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책 펴낸 류종훈 KBS 피디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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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반프상 수상한 KBS방송의 류종훈 피디.
왼쪽이 반프상 수상한 KBS방송의 류종훈 피디.
사진제공: 류종훈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한국에 들어간 탈북자 2만 7천여명. 그 가운데 적어도 열명 중 한명 꼴로 제 3국에 위장망명을 시도한 것으로 탈북자 사회에서는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국적자임을 숨기고 북한 국적의 탈북자로 제 3국에 난민으로 입국하는 이른바 ‘탈남 탈북자’들입니다.

2000년대 후반 영국을 비롯해 캐나다 미국 벨기에 등에 위장망명하는 탈북자들이 늘어나던 시기. 한국의 KBS 방송은 왜 이들이 목숨 걸고 찾은 자유의 땅 한국을 떠나 다시 제3국을 떠도는 난민이 되었는지, 또 그들이 난민으로서 겪는 꿈과 좌절의 현장을 취재해 ‘탈북 그후, 어떤 코리안’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 (기록영화)로 만들었습니다. 2012년 방영된 이 기록영화는 한국사회에 탈북자 포용 문제와 함께 남북통일 이후의 진정한 통합에 관한 성찰의 계기를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늘 초대석에서는 이 기록영화를 제작한 KBS 방송의 류종훈 프로듀서를 모시고 얘기를 들어 봅니다. 류종훈 프로듀서는 이 기록영화로 작년에 세계적인 반프(BANFF) TV 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10월 이 기록영화에 얽힌 얘기를 같은 제목의 책으로 펴냈습니다.

전수일: 쓰신 책에 “불법대출의 굴레에 갇힌 탈북자들” 이란 장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탈북자들의 탈남은 단순히 한국사회 부적응과 차별만은 아니다. 탈남 브로커들의 유혹, 부추김도 한 몫을 한다. 정착에 노력하는 탈북자들도 범죄에 노출돼 있다’ 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그 한 예로 캐나다로 탈남했다 넉달만에 귀국했다는 30대의 강씨 얘기가 나오는데요, 그분이 빚더미에 올라 굉장히 괴로와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류종훈 피디: 탈북한 분들은 한국사회에 들어와 적응하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남한사람들과 경쟁력에서 밀려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가 곤란합니다. 그래서 이분들 중에는 나은 삶의 조건을 찾아 미국이나 유럽으로 갈 생각을 하는 분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 과정에서 브로커가 개입합니다. 탈북자가 먼저 접근하기도 하고 브로커가 먼저 접근하기도 합니다. 브로커들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목돈을 쥐고 떠나라면서 탈남을 결심한 탈북자들에게 접근해 그들을 개인사업자로 만들거나 회사에 위장취업시켜 신용을 쌓아주는 작업을 합니다.

전: 그렇게 하려면 시일이 걸리겠네요.

류: 그렇습니다. 3개월에서 6개월정도의 기간을 통해 신용 만들기 작업을 한 후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게 합니다. 또 탈남 결심자들의 명의로 차량 여러대를 뽑아 중고로 팔기도 합니다. 시장에서 이른바 대포차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목돈을 만들면 브로커가 상당 부분을 갖고 탈북자에게는 얼마간 떼어줍니다. 탈북자들은 그 돈으로 출국에 드는 항공료, 또 제 3국 현지에서의 비상금 등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렇게 만든 목돈이 한국에서는 그 사람들 명의의 악성 채무로 남는 것이죠. 이자는 계속 붙게 되고. 책에 소개한 강씨의 경우, 캐나다에 갔지만 이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선 도저히 못살겠다, 차리리 한국이 낫겠다’ 해서 다시 귀국해 보니 본인 명의로 차량 7대 정도가 뽑혀있고 제2금융권의 채무 이자가 계속 붙어 거의 억대가 넘는 금액으로 쌓여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신용불량자가 되는 건 당연하고 한국에서 살기도 힘들게 된 것이죠. 탈북해 한국에 들어가면 굶어죽지는 않지만 한국인들과의 경쟁에 치어서 또 애들 교육도 어렵고 해서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탈북자 분들이 잘못 이런 덫에 걸리면 자칫 한국에서의 기반도 잃고 외국에서의 정착도 힘들어지는 그런 경우를 제가 많이 봤습니다.

전: 그런데 그런 브로커가 탈북자 보다는 남한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던데요?

