ‘요덕스토리’ 란 뮤지컬에 출연했습니다. 조연 역할을 맡았습니다.

전: 탈북자 정성산 감독이 연출했죠?

김: 네. 정 감독이 했습니다. 그밖에 작은 규모의 뮤지컬에도 출연했습니다. 연극은 The last world begins라는 제목의 연극이었는데요 독일에서 활약하시다 한국에 온 연출가가 제작한 것이었습니다. 남북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 공연했습니다. 그 외에 예술의 전당이나 콘서트 홀에서 조영남씨와도 공연을 했습니다. ‘홀로 아리랑’을 부른 서유석씨 또 김범용씨 등 한국의 연예인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 한국에서 1급 연예인들이라 할만한 쟁쟁한 분들 아닙니까?

김: 네. 그렇습니다.

전: 방송인으로서도 극동방송에서 활동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한국 텔레비전에도 출연 많이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김; 사실 북한에 있을 때 9시 뉴스를 전하는 방송원, 앵커를 하는 게 제 꿈이었습니다. ‘보돕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이런 걸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도 많이 했었지요. 근데 출신성분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치안대였습니다. 6.25전쟁 때 국방군을 잠깐 도와준 전력 때문에… 치안대라는 딱지가 붙어 내 꿈을 펼칠 수 없었습니다.

전: 소위 연좌제인가요?

김: 그렇습니다. 연좌제에 걸린 것이죠. ‘기량도 있다, 인물도 괜찮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정적 순간 최종심사에서 간부이력서 신원조회에서 치안대라는 딱지가 붙어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더군요. 그래서 북한에서는 고민 많았는데 한국에 와서 드디어 제 꿈을 펼쳤습니다. 지금은 극동방송을 통해 새벽 3시부터 4시까지 북에 전하는 ‘안녕하세요. 여기는 대한민국 서울입니다’ 라는 프로그램을 4년째 제작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 근데 방송 말고도 탈북자들과 북한의 인권과 관련한 활동하시는 걸 언론을 통해 봐왔습니다. 탈북자북송 반대 시위에 많이 참석하셨던 데요, 어떤 활동이었는지 설명해 주시죠.

김: 2012년도에 29명의 탈북자들이 강제 북송 당하는 가슴 아픈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또 라오스에서 탈북 학생들이 잡혀가는 사건도 생겼습니다.

전: 꽃제비 청소년들 북송사건 말이죠?

김: 그렇습니다. 그보다 앞서 2012년 1월에는 중국 곤명 쪽에서 29명의 탈북자가 한꺼번에 잡혀 강제 북송 됐습니다. 그 강제 북송 된 청소년 중에 한 명이 남쪽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가 남쪽 자기 친구에게 북송 소식을 알렸고 또 이 남쪽의 친구는 한국의 유명 배우 차인표씨에게 북송 소식에 관한 편지를 썼습니다. 그 자신 기독교인인 차인표씨는 편지를 받고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해 동료 유명 연예인들과 함께 북송 탈북자들의 구명을 위한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우리 탈북자들도 집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유선진당의 박선영 국회의원이 11일간 금식하고 탈북자 이애란 박사도 18일간 금식 시위를 했습니다. 저도 12일 금식했습니다.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시위는 서울에 있는 중국대사관 앞에서 진행됐습니다. 작년 11월 18일로 1000일째 탈북자강제북송반대 기도모임을 이어 왔습니다. 기도모임은 1000일로 종료됐습니다. 근데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부인 이희호 여사가 북한의 아이들을 위해 목도리를 떠서 갖다 준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북한 아이들과는 아무 연고도 없는 분이 목도리를 떠 간다는데 나는 북한에 가족이 있지 않나? 난 내 부모형제 친척들이 모두 북한에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가족들이 먹고 살 식량을 싣고, 옷과 의약품을 싣고 북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이희호 여사의 방북을 북한 당국이 승인한다면 우리 탈북자들의 방북도 승인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탈북자들은 ‘내가족 살리기 방문단 발대식’을 했습니다.

전: 언제 했습니까?

김: 작년 11월 18일 1000일 기도모임이 끝나는 날 했습니다. 그래서 발대식 이후 지금까지 ‘내가족 살리기 방문’ 릴레이 시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전: 북한 당국은 탈북자들을 배신자니 쓰레기라며 비난하고 있는데- 아무리 지금은 한국 국민이라 해도 북한에 들어갔다 못 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김: 못 나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김정은 자체가 우리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3.8선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들어가면 자기가 끝난다는 걸 아는 거죠.

전: 끝난다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김: 탈북자들이 들어가는 날엔 김정은 정권이 끝난다는 것이죠. 탈북자들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다면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이 전해진다는 것이죠. 북한 정권이 지금껏 해온 거짓이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 탈북자들의 방북을 허용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강력히 방북을 요구할 것입니다. 탈북자 3만명뿐만 아니라 45년 해방 이후 또 1.4후퇴 때 북한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실향민이 천 만 명 넘지 않습니까?

