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입북 수감된 고경희씨 오빠 고경호씨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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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북한정의연대 주최로 열린 '재입북 고경희씨 북한 보위부 탄압과 정치범 교화소 수용' 고발 기자회견에서 고씨의 오빠 고경호(왼쪽 둘째)씨와 아들 차성혁(왼쪽 셋째)군이 고문 탄압 중단과 교화소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북한정의연대 주최로 열린 '재입북 고경희씨 북한 보위부 탄압과 정치범 교화소 수용' 고발 기자회견에서 고씨의 오빠 고경호(왼쪽 둘째)씨와 아들 차성혁(왼쪽 셋째)군이 고문 탄압 중단과 교화소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는 3월 말 대남선전 인터넷 매체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남조선에 유혹 납치당한 탈북자들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며 귀환하는 탈북자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재입북한 탈북자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탈북자 고경호씨는 그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2년 반 전에 재입북한 자신의 여동생 경희씨가 행복하게 살기는커녕 당국의 기자회견에 이용된 뒤 지금은 수용소에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초대석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 지도부에 여동생의 석방을 촉구해온 고경호씨를 모시고 여동생의 재입북과 자신의 탈북에 얽힌 얘기를 들어 봅니다.

전수일: 동생 고경희씨가 북에 다시 들어간 것이 2012년 11월, 그리고 2013년 1월 하순에 다른 탈북자 김광호씨 부부와 딸과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불과 1년만인 2014년 1월 혜산시 보위부에 체포돼 수감됐다는 얘기네요?

고: 네.

전: 근데 현재는 북한 보위부에서는 풀려났다고 했지만 실제 친구들을 통해 알아본 결과는 아직 풀려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범수용소에 있든지 아니면 처형까지 됐다는 소문도 있다는 말씀이네요.

고: 네.

전: 당국에 고소까지 해야 할 만한 부당한 처사를 당한 내용의 쓰신 글 읽어봤습니다. 당 간부들의 비리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인지요?

고경호: 비리입니다.

전: 고경호씨가 거기서 근무하던 과정에서 목격한 비리입니까? 아니면?

고: 내가 당한 것입니다.

전: 당한 핵심은 무엇입니까?

전: 내가 북한에 있을 때 동생의 탈북을 도와 준 게 나의 처 언니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탈북을 도운 게 아니라 내 동생을 팔아먹으려 한 것이었습니다. 돈벌이로 중국에 팔아먹으려 한 것이죠. 내 동생은 자기가 중국에 가서 일해 돈을 벌고 다시 북한에 돌아올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근데 처형은 내 동생을 팔아먹으려 한 것이죠. 일단 팔려가면 짐승 같은 삶을 살게 되지 않습니까? 탈북 한 뒤 그걸 알게 된 동생이 자신이 인신매매 상황에 처했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나는 동생이 탈북한 것 자체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남도 아닌 자기 친척을 팔아먹는 짓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제가 분개하면서 친척 간에 가정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가정싸움 소식을 들은 동생은 그래서 북한으로 돌아오지 않고 남한으로 갔습니다. 동생이 남한에 가 있어도 우리가 자기 때문에 가정싸움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 가정은 원래 행복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탈북 때문에 우리 가정이 싸우고 갈라지고 하니까 동생은 내가 걱정이 돼 계속 전화를 해 왔습니다. 물론 북한에서 남한 가족과 전화하다 잡히면 어떻게 된다는 건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 동생과 전화 접촉을 계속 했었고 동생은 저한테 남한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남쪽에 나오면 잘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한테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어머니는 죽어도 못 떠나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 처와 자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근데 아무도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죽어도 고향 땅에서 죽어야지 어떻게 밖에 나가서 살겠냐는 것이었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저는 내 동생의 말을 듣지 않고 북한에 그냥 눌러 않게 됐습니다. 고향 부모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 그런데 여동생은 어떻게 재입북 하게 된 겁니까?

고: 남쪽의 동생과는 계속해서 전화 연락을 했습니다. 가정싸움도 지속됐습니다. 그런데 처갓집이 혜산시 보위부 간부라서 세력이 컸습니다. 그 세력을 믿고 당당하게 날 뛰었죠. 저도 보위부 총정치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간부들 아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처갓집 사람들과 세력싸움하기는 싫어서 보위부에 자수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보위부에서는 행복했던 제 가정인데 자주 싸움을 하니까 요시찰이 붙었었습니다. 여동생이 어떻게 탈북 하게 됐는지, 그리고 제가 동생과 계속 전화연락을 하고 있었다는 걸 털어 놓았습니다. 동생이 인신매매 꼬임에 빠져 탈북 하게 된 사정을 설명하고 국가의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처럼 가정을 지키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탄원했습니다. 그래서 당국은 그 탄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동생을 인신매매했던 일당은 자기들이 힘을 써서 나를 구해준 것처럼 행세했습니다. 물론 내가 자수를 해서 살아난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처갓집과의 불화는 더 커졌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여동생에게 북한으로 돌아오라는 얘기는 한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언론에서는 [내가 유인했다고] 이런 저런 말을 많이 했지만 말입니다. 동생과 계속 연락하던 제가 동생의 딸이 부르는 노래를 보내줬습니다. 동생은 그 노래를 듣고는 딸이 보고 싶다며 고향에 다시 오겠다고 했습니다. 오겠다는 동생을 오지 말라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동생에게 일단 보위부에 승인을 받겠다고 알렸습니다. 그 승인을 받는데 보름 정도 걸렸습니다. 마침 당시에 북한에서는 탈북자 자수 정책이 펼쳐졌습니다. 그 정책으로 숫한 사람이 탈북죄로 잡혔다가 풀려났습니다. 용서해주라는 김정은의 지시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다시 북에 왔습니다.