류: 네. 간혹 1년에 한 두번 정도 경찰이 수사해 적발하는데요, 적발된 사례들을 보면 보통 신용을 만들거나 대포차를 팔거나 하는 건 탈북자가 직접 하기에는 그들 표현에 따르면 ‘난이도’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탈남을 결심한 탈북자들을 모아오는 수집책은 탈북자 브로커가 하고 이런 사람들을 지휘하는 브로커는 한국사람이 주로 한다는 얘기를 취재 과정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전: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라는 곳에서도 취재하셨던데요, 그 지역 일본식당에서 일하는 한 불법체류 탈북자가 나옵니다. 그가 미국 온지 1년이 되는데 영어도 안되고 일도 힘들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는 주변에서 한국에 돌아간 탈북자도 많이 봤다면서 ‘미국에 위장망명해서 온다는 자체가 환상이다. 한국에 가면 탈북자사회에 꼭 좀 전해달라’ 고 말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류: 그렇습니다. 한국 내 탈북자 사회에서 소문 전파는 굉장히 빠릅니다. 정보 공유도 굉장히 활발하고요. 2만에서 3만정도의 탈북자가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이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집니다. 한 예로 영국 캐나다 미국으로 위장 망명한 탈북자들이 난민지위를 받으면 그 나라의 복지혜택과 아이들 교육혜택을 받을 수있다는 장미빛 소문이 한 번 돌았었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실제 그런 나라로 넘어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난민비자를 받는 게 쉽지 않습니다. 유럽대륙에서는 한국정부에 조회를 합니다. 난민신청한 탈북자가 한국에 체류했었는지를 확인하는 조회인데요, 그 결과 난민비자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국에 가는 탈북자는 두가지 경우에 처합니다. 그 하나는 미국의 북한인권법에 따라 동남아 국가에서 난민 지위에 관한 심사를 받고 미국에 직접 입국하는 탈북자인데요, 이런 사람은 난민 신분이 주어지지만 그외 사람들이 미국에 입국하면 불법체류 신분이 되는 것입니다. 불법체류자들은 한인 밀집거주지역에 머물게 되는데 제가 만난 사람들은 대개 일본 식당에서 일하더군요. 스시를 만드는 일인데, 비교적 일도 간단한데다 일본식당은 한인들이 많이 운영하고 있어서입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 언어도 소통이 되고. 하지만 그러다 보니 영어는 늘지 않습니다. 일의 강도는 세고. 아침에 나가 밤에 퇴근하는 일이죠. 자신이 꿈 꿨던 생활은 이뤄지지 않고. 하지만 불법체류 신분이라서 다른 일을 할 수는 없고. 이런 악재가 겹치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왜 미국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후회합니다. 제가 만났던 이런 사람들은 저한테 한국에 돌아가거든 탈북자들에게 꼭 말해달라고 한 것이 기억납니다. ‘한국에서 적응 못하면 미국에 와서도 적응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전: 그런데 외국 중에서도 영국에 탈북자들이 가장 많이 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 ‘셋넷학교’의 박상영 교장선생과도 인터뷰를 하셨더군요. 그분이 가르친 제자 청소년 중에 소식도 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없어져궁금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탈남 위장망명으로 영국에 가 있었다 는 대목입니다. ‘성철’이라는 제자의 얘기가 나오는데요, 어떻게 해서 그가 영국에 가게 됐습니까?

류: 셋넷학교에 취재갔다 박상영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이 저희 다큐멘터리 취재를 하게 된 동기도 됐습니다. 탈북 대안학교에서 청소년들이 공부하는데 교장선생님에 의하면 어느날 갑자기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난 뒤 또 어느날 갑자기 아이들이 연락을 해왔는데 ‘선생님, 저 맨체스터에요, 저 리버풀이에요.’ 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박 교장님이 그들이 소재를 추적을 해서 직접 영국 현지에 가 제자들을 만나보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는 ‘탈남 탈북자문제를 다큐멘터리로 다뤄 봐야겠다’는 한 동기가 된 것이죠.

