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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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
RFA PHOTO/ 이규상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요덕 15호 관리소 혁명화 구역 수감자 출신으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실상을 처음으로 세계에 알리고 미국 대통령을 최초로 면담한 탈북자, 북한이 매도하는 10대 역적 탈북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북한에 외부정보를 유입시키는 단체의 대표.  바로 강철환씨입니다. 그가 3월 첫 주 탈북대학생들과 함께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주요 대학을 찾았습니다. 미국 청년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외부정보의 유입이 어떻게 북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는 자리였습니다.

오늘 초대석에서는 워싱턴 강연 토론회 기간 중 저희 방송국을 찾은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와 대북정보유입 활동에 관해 나눈 얘기를 들어 봅니다.

전수일: 3월 1일자 미국의 첨단기술 전문 월간 잡지 와이어드 (wired)가 탈북자들의 대북정보유입에 관한 장문의 서울발 특집기사에서 강 대표 개인과 ‘북한전략센터’의 활동을 자세히 취재했더군요. 대북정보유입 단체 중에 가장 큰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외국영화 음악 전자책 등이 담긴 유에스비 (USB) 3000개 정도를 매년 조-중 국경을 통해 북측에 유입시키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유에스비에 외국 특히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강철환 대표: 그동안 저희 단체는 북한 인권문제나 북한 내부의 실정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일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래서 외부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북한의 실태를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북한 내부는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변화하지 않으면 북한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007년부터 제 개인이나 저희 단체의 역할을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적 캠페인에서 북한 내부로 정보를 유입시키는 활동으로 전환했습니다. 전환 후 저희의 초기 활동은 주로 라디오를 북한에 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라디오는 일단 북한에 들여 보내기만 하면 주민들이 매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효과는 큽니다. 하지만 그 부피가 크기 때문에 북한으로 유입시키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침 한류 드라마가 북한에서 유행되면서 드라마를 담은 디브이디 알판을 많이 들여보냈습니다. 비용이 싸서 대량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속 문제가 부각됐습니다. 북한 당국의 단속자들이 갑자기 전기를 끄면 디브이디 플레이어가 중단이 되고 중단이 된 플레이어 안에 있는 알판이 증거로 남아서 단속에 걸리는 일이 많아 졌습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TV에 유에스비 기능이 달린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그런 북한 주민들의 요구에 발맞춰 디브이디 알판에서 유에스비로 데이터 수단을 전환하게 됐습니다. 그러고 나니 유에스비에 무슨 내용물을 담아 보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과 북한에서 외부 정보를 접했던 분들을 모시고 회의를 했죠. 어떤 유형의 컨텐트를 유에스비에 담을 것인지를 논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북한 인권이나 문화 경제 등 다양한 분야로 분류해 각 분야별로 관련 프로그램을 담아 보냈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 분야라면 ‘수퍼 차이나’ 라는 프로그램과 대한민국 경제부흥에 관한 기록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보냈습니다. 김정은 정권을 반대하는 정치적인 내용 프로그램은 북한 주민들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어서 그런 부담 없이 외부의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택했습니다. 또 그런 다큐멘터리 사이 사이에 재미 있고 보고 싶어하는 프로그램을 끼워 보내면 주민들의 의식화도 가능하고 훨씬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의 수준에 맞는 일반 드라마들을 다큐멘터리 기록영화와 섞어서 보냈습니다.

전: 그런데 영어로 된 드라마 경우는 조선어 자막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 드라마 ‘위기의 주부’ ‘스파르타쿠스’ 등이 북한에서 가장 유행했던 미국 드라마 물인데요, 이미 이런 드라마는 한국에서 자막으로 잘 처리된 프로그램들입니다. 저희가 이런 프로그램을 구입해서 북한에 들여 보냈습니다. 상당한 효과를 거뒀습니다.

전: 근데 북한전략센터가 멀지 않아 1년에 유에스비 10,000개, 그러니까 현재의 3배 이상을 북한에 들여보내는 것이 목표라고 하던데요, 그만큼 자금도 들고 인력도 있어야 하고 특히 조-중 국경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횟수도 늘어나야 할 것 같은데, 이런 사업확장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인데요.

