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전 중국특파원 김승재 기자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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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문제 탐사취재 경험을 책으로 펴낸 YTN 전 중국특파원 김승재 기자.
북한문제 탐사취재 경험을 책으로 펴낸 YTN 전 중국특파원 김승재 기자.
사진제공-김승재 기자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

외부와 고립된 북조선의 정치와 경제의 흐름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김정일이 죽기 전 두 차례나 잇따라 중국을 방문한 이유, 20대의 3남이 그의 권력을 세습한 배경, 김정은이 집권 2년만에 고모부를 처형한 동기, 김정은 체제의 조-중 인력 교류와 외자유치의 내막. 이 같은 외부세계가 궁금해 할 북한관련 중요 사변과 흐름을 이해하는 데 통찰을 제공하는 책이 최근 출간됐습니다. ‘인도에 등장한 김정은, 그 후의 북한 풍경: 남한기자가 탐사한 북한과 북한 사람들’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한국의 보도매체 YTN의 중견기자 김승재씨가 중국 특파원 3년간 눈과 귀와 발로 취재한 북한관련 보도와 그에 얽힌 얘기를 담았습니다. 오늘 초대석에서는 저자 김승재 씨를 모시고
북-중 간 정치 경제 교류의 실상을 파헤친 그의 생생한 취재담을 들어 봅니다.
현재 YTN 보도국의 주말 뉴스팀 팀장인 김승재씨는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의 초빙교수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수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다섯 번 째 방중시기가 2010년 5월 3일. 마침 천안함 피격사건 직후였습니다. 후진타오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 일화를 소개하면서 김정일 위원장이 그 회담에서 격분했었다고 하는데요, 무슨 내용입니까?

김재승 : 김정일의 다섯 번 째 방중은 저의 베이징 특파원 시절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과거 네 차례 방중 때와는 달리 다섯 번째 방중에는 이상한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그 징후란 김정일 위원장이 후진타오 주석과 같이 중국의 고전극 홍루몽을 보기로 예정돼 있었는데 그걸 안 보고 일정을 앞당겨 갑자기 귀국한 것입니다. 김정일 귀국 후 북한 매체는 후진타오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보도하지 않았고 베이징 방문 자체도 빠뜨렸습니다. 당시 저도 관련보도를 했지만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관측들이 있었습니다.  근데 몇 년 지나 이와 관련한 취재를 하게 됐습니다. 후진타오 주석이 김정일에게 회담장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과 나는 나이가 같다. 그러나 지도자 위치에 오른 것은 당신이 나보다 훨씬 먼저다. 근데 오늘날 현실은 어떤가?  나는 중국의 13억 인구를 굶기지 않고 있지만 당신은 북한 인구2천5백만명도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고 있지 않나?  방중할 때마다 식량을 달라고 하는데, 북한과 중국은 사회주의 사업도 같은 시기에 시작하지 않았나? 그런데 오늘날 현실은 왜 이리 다른가? 당신들이 변하지 않아 그런 것이다. 당신들도 덩샤오핑처럼 개혁개방을 해라. 그래야만 변할 수 있다.’ 이런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김정일로서는 자기 부하들이 있는 자리에서 후진타오가 그런 발언을 한 건 자기 자존심을 뭉겨버리는 것이 되니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갔다는 얘기를 취재원에게 들었습니다.

전: 개혁개방에 대해서는 김정일 위원장도 과거 언급했었지만 중국의 지도자가 그런 말을 직접 한 데에 거부감을 느꼈던 모양이군요?

김: 그렇다고 봅니다. 그 다음 여섯 번째 방중했을 때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도 그런 표현을 했는데 후진타오처럼 노골적인 표현은 아니었습니다. 여하튼 김정일은 개혁개방이란 것이 자신의 체제유지의 위험요소로 보기 때문에 그걸 받아들이지 못 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 2013년 12월 중순, 장성택 처형 직후, 중국 투먼을 방문취재 하셨습니다. 당시 북한의 중국파견 인력이 근 2천명이었는데 이는 1년남짓만에 여섯 배 이상 늘어 난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왜 이렇게 갑자기 늘었습니까?