2000년대 중반, 탈북자 상당 수가 영국정부에서 난민비자를 내준다는 소문 듣고 영국으로 건너가기 시작합니다. 영국 런던 인근의 뉴몰든이라는 한인타운이 있습니다. 거기에 탈북자 1000명-1500명정도가 거주한다는 소문이 현지에 파다했습니다. 그 소문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로 탈북자들이 그 타운의 한인가게에서 일하기 때문이죠. 그 소문을 듣고 셋넷 대안학교에 다니던 탈북청소년들도 영국에 넘어 간 것이죠. 영국에 가면 난민 신분을 얻는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비행기값만 가지고 영국으로 가서는 바로 난민청에 들어가 자기들이 북한에서 왔다며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고 한 것이죠. 영국정부는 2000년대 중, 후반에 탈북자 수백명에게 실제 난민비자를 내줬습니다. 원래 북아프리카나 유럽 내전 지역에서 난민들이 영국에 많이 몰려오니까 영국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심사후 비자를 내주고 있었습니다. 주로 무슬림들이 대상이었습니다. 근데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왔다며 난민신청을 한 것이죠. 이들을 북한에 돌려보내면 처벌울 당한다는데 무작정 돌려보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2000년대 중, 후 반에 영국정부가 탈북자 수백명에게 난민비자를 발급하면서 탈북자 사회에 입소문이 났고 그래서 1000여명이 넘어 간 것입니다. 그 와중에 영국 정부는 탈북자가 수백명씩 몰려 오는 것이 이상하다고 간주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영국 정부가 난민신청하는 탈북자들을 신원조회 후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탈북자들을 같은 동포로 포용한다면서. 그래서 지금은 비자발급이 굉장히 엄격해 졌다더군요. 이런 사실을 늦게 접하고 넘어간 탈북 청소년들은 영국정부에서 비자를 주지 않으니까 당장 갈 곳이 없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캐나다로 가거나 유럽대륙의 다른 나라로 가기도 합니다.

박 교장이 만나고 온 청소년들도 마찬가지 경우였습니다. 소문의 끝자락을 잡고 영국에 가긴 했는데 난민비자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가자니, 그 나이 또래들처럼 호기스럽게 유럽간다고 친구들에게 이별을 고하고 왔는데 다시 돌아가기도 뭣하고. 그러니까 방 한 칸에 서너명이 모여 살면서 어찌 살아갈지를 고민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 어떤 친구는 노르웨이로 갔다고 하고 벨기에로 가는 친구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유럽대륙 전역에 흩어지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 그런데 취재하신 내용에는 김석호 란 탈북자도 나옵니다. 그분은 공항에서 한국 여권이 발견돼 위장망명이 드러나 난민자격을 받지 못했다던데요, 그런데도 영국에서 잘 정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경우입니까?

류: 그분 경우는 굉장히 특이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분 부인이 실수로 한국여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살았다는 게 들통나면 영국정부에서 비자를 내주지 않기 때문에 원래 한국 여권은 불태우고 버리고 왔어야 하는데 공항에서 그걸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난민지위를 거절 당한 것이죠. 그런데 그가 영국 현지에서 자원봉사하는 분들과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난민지위 인정을 요청하는 서류 작업을 하던 중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당국에서 노동허가증이 나왔습니다. 난민신청 중에는 영국에 체류할 수가 있습니다. 거기다 또 노동허가증이 나왔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손재주가 좋은 분이라서 일하면서 생계를 꾸리고 주위에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탈북자를 돕기까지 하는 선량한 분이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아주 특수한 예입니다. 보통 난민 비자가 거절되면 추방되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그래서 추방이 두려운 사람들은 한인 타운 인근에 스며들어 불법체류자로 생활하게 되는 것이죠.

전: 벨기에, 북한 말로 벨지끄의 수도 브뤼셀에 가신 분이 난민 신청 후 한칸방에서 탈북자 동료 서너명과 함께 지내며 콩나물을 키워 한인 식당에 팔고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어떤 연유로 거기에 갔습니까?