강: 저희 단체의 활동을 후원하는 분들과 협력자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북한과 직접 전쟁하는 것은 어려운 방법이고 그렇다고 마냥 북한 주민들을 김씨 정권에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니겠냐는 것이죠. 또 북한 내부의 변화를 추구한다면 위로부터 할 것인가 아니면 아래로부터 할 것인가의 논란이 있습니다만 세계 역사의 흐름을 볼 때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가장 확실한 변화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북한 주민들이 북한 내부의 실정을 파악하고 외부 정보를 받아 들여 스스로 판단해 변화를 이뤄내지 않으면 북한 김정은 체제의 변화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다수의 북한 주민이 깨어나도록 외부의 정보를 유입시켜야 한다는 것이 저희 결론입니다. 이런 저희의 판단과 활동에 많은 분들이 호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념 노선이 극단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북한을 건드리면 남북관계가 파탄 날 것으로 생각하고 유에스비 등의 대북 유입 사업에 후원하길 꺼려합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도와주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이런 점을 고려해 앞으로는 미국사회에서 저희 사업에 대한 후원모금 활동을 적극 추진할 생각입니다. 여기 미국사회는 북한문제에 관심도 많고 저희가 북에 들여보내는 유에스비 유입 사업에 효과가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어서 오히려 미국에서 모금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미국을 방문한 목적도 이곳 현지에 저희 북한전략센터의 법인을 설립해 미국 교포는 물론이고 많은 미국인들이 북한의 자유화에 동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희망에서였습니다.

전: 강 대표께서는 북한체제의 붕괴는 종국적으로 무인기나 중무장 군용차 같은 군사적 공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런 유에스비의 외부문화물 유입으로 초래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그 미국 월간지에 밝히셨던 데요, 북조선 김씨의 3대세습 통치 70년의 체제가 외부 영상물로 무너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강: 실제로 미국은 많은 전쟁을 했습니다. 이라크 베트남 한국 등... 막대한 전쟁비용을 들여 이긴 것 같지만 사실 한반도에서는 아직 6.25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건 무력으로 점령을 하더라도 완전한 승리는 쉽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 국무부와 국립민주기금 NED 등의 자금을 받았던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화 운동은 성공했습니다. 전쟁하지 않고도 민주 체제로의 변화가 성공한 사례입니다. 엄청난 무기보다는 작은 자금으로도 효과적으로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민주화 세력에 이 자금을 지원해 북한 내부에 영향을 주면 거대한 전쟁이 아닌 정보확산에 의한 주민의식개조를 통해 주민 스스로 문제 해결능력을 키울 때 북한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무력으로 싸워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평화를 원하고 또 평화적으로 북한이 변화돼 남북통일이 되려면 북한주민에게 외부정보를 유입시키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논리의 타당성은 북한정권이 취하는 정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추구하는 제일의 목표는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막는 것입니다. 정권이 하는 얘기를 무조건 믿게 하고 따르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바로 이 목표는 북한 정권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목표와 같은 것입니다. 그 목표를 깨는 것은 주민들이 북한 정권의 말만 듣고 믿을 게 아니라 외부의 진실을 접하고 알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전: 강 대표께서는 ‘북한 주민의 30퍼센트 정도, 그러니까 열 명 중에 세 명 꼴로 외부세계에 대한 소식을 알고 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던 데요 그런 추산은 어떤 근거에서 입니까?

강: 정확한 통계가 나온 건 없습니다. 하지만 조-중 국경을 통해 탈북한 주민들 얘기로는 거의 절반 이상의 주민들이 외부정보를 들은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에 출장 나오는 북한 주민들이 있는데 이들에게 물어보면 대체로 큰 도시에서는 절반 이상의 주민들이 외부 소식을 접하고 있고 제대로 잘 살지 못하는 외딴 시골에서도 10명 중에 2명 정도가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평균하면 3명 중에 1명 정도는 외부 소식을 보려 한다는 얘깁니다. 이게 가능하게 된 것은 중국의 산업화가 가속화 되면서 전자 기기가 싸진 것이 큰 몫을 했습니다. 디스플레이만해도 값이 저렴한 중국 산 제품이 많아서 북한에 유입이 많이 되었습니다. 북한의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남에 집에 가서 티비 보는 것이 이제는 부끄러운 일이 됐습니다. 그래서 몇끼를 굶더라도 티비 하나는 마련하자는 추세이죠. 티비를 갖췄으니 이제는 그걸 이용해 볼 내용물 컨텐트 수요가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유에스비가 인기있게 됐고 유에스비는 주민들의  자산처럼 됐습니다 . 유에스비에 담긴 내용물이 돈이 된다는 말입니다. 장사군들 사이에서는 누가 더 많이 영화를 담았느냐에 따라 그 능력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유에스비 취급 장사군들이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이 된 것이죠.