전: 그런데 고경호씨는 왜 탈북을 하게 됐습니까?

고: 동생이 오고 나서도 동생을 탈북 시켰던 세력이 계속해서 우리의 가정싸움을 부추겼습니다. 동생은 당국으로부터 매 맞았고 그래도 동생을 지켜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기에 한을 품고 김정은 앞으로 편지를 두 차례나 써 올렸습니다. 그 과정에 이 북한땅에서는 못 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는 고향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동생이 고향으로 돌아온 게 죄입니까? 동생이 핍박당하는데 김정은에게 편지 쓴 게 죄입니까? 동생의 탈북 매매에 연루됐던 세력은 내가 동생의 탈북을 알면서도 숨겼다는 혐의를 씌웠습니다. 법관들도 이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먹었기 때문에 죄를 동생에게 뒤집어 씌우지 않을 수 없었죠. 그래서 동생에게는 안기부 간첩이라는 혐의를 씌웠습니다. 이런 억울한 사정을 알고 있는 내 친구들이 총정치국에 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달라고 제소했습니다. 그 말이 김정은에게 들어갔고 김정은은 고경호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아보라고 양강도당에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내가 탈북한 것이었죠. 총정치국 조사를 받은 양강도당에서는 내게 잘못한 것이 밝혀지면 안 되겠으니 남한 간첩이란 혐의를 씌운 것 같습니다.

전: 그런데 아까 보위부 간부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하셨는데 북에서는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고: 북에서는 내가 닦아놓은 토대가 있고 그리고 총정치국 운전수하면서 잘 살았습니다. 내 개인 차도 있었습니다. 탈북하면서 놓고 왔는데 내 동생을 잡아가면서 차도 회수해 갔습니다.

전: 총정치국 운전수였다면 비교적 지위가 있었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고: 그렇습니다. 세력이 셌었습니다. 시 당 책임 비서와 시 보위부장도 나한테 뭐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시 보위부장을 만나서 나에 대한 혐의 자료가 있는지, 있으면 갖다 보이라고 했지만 말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시 당 책임비서에게도 똑바로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도 말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돈 받아 먹은 자들은 내가 진실을 말하는데도 내가 정신착란증에 걸렸다고 몰아 세웠습니다. 나는 북한에서 할 소리는 했습니다. 나로서는 인신매매 범죄자들을 감싸주는 일당을 고소해 재판소에 세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남쪽에 와서 기자회견을 하니까 아마 보위부에서는 그냥 가만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내가 세계 언론에 알리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겠죠. 그래서 보위부에서는 제 동생을 풀어줬다고 했습니다. 풀려 나오지 않았는데도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죠.

전: 풀려났다는 건 어떻게 들었습니까?

고: 그건 북쪽에 친구들이 많으니까요. 제 친구들이 계속해서 알아본단 말입니다. 이 친구 저 친구가 알아 보는데 한 친구에게는 풀려났다고 거짓말 하고 또 다른 친구가 물어보면 아직 안 풀려났다고 말하고. 그 말이 엇갈립니다. 내가 여기서 언론에 자주 언급하니까 내 입을 막으려고 동생이 풀려났다고 거짓말 하는 것이죠. 그런데 어떤 친구들은 내 동생이 총살을 당했다는 말도 있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총살까지 당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동생이 총살 당하진 않은 것으로 봅니다. 다만 보위부가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더 분합니다.

전: 이해가 어려운 점은 고경호씨가 작년 9월에 이미 한국 전국에 방영된 기자회견도 했고 12월에는 작성하신 탄원서 내용이 영국의 북한인권유럽연합 웹사이트에도 게재됐는데 그걸 김정은이나 지도부가 안 볼 리 있겠습니까?

고: 김정은은 보지 못했을 겁니다. 제 사건을 똑바로 처리하라는 지시를 어겼다면 숙청될 수도 있으니 김정은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을 겁니다. 거기다가 내가 탈북 했으니 나를 지지하던 세력들이 저의 탄원을 후속 추진해야 하는데 나 본인이 없으니 할 말이 없겠죠. 당국자들은 지금까지의 탄원 자료들도 깔아 뭉개고 있을 것이고요. 현실적으로 보면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아무리 지시를 해도 집행이 안 됩니다.

전: 처형과는 관계가 상당히 나빠졌을 텐데요, 처형은 아직도 북에서 인신매매 일을 하고 있을까요?

고: 인신매매를 했지만 처벌을 받지 않았으니 그럴 테죠. 그러니까 내가 더 반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북한 당국에서 그걸 감싸주고 있으니까요.

전: 처형이 여동생을 인신매매로 탈북 시켰는데 그런 인신매매범에 대해 눈을 감아 주고 있는 북한정부에 분개하고 있다는 말이네요?

고: 그렇죠.

전: 조카를 데리고 남쪽에 들어가셨는데, 조카 나이는?

고: 14살입니다.

전: 학교에 다닙니까?

고: 네. 다닙니다.

전: 한국사회 정착과 적응은 잘 하고 있나요?

고: 조카는 적응을 잘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히려 힘이 들지요.

전: 조카와 둘 만 사고 있나요?

고: 네.

전: 한국에 들어가 1년동안을 살아 왔는데요, 동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고: 동생이 꿋꿋이 견뎌내길 바랍니다. 통일되는 날까지 살아 견뎠으면 좋겠습니다. 동생의 석방을 위해 여기서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2년 반 전에 재입북해 정치범교화소에 수감된 여동생의 석방을 북한 지도부에 촉구하고 있는 고경호씨를 모시고 여동생의 재입북과 자신의 탈북에 얽힌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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