류: 탈북자들이 유럽대륙 전역으로 흩어지고 있는 현상이 나타난 것도 이제 2,3년이 넘었는데요 그간 영국에서 난민비자를 내주지 않는다는 소문이 탈북자사회에 빨리 퍼졌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다른 국가로 가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나라가 독일 벨기에 북유럽 쪽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우리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어렵게 수소문해 벨기에 브뤼셀에 찾아가 그분들을 만났습니다. 이들도 벨기에 난민청에 탈북자라면서 난민지위를 신청한 상태였습니다. 신청서 심사 기간동안, 벨기에 난민청에서는 신청자들이 임시 머물 곳으로 허름한 방 한 칸을 내어 주는데 제가 그들을 찾아 갔을 때 그 방에는 성인 남성 대여섯명쯤과 임신한 탈북여성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부부가 같이 있었던 것이죠. 여닐곱명이 거기서 난민지위를 기다리며 머물고 있었는데요, 그들 중 한 명은 브로커를 통해 프랑스로 가는줄 알고 출국했다는데 도착하고 보니 벨기에 브뤼셀이란 곳이라서 자신도 너무 놀랐다고 하더군요. 이 경우는 중간에 브로커와 일이 틀어져 브로커가 거기에 그냥 떨궈주고 철수해 졸지에 벨기에에서 난민신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근데 난민 신청 뒤에 이런 사람들이 그닥 할 일이 없습니다. 난민지위 판정이 하루 이틀만에 빨리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난민청에서 부르면 가서 인터뷰한 다음에 다시 대기하고 하는 그런 생활이거든요. 그 대기 기간 현지 언어를 배우도록 난민청에서 주선을 해주는데 벨기에는 영어가 아니라 네델란드어 불어 등을 쓰끼 때문에 배우기가 어렵습니다. 현지 언어를 배우려 해도 머리에는 안 들어오고. 거기서 만난 남성 중 한 명은 차라리 기다리는 동안 농사를 짓겠다며 방에 콩나물을 키워 근처 한인 식당에 팔고 있더군요. 용돈벌이도 되니까. 그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전: 책에 나오는 한국 연세대학교의 전우택 교수가 탈북자 정착에 관한 문제에 많이 관여하시는 모양이던데요?

류: 그렇습니다. 전 교수님은 이 분야에 천착하시는 몇 안되는 전문가 중의 한 사람입니다.

전: 류 피디께서 전 교수께 탈남하는 탈북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니까 그분이 ‘외국에 대한 허황되거나 잘못된 정보를 믿고 외국에 나가는 일이 없도록 도와줘야한다’ 고 대답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무슨 뜻인가요?

류: 전우택 교수님 얘기는 탈남 탈북자를 보는 시각이 아직도 우리 남한인 시각으로 보고 해석 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남한인 입장에서는 탈북자들에게 돈도 주고 집도 주고 했는데 도대체 왜 외국에 나가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시각으로 접근하면 이 탈북자들의 탈남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탈북자들은 계속해서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찾아 북한을 떠나 중국에 갔고 중국을 떠나 한국에 온 분들입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외국에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죠. 다만 그것이 탈북자사회에서 떠도는 장및빛 전망이나 허황한 소문들 특히 탈북 브로커들이 상당수 퍼트리고 있는 소문에 근거해 탈남할 경우 피해받을 수도 있으므로 보다 정확하게 실정을 알려주자는 것이 전 교수님 말씀입니다. 우리들도 이민 1세대들이 미국이나 유럽대륙에 이민 가서 정착하기까지 굉장히 어렵게 한 세대를 거치지 않았습니까? 탈북자들도 마찬가지란 것이죠. 난민비자를 받으면 신분이 갖춰지긴 하지만 어차피 정착국에서 생활하려면 일을 해야하고 언어장벽을 극복해야 하는 건 한국인 이민 1세대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탈남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나원 교육기관에서부터 탈북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자는 말씀이죠. 그래야 탈남과 관련해 브로커들이 개입하는 범죄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고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서 정착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 1세대처럼 외국 이민을 가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지는 그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하도록 해주자는 것입니다. 탈북자들의 탈남 문제의 해법을 거기서 찾자는 그런 말씀이죠.

전: ‘탈북 그후 어떤 코리안’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탈북자들은 ‘통일이후 함께 살 사람들’ 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하셨다고 말했는데 그건 결국 탈북자 정착문제가 통일준비와도 관련이 있다는 시각으로 이해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서독 통일 마지막 단계에서 공산 동독의 총리를 지낸 ‘한스 모드로프’씨와 인터뷰 하셨던데요, 동서독 통합과정에서 느낀 점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인권이란 단순히 자유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 평등과 권리가 수반되어야 한다’ ‘한국도 통일후 사회적 평등과 자유를 공존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결국 경제적 사회적 차별이 큰 문제란 얘긴가요?