전: 그렇다면 유에스비가 장마당에서 팔린다는 것이겠네요?

강: 그렇습니다. 우리가 유에스비를 유포하는 통로로 장마당을 주로 활용합니다. 장마당이 이제는 북한 주민의 중요한 생활 터전이 되었습니다.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그런 선택의 터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가야만 되는 곳이 되었다는 말이지요. 일단 장마당에서 유통이 되면 그게 전역으로 퍼집니다. 예를 들어 라진 선봉 장마당에서 유통되면 청진 함흥 원산까지 퍼지고, 신의주에서 유통되면 순천 평성 평양 남포까지 퍼지게 됩니다. 그리고 국경지역의 장마당은 물건의 유통뿐 만이 아니라 정보의 유통까지 이뤄지는 루트로 활용됩니다.

전: 북한전략센터에서 보내는 유에스비 한 개 안에 들어가는 드라마 등의 외화물은 몇 편 정도나 됩니까?

강: 북한 주민들이 일반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아이티 기기는 성능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저희가 고용량의 유에스비를 보내고 싶어도 주민들이 갖고있는 컴퓨터나 노트텔에서 그걸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가 북한에서 사용되는 기기를 모아서 돌려본 결과 고용량의 유에스비는 작동이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고용량의 유에스비는 고위층과 상류층을 상대로 돌리고, 일반 주민에게는 16기가바이트 정도의 것을 유포합니다.

전: 그럼 영화 몇 편 정도가 거기에 들어갑니까?

강: 보통 10편 정도 들어갑니다. 영하 한 편에 1기가 정도 용량이 되니까 16기가 짜리에는 10편 정도 들어갑니다.

전: 작년 여름 8월 초에 미국의 Human Rights Foundation 즉, '인권재단'이 첨단정보통신산업의 중심지인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해커톤’에 대북풍선날리기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대표, 탈북지식인연대의 ‘김흥광’ 대표와 함께 초청됐었지요. 외부세계의 정보를 첨단기술을 이용해 북한에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유입시키는 문제를 논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보다 좀 더 창의적인 대북정보 유입 방안이 있던가요?

강: 실리콘벨리에 가서 IT 공학자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구상과 아이티 기술이 세계를 풍요롭게 하고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들 엔지니어들은 이미 많은 돈을 벌고 있지만 다수가 아이티 기술이나 정보확산에 소외돼 있는 저개발국가들, 특히 북한 문제가 국제적 쟁점이 되어 있는 관계로, 북한 정권이 가로막는 외부 정보의 장애막을 뚫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해커톤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를테면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한 국가에서 그걸 가능케 하는 와이파이 기술이 개발 중이고 스텔스 유에스비라고 해서 일단 유에스비에 영화를 담은 뒤에 그걸 지워서 북한에 유입시킵니다. 그런 뒤에 현지에서는 사용자가 지워진 영화를 복구시킬 수 있는 유에스비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에 들어갈 때는 내용물이 안 보이니 걸리지 않겠죠. 그런 기술이 있다고 하는데, 저희가 그걸 도입해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에 유입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죠.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움직이는 실리콘벨리 엔지니어들과 함께 북한에 정보확산 활동을 하면 엄청난 효과를 보고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미국 기자가 강철환 대표를 취재하는 동안에도 건물 밖에서는 강 대표를 보호하는 사복경찰관 그러니까 북한에서는 인민보안원일텐데요, 24시간 경호한다고 보도했더군요. 강 대표가 북한당국의 처단 대상 10대 탈북자 명단에 포함된 이래 경호를 받게 됐다고 하던데,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에서 강철환 대표를 비난하는 글을 읽어 봤습니다. ‘고향과 조국을 배반한 자들의 운명은 오래가지 못한다’ 고 위협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북한민주화 활동에 활발한 탈북자들의 신변 위험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요?