전: 그렇죠. 탈북자를 치지 않고도 이산가족 실향민이 천 만 명이라고 합니다.

김: 맞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이북5도민 실향민들도 우리들과 같이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합니다. ‘분단 70년이나 지났는데 이제는 더 못 참겠다.’ 하시면서 저희들의 발대식에 함께 하셨고 이 일을 같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 그런데 김충성씨는 뭐니뭐니해도 기독교 선교사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선교란 말을 북한 주민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선교란 무엇입니까?

김: 선교란 기독교와 하느님 예수님 성령님에 대해 가르치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입니다. 선교 목적은 기독교 전파에 있습니다. 살아있는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옥 갈 인생이 천국으로 간다는 구원의 확신을 주는 일이 선교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전: 선교는 못 먹고 배고프고 굶주린 사람들에게만 하는 것인가요?

김: 아닙니다.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에게도 하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에 가는 건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과 못 먹고 못 사는 사람들로 편이 갈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는 상관없이 예수를 믿느냐 여부에 따라 천국과 지옥에 가는 것이 갈라지기 때문에 예수의 말은 김정은뿐만 아니라 북한 꽃제비들에게까지 모두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 그렇다면 선교활동의 대상이 다양할 것 같습니다. 한국 내에서, 중국 내에서도 할 수 있겠고 또 북한에는 지하교회라는 게 있어서 그 지하교인들에게도 선교하는 한국 교회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 우리는 북한 주민들에게 전화기로 기독교 복음을 많이 전하고 있습니다.

전: 그분들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김: 이해합니다. 이미 북한사회에서는 북한 영화나 드라마로 기독교 선교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에 북한의 5대혁명가극을 봤습니다. 그 중에 성황당이란 연극이 있었습니다. 성황당에 전도부인이란 인물이 나옵니다. 전도부인이 성경책 들고’ 예수 믿으세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황당에서 무당이 비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예수’ 믿으라는 그 미신은 무엇인지 학생 때부터 궁금했습니다. 또 북한에는 북한만의 ‘기네스북’ 세계기록집이 있습니다. 거기에도 예수에 대한 얘기가 두 줄로 나와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 자로 유대인들의 돌을 맞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라고 돼있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언급은 없습니다. 그 외에도 기독교와 관련해서는 6.25 전쟁물 영화에서 미군들이 기도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퇴각하면서 ‘하나님 서울을 지켜주세요.’ ‘우리 미군들 목숨을 지켜주세요. 아멘’ 하는 그런 장면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곡절 많은 운명’ 민족과 운명’ 등의 북한 영화에서도 기독교에 관한 장면이 나옵니다. 전: 북한에서 상영되는 기록영화나 일반영화에서 기독교 관련 내용이 나온다는 말인가요?

김: 그렇습니다. 나오기는 하는데 기독교는 미신이라는 내용이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이 믿을 수 없는 것이죠. 가장 최근에 나온 영화로는 2000년도에 ‘승냥이’ 라는 것이 있습니다. 경남 창원 출신의 북한 작가 한설야가 쓴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인데요, 반기독교 영화입니다. 영화에 미국 기독교 선교사들이 평양에 와서 예배당과 고아원 짓고 병원을 세웁니다. 근데 고아원 아이의 삼촌이 일제 때 빨치산이었는데 일본군 총에 맞아 고아원에 숨어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어린 고아가 교회 십자가 밑에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삼촌 살려주세요’ 라고. 그런데 그 십자가 뒤에 뚫어 놓은 구멍을 통해 엿들은 선교사가 일본군에 고자질해 그 삼촌을 죽인다는 그런 반기독교 내용이 있습니다. 선교사는 나쁜 놈이라는 걸 주입하는 내용이죠. 또 한 얘기는 고아원 아이들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미국에서 가져 온 신약을 이용해 생체실험을 해서 아이들을 죽이는 내용인데 영화를 통해 반기독교 교육을 했던 것이죠. 그래서 저는 기독교가 상당히 나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북녘 동포들도 다 공감할 겁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을. 실제 하나님이란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예로 보위지도원이나 보안 원들이 와서 사람 못살게 굴면 ‘하늘이 두렵지 않냐?’ ‘천벌이 두렵지 않냐’는 얘기를 많이 하죠. 이렇듯 하나님을 찾고 스스로 빌고 기도하는 주민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또 성경 공부하러 중국에 나오는 북한 주민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이들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면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랑 베푸는 일을 하도록 우리가 돕고 있습니다.

전: 그렇군요. 근데 한국 내 일부 선교단체에서는 중국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에게도 선교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선교도 하는지요?

김: 많이 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우리 동포들 보면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나도 저 땅에서 살았었다. 살겠다고 탈출해 나오는 그런 동포를 도울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못하겠나?’ 그래서 그분들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전: 한국 내 탈북자가 3만명 가까이 되는데요 그분들에게도 선교를 합니까?