류: 베를린 장벽 붕괴 25년이 되는 해여서 독일에서도 얼마전에 큰 행사를 했습니다. ‘한스 모드로프’ 동독 마지막 총리가 말씀하시길 통일4반세기 지났지만 독일은 아직 통일 중이라고 하더군요. 아직도 동독인과 서독인이 서로 알아가고 있으며 동서독 간 아직도 엄연히 존재하는 경제적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인들 많이 노력 중이라는 얘기였습니다. 한반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란 말이죠. 통일이란 게 어느날 갑자기 정치 경제 영토가 통합이 된다해서 통일이 되는 건 아니다는 말입니다. 첫째는 사람들의 마음이 통합되는 정서적 통합이 되어야 하고 둘째로는 그 정서적 통합의 바탕이 되도록 경제적 격차가 줄어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통독 후 동서독인들이 서로를 못마땅하게 보고 ‘오씨’ ‘베씨’ 라고 말해왔죠. 동독인은 서독인을 돈만 많고 우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이라는 ‘베씨 (Wessi)’라고 부르고 서독인들은 동독인들을 우리들의 세금이나 축내는 사람들이라는 ‘오씨 (Ossi)’라 부르며 서로 고깝게 보는 풍토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도 그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대비가 필요할 지 많이 생각해 봐야 한다며 여러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전: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신년사를 통해 ‘통일은 대박이다’ 란 화두를 던지고 그 이후 통일 준비위원회도 설치해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에서 류 피디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통일의 예행연습이라는 탈북자문제를 취재한 당사자로서 통일 논의에서 중요한 축인 사람과 사람의 통합문제 논의가 일절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어떤 뜻인가요?

류: 대통령께서 신년사에서 통일이 대박이라고 밝힘에 따라 ‘통일’이라는 단어가 사회에 다시 주요 어젠다로 부상하게 된 것은 긍정적입니다. 한국사회가 통일을 어떻게 준비해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각계 각층 전문가들이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이런 화두를 던진 것은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런 화두에 이어서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어떻게 통합될 것이며 경제적으로 한반도가 얼마나 부강해질 것인가 등의 논의에만 매몰되는 걸 느꼈습니다. 저는 사람과 사람 간의 통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취재를 통해 보여드린 바 있습니다. 아무리 남북이 합친다 해도 남북한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하나가 되지 않으면 통일 이후 동서독 사람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우리도 똑같이 겪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동서독 간의 경제적 격차보다 훨씬 더 큰 격차를 갖고 있어서 통일 이후, 문제의 소지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도 우리가 준비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은 생각입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화두에 그런 점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 그렇게 쓴 것입니다.

전: 그렇다면 그런 사람과 사람의 통합, 정서적인 통합의 구체적인 예는 어떤 게 되겠습니까?

류: 탈남 탈북자가 전형적인 예가 될 것 같습니다. 한국 내 탈북자 2, 3만명도 한국사회가 정서적으로 잘 포용하지 못해서 탈북자가 탈남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전형적인 예가 아니겠습니까? 그 극복 위한 사례는 많습니다. 앞서 언급한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셋넷학교의 박상영 교장처럼 제도권에 적응 못하는 탈북청소년들을 모아 대안학교를 세워 운영하면서 이들에 맞는 교과 과정을 만들고 한국사회 적응에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는 이런 활동이 민간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정부 차원에서도 제도적으로 지원도 하고 해서 탈북사회 전체를 대한민국 사회가 포용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실 2, 3만명의 탈북자도 포용하지 못한다면 통일 이후 2천만이 넘는 북쪽 이웃이 한꺼번에 생기는 셈인데 이들을 한번에 포용하긴 힘들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분들을 포용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위한 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책의 부록에는 해외 탈북난민조사결과가 담겨있습니다. 이 설문조사는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미국 등에 거주하는 탈북난민 46명을 면접 설문조사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류: 맞습니다. 저희가 단순히 서류 설문한 것이 아니고,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심층 설문조사를 한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설문조사의 취지를 설명하고 질문사항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전: 좀 의외적이라고 생각되는 항목이 있습니다. 현재 대상 탈불자들에게 법적 지위에 대해 물어보니 미국 시민권자가 5명, 영주권 혹은 취업허가를 받은 사람이 11명, 난민지위 인정받은 사람이 29명, 신청중인 사람이 10명이나 됐습니다.