강: 북한 정권은 정상적인 정권이 아닙니다. 국가의 권력으로 개인의 신변을 위협하는 추잡한 망언을 해 대고 있으니 말입니다. 과거에 김정일의 처 조카 이한영씨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살해됐습니다. 북한의 협박은 말로만 협박이 아닙니다. 과거에 정찰총국의 공작원들은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와 그밖의 고위층 탈북자들을 암살하기 위해 끊임없이 남파됐습니다. 일부 국정원에 걸려 체포되기도 하고 또는 암살기도가 제지됐습니다. 그처럼 북한의 협박이 현실이 될 수 있어서 저희도 그걸 각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북한 정권의 협박에 기가 죽고 굴복한다면 2천3백만의 북한 동포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들은 늘 협박 받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우리는 자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북한의 협박을 받는다고 해도 북한 내부에 있는 동포들 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우리가 양심이 있고 또 북한에 가족을 둔 탈북자라면 북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을 해내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전: 우리민족끼리에서는 10여명의 북한민주화 운동가들을 비난하는 글에서 “남조선으로 도주한 강철환은 변절과 배신의 길에 들어선 이상 괴뢰들의 의도와 요구를 만족시켜주어야만이 잔돈 몇 잎이라도, 빵 부스러기라도 차례져 구차스러운 잔명을 부지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전략센터를 운영하는데 한국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습니까?

강: 없습니다. 지원이나 후원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 주요 사업은 미국과 유럽에서 지원을 받습니다. 개인 후원자 지원이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야당이 삐라살포 단체를 지원해선 안 된다고 아우성입니다. 우리가 한국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사업은 북한문제 세미나, 통일교육과 같은 것이고 북한 내부의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사업에 대해서는 전혀 지원이 없습니다. 야당이 계속해서 가로막고 반대하기 때문이죠. 북한이 주장하는 '한국 괴뢰정부로부터 몇 푼 받는 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입니다. 우린 전세계 국가들과 양심 있는 한국 국민들로부터 북한 민주화 자금을 후원 받고 있고 그 자금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 9살 때 요덕수용소에 할아버지 할머니 동생 등 모든 가족이 수감돼 10년간 수용소 생활하셨고, 18세에 풀려나 탈북해 한국에 들어가 2000년도에 요덕수용소의 참혹했던 생활에 대한 회고록, ‘평양의 어항’을 펴내셨습니다.  먼저 프랑스어로 펴내고 영문판으로도 출간됐습니다. 그 영문판 회고록을 본 조지 부시 대통령이2005년 백악관 대통령 관저로 강 대표를 초청해 면담하셨는데요, 탈북자로서는 그때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을 만난 것인가요?

강: 그렇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전: 부시 전 대통령과 이 개인 면담에서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저희 청취자들이 궁금해 하실 겁니다.

강: 사실 저 개인도 처음 경험했던 큰 충격 받은 사건이었습니다.

전: 물론, 좋은 충격이었겠죠?

강: 그렇죠. 상상을 초월했던 면담이었습니다. 정신이 약간 멍했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마음 자세로 갔습니다.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은 원래 10분 정도였습니다. 보좌관들은 10분만 면담을 해도 엄청난 영광이라고 얘기하더군요. 그런데 막상 10분, 20분이 지나도 끝이 안 났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다음에 있는 스케줄을 취소하면서 저와의 면담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이 이전에 노무현 대통령과는 20분 정도 만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 두 배 동안 만났다는 얘기이죠. 저와 북한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던 모양입니다.

전: 주로 무슨 질문을 하던가요?

강: 제 개인적인 과거 상황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셨고 또 만일 제가 부시 대통령 자신의 입장이라면 앞으로 북한 민주화 인권개선을 위해 무얼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전: 그럼 당시 북한인권전략센터의 구상을 말씀 드렸나요?

강: 아닙니다. 저는 부시 대통령 정부가 중국을 움직여 북한을 변화시킬 길이 있다고 말씀 드렸고 그것은 탈북자 강제북송을 막아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것만 해결해 준다면 북한 문제의 절반은 풀릴 수 있다고 제언을 했습니다. 그 당시 미국이 그렇게 했더라면 북한정권이 인권문제나 정치범수용소 문제와 관련해 굉장히 힘든 처지에 빠졌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인권문제에 대한 압박을 많이 가하고 있습니다만… 여하튼 저는 당시 부시 대통령께 북한의 인권문제와 탈북자 문제는 중국과 같은 주변국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한국정부도 북한에 우호적이었고 또 중국도 북한에 대한 시각이 변하기 전이라서 이런 저의 조언에 대해 부시 대통령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만은 그 당시에도 추진 할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부시 대통령이 이 강제북송 문제의 중요성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전: 부시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본인의 기념연구관 센터를 통해 탈북자들과 접촉하고 기록영화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강: 그렇습니다.