김: 그렇습니다. 한국에 나온 탈북민들에게 선교합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나오려는 탈북민들의 구출 활동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중국으로 나왔다가 북한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분들은 우리가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들이 한국에 와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한국 교회에 연결시켜주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돕고 있습니다. 또 저는 ‘북한이탈주민문화복지진흥원’ 이란 단체를 이끌고 있고 ‘미래한반도여성협회’ 라는 단체 안에 ‘희망누리평생교육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탈북민들에게 컴퓨터 교육과 여러 문화 교육을 시켜 한국사회에 잘 정착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전: 올해 70주년인 기념적 사변이 몇 개 됩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 남북분단이 모두 70주년입니다. 이 70주년의 기독교적인 의미, 북한의 김씨 체제와 연관된 의미를 언급하신 걸 들었습니다.

김: 1945년 8월 15일 소련군과 미군의 한반도 통치로 한반도에 분단 선이 생겼습니다. 70년이란 숫자에 주목하게 된 건 제가 북한 탈출 후 중국의 한 교회에서 성경책을 보면서였습니다. 그 성경책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라 없이 산 대목이 나옵니다. 그들이 바빌론이란 나라에 포로로 있었는데 70년만에 하나님이 해방시킨 사건입니다.

그 성경 말씀을 읽다가 이런 물음이 나왔습니다. ‘하나님, 우리 나라 조선은 언제쯤 해방이 될 수 있습니까? 남북이 언제 하나가 될까요? 70년만에 무너진 나라가 있다면 어딥니까? “ 그런데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 지금의 러시아였습니다. 그래서 소련의 역사를 찾아 보니 1921년에 소비에트연방이 세워졌더군요. 그런데 1991년에 붕괴됐으니 70년만에 그리 된 것이었죠. 그럼 우리 조국도 하나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게 대적하다 70년만에 죽은 인물은 없을까요?’ 동시대 인물 중에 김일성이 있다는 말씀이 와 닿았습니다. ‘하지만 김일성은 82세까지 살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82란 숫자에서 12을 빼어야 한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김일성은 칠골교회 부속 창덕학교에 다녔던 기독교인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중국에서 찬송가 책을 보는데 아는 찬송가는 없었지만 한 노래의 제목이 ‘만세 반석 열린’ 이었습니다. 그 반석이란 말이 많이 익어서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김일성 어머니의 이름이더군요. 강반석. 그래서 자료를 찾아 봤더니 김일성 어머니가 바로 칠골교회 권사였다는 겁니다.

전: 아주 철저한 기독교인이었군요?

김: 그렇습니다. 그리고 김일성의 외할아버지 강돈욱은 칠골교회 장로였습니다.

전: 일반신도로서는 제일 높은 사람이었네요?

김: 그렇죠. 그리고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은 현재 남한 숭실대학교의 모교인 평양 숭실학교 - 외국인 선교사들이 세운- 그 학교의 신학생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럼 김일성이 12살까지는 기독교 신앙생활을 했으니까, 하느님을 믿었었으니까 대적하지 않은 기간 12살을 빼자. 그래서 82세 사망에서 12살 빼면 70년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놀랐습니다. 억지로 숫자 끼워 맞추기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김정일의 경우도 신기하게 드러났습니다. 2011년 12월에 사망했습니다. 근데 우리가 북한에서 배우길 김정일은 1942년 2월 16일 백두산에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69세에 죽은 것 아닌가? 그래서 김정일 이력 자료를 찾아 보니 42년이 아니라 41년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김유라 라는 소련 이름으로 태어났더군요. 그러니까 ‘철저하게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진 이 체제는 사기꾼 집단이다. 자기들의 출생 년도와 고향을 다 속이고 북한주민들에게 신적 존재로 둔갑한 사탄의 무리’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이도 백두혈통이라고 하는데, 그의 아버지 김정일은 소련 하바로프스크에서 태어났으니 백두혈통이 아니라 하바로프스크 혈통인 것이죠. 어머니 고영희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입니다. 외할아버지는 제주도 사람이고요. 그렇다면 김정은은 실제로 족보가 없는 것입니다. 족보가 아버지 쪽을 따르면 하바로프스크이고, 어머니 쪽을 따르면 후지산 혈통이 될 수도 있는 셈이죠.

전: 이번에 미국에 온 것도 선교활동과 관련이 있다고 하던데요, 소개해 주시죠.

김: 미국의 수많은 분들에게 북한 인권실태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북한의 대량학살을 멈추게 하기 위한 전세계연대’의 공동대표로 왔습니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나 교화소 수감자들만 집단 학살을 당하고 있는 게 아니라 북한 주민 전체, 2천3백만 주민이 집단 학살을 당하고 있다고 우리들은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미국의 교회, 한인사회, 대학교 등을 찾아 다니며 그분들에게 북한 주민들의 참상을 보다 잘 알도록 하고 북한 인권문제를 개선하는 데 세계가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왔습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탈북해 한국에 정착 후 지난 11년 동안 연극인 성악배우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 탈북자와 북한주민의 선교에 힘을 쏟고 있는 김충성 기독교 선교사를 모시고 그의 다양한 활동에 관해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