류: 먼저 설명하고 싶은 것은 설문에 응한 분들이 민감해 하는 질문 중의 하나가 현재의 신분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분들이 자기들에게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현재 처한 실질적인 지위보다는 좀 더 나은 신분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예로 난민 신청 중인 사람의 경우 이미 난민 지위를 받았다고 답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일일이 해당 기관에 확인하기는 좀 곤란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세한 내용은 설문조사 결과 자체에는 각주를 달아 부기해 놓았습니다. 미국 시민권자의 경우, 2004년 조지 부시대통령 정부때 공화당이 발의해서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탈북자가 동남아시아에서 미국 대사관에 들어가 망명신청하면 심사를 받아 미국으로 바로 입국해 신분을 (난민지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입국 후 일정 기간 지나면 영주권을 주고 또 일정 기간 지나면 시민권 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시민권을 받은 탈북자도 꽤 여러명 있는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을 만나 조사해서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전: 그 다음에 제 3국 행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질문입니다. 영국이든 미국이든 제 3국으로 탈남한 이유에 대해서 ‘남한 사람의 차별이 싫어서’가 대체로 잘 알려진 것인데요, 조사결과에서는 ‘영어를 위해서’도 그와 같은 숫자인 20명이 답변했습니다.

류: 네. 저도 좀 의외였습니다. 여기서 탈북자들은 본인들 보다는 자녀들의 영어교육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봐야 자녀들 학원 한 군데 보내기도 빡빡한 게 현실입니다. 영국이나 미국에 가면 그 나라 복지가 잘 돼있어서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잘 받을 수 있고 그래서 자녀들 영어교육만큼은 확실하게 시킬 수있지 않겠냐고 말한 분들이 상당수였습니다. 실제로 제가 인터뷰한 경험에 따르면 자녀교육 때문에 탈남한 사람이 여러명 됐습니다.

전: 현재 체류중인 국가, 즉 제 3국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질문에서는 그곳에 미리 정착한 탈북자들의 입소문이 제일 많게 나왔더군요.

류: 그렇습니다. 지금은 국내에 있는 탈북자들끼리만 서로 연락되는 게 아니고 해외 나간 탈북자 분들도 스마트폰 메신저 서비스 등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 받습니다. 예를 들면 먼저 영국에 가서 난민비자를 받은 사람들이 친구들한테 이런 메신저로 알려주면 그걸 받은 사람들은 좀 더 알아 본 뒤에 그들 자신도 그곳으로 탈남합니다. 나가서 현실이 다르면 그들 스스로 브로커가 되기도 합니다. 다른 친구들한테 연락해 ‘야, 괜찮다, 와라’ 해서 자기가 얼마간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죠. 그처럼 1차적인 정보 통로는 먼저 외국에 나간 탈북자들의 입소문이 주로 되고 있습니다.

전: 탈남 탈북자 본인이 어디에 소속된 것으로 생각하느냐 는 질문에는 북한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19명으로 제일 많이 나왔습니다. 또 그와 비슷한 질문으로 ‘한국 국민이라는 의식이 있느냐’는 설문에는 ‘아니다’란 답이 굉장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류: 그 질문과 답변이 제 다큐멘터리의 주제의식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남한사람들이 한 국민 한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대한민국사회의 탈북자들, 과연 그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그들이 정체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것이 작품을 만들면서 늘 가졌던 주제의식입니다. 저도 그 답변이 무척 의외였습니다. 아직도 북한 국적자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었고 한국사람이 아니라 제3국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서 ‘아, 통일까지 가려면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구나.’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들은 그동안 탈북자들에게 집 주고 돈 주고 학교 보내주고 하지 않았나 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런 물적 지원에 앞서 이분들과 진정으로 통합할 수 있는 그런 제도를 모색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 탈북자라는 이유로 한국인들에게 무시당한 경험 여부의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가 ‘안 그렇다’의 두배 정도 나왔고 또 현재 체류중인 국가에서 무시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더 많았습니다. 결국은 한국에서는 차별 당하는데 제3국에서는 차별을 덜 당한다는 얘기 아닙니까?

류: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심하게 그분들에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국경을 넘어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 겪으면서 마지막으로 한 민족의 나라이고 한 동포의 나라인 대한민국 사회에 들어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들한테 너무 쉽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야, 우리가 집도 주고 돈도 주고 학교도 보내줄 게. 이게 바나나라는 건데 먹어 봤냐?” 이분들은 과거에 상처를 많이 받은 분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이런 말이 그분들에게는 큰 모멸감으로 닥아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셋넷학교의 박상영 교장선생님 말씀대로 일단 우리 한국인들이 가진 사람들이고 그들을 품어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탈북자 분들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배려하고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통일 준비의 시작이라는 말씀에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한국에 정착했다 제3국으로 위장망명한 탈북자들의 실태를 기록영화로 만들고 또 최근에는 이와 관련한 책을 펴낸 한국 KBS방송의 류종훈 프로듀서를 모시고 탈남 탈북자들의 실태에 관해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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