전: 근데, 지금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원래 요덕수용소 들어갈 때 강 대표의 여동생 미호씨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부모님이 동행했었나요?

강: 제가 수용소를 나올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는 사망하셨고 어머니는 강제이혼을 당해 평양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 남은 가족으로는 여동생과 수용소에 같이 들어갔던 막내 삼촌이 있고 또 그 밖의 삼촌들이 청진 등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동향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계십니까?

강: 브로커를 통해 가끔 듣긴 합니다. 동생은 중국 화교 브로커를 통해 함흥에 살고 있을 때 몇 번 연락했습니다. 동생에게 돈을 보내주려 했습니다. 함흥의 보위부원이 동생에게 보낸 돈을 갈취하기 위해 동생이 탈북을 시도했다는 거짓 혐의를 씌워 어디론가 보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생과는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래서 제가 유엔 기구를 통해
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전: 북한 가족의 생사확인 청원 말씀인가요?

강: 그렇습니다. 북한은 유엔의 확인요청에 대해  ‘반공화국 모략’이라며 일언지하에 확인을 거부했습니다. 유엔에서 실종이나 행방불명자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면
그 당사국은 답변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답변 자체를 거부하면 청원 내용이 인정되는 것으로 간주되는데 북한은 그런 사실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많은 탈북자들이 유엔을 통해 가족 신변에 대해 물어봤지만 북한은 무시했으니 국제사회는 그걸 인정한 걸로 간주한다는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유엔북한인권 조사위원회 즉 COI 조사 보고서가 나오게 된 것도 이런 북한의 이런 태도가 한 몫을 한 셈입니다.

전: 북한전략센터의 동료 운동가 한 분이 미국 잡지 ‘와이어드’ 기자에게 이렇게 얘기를 했더군요. ‘강 대표의 대북 정보유입 사업이 확장하고 성공할 수록 북한에 있는 가족들은 고통을 더 받을 수 있다’ 고 말입니다. 북한 내 혈육의 안위, 신변안전과 대북 민주화 사업을 놓고 고민하지 않으셨습니까?

강: 대북 정보유입 사업이 있기 전에 이미 저는 북한이 외부에 알려질 까봐 가장 두려워하는 정치범수용소 실태를 폭로했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 정권이 받은 스트레스 강도는 그때가 더 컸을 겁니다. 2005년 백악관에 가서 부시 대통령을 만나 북한 인권문제를 설명하고 북한을 압박할 데 대한 조언을 했을 때부터 북한은 이미 저를 미워했습니다. 제 행보를 다 알고 있는 상황이죠. 그래서 저의 가족도 북한 당국이 당시 압박을 했고요. 또 유에스비 유입으로 북한의 민주화 정보확산 사업을 하는 것은 저만 하는 것이 아니고 많은 분들이 같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과거에 했던 일과 비교하면 지금 하는 일이 북한으로서는 크게 놀랄 일도 아닙니다. 또 전 세계인들 누구나 다 듣고 보는 뉴스와 영화를 북한 주민들에게 보게 하는 일은 범죄가 될 수 없습니다.

전: 하지만 북한에서는 큰 범죄가 아닙니까?

강: 그렇죠. 그걸 범죄라고 규정하는 북한이 문제인 것이지 저로서는 주민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그걸 모르는 것이죠. 북한 정권은 이제 쓸데없는 체제 유지에 매달리지 말고 보편적인 알 권리와 가치를 인정해 주민에게 영화 노래 그 밖의 누구나 다 듣고 보는 것을 막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처럼 북한 주민을 노예화하기 위해 아무것도 보거나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고 더 이상 허용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북한 정권은 나를 비난하기에 앞서 먼저 변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요덕 15호 관리소 혁명화 구역 수감자 출신으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실상을 처음으로 세계에 알리고 미국 대통령을 최초로 면담한 탈북자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와 외부세계의 정보를 북한에 유입시키는 활동에 관해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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