김: 북한 인력이 갑자기 늘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12년 5월에 북한 인력이 처음 중국에 들어왔는데 제가 처음 보도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어느 언론도 거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전: 그 숫자는 북한이 공식적으로 중국과 협의 하에 중국에 들여 보낸 인력 수를 말하는 것이겠죠?

김: 그렇습니다. 북한과 중국 정부 간에 처음으로 인력 수출입 사업을 시작한 시점이 2012년 5월이었고 투입된 곳이 투먼이었습니다.

전: 물론 비공식적으로 방문했다가 일을 하는 북한 사람은 당시에도 많이 있었겠죠?

김: 그렇습니다. 이 근로자들은 공식적인 합의로 중국에 들어가 기숙사에 머물며 일하는 인력이었습니다. 제가 베이징 특파원일 때 중국 여러 지역을 다녀봤지만 2010년부터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세계의 시장으로 탈바꿈하고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중국의 넘쳐나는 인력으로 노임이 싸서 전세계 기업들이 중국에 들어가 공장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2010년부터는 그런 시대가 끝난 것이었습니다.

전: 중국 노동자들의 임금도 비싸졌다는 얘기군요?

김: 그렇습니다.  인건비도 상당히 올랐지만 중국 노동자들이 원하는 직종도 바뀌었습니다.

3 D 직종, 즉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는 추세가 시작된 것이죠.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은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중국 기업들과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에 난리가 났습니다. 중국 노동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직장을 옮기고 구인은 어렵고. 당시 저는 북한문제 취재와 더불어 중국 기업 상황을 취재했었는데 중국 기업들에게 가장 힘든 문제가 인력 확보였습니다. 공장을 돌리려면 사람이 필요한데 인력이 없는 것이죠. 이 문제로 중국 기업과 중국진출 외국기업들은 한결같이 하소연했습니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북한 인력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니 중국 기업들과 중국 내 외국 기업들은 엄청 고마웠던 것이죠.
거기다 북한 인력은 전직도 하지 않고 노임도 싸고 성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힘든 일도 마다 않고. 당시 기업들에게는 중국의 젊은 노동자들과는 달리 북한 근로자들은 여러 면에서 바람직했던 것이죠. 그래서 중국 기업들과 외국기업들은 북한 인력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2012년 5월 처음 북한 인력이 중국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는 기업들이 관망하는 상태였습니다. 과연 북한 근로자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죠. 하지만 실제 고용해 보니 일을 잘 하는 걸 알게 된 겁니다. 그래서 여러 기업들이 북한 인력을 요청하게 됐습니다. 그런 상황이 장성택 처형 이후까지 계속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장성택 처형으로 갑자기 늘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후에도 저는 그 상황을 후속 취재해 왔습니다.

전: 기업들은 도대체 어떤 업종들이었습니까?

김: 주로 봉제와 완구 업체들이었고 미국계 기업에서는 비닐을 재생하는 업종도 있었습니다.

전: 책에는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는 공장의 전용 기숙사와 식당 등의 사진이 있더군요. 그리고 그곳의 근로 환경이 열악했다고 쓰셨던 데, 어떤 상황이었는지 설명해 주시죠. 

김: 제가 봉제 공장을 가 봤었는데 굉장히 많은 여성들이 미싱-재봉틀-에서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전: 대체로 북한 인력은 여성들이었나요?

김: 대부분이 여성들이죠. 육안으로 본 것만으로 그 공장의 근로조건을 다른 공장들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만, 예를 들어 K기업이란 특정 업체가 있었습니다. 완구 만드는 업체였는데 북한 근로자들을 상당히 혹독하게 다뤘습니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을 시키고. 야근 수당이 있긴 하지만. 휴일에도 계속 작업을 시켰습니다. 북한 근로자들이 말을 잘 들으니까 K 기업 사장은 다른 업체들에게 자기 운영방식을 자랑하고 돌아다녔습니다. ‘북한 근로자는 나처럼 확실하게 시켜야지 당신들처럼 써선 안 된다. ‘ 면서 혹독하고 비인간적인 처우를 하는 걸 자랑처럼 하고 다녔습니다. 주변 기업인들은 그가 너무 심하다고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근로자들은 K 기업에 대해 침묵의 시위, 눈물의 시위도 했다고 합니다. 그 시위는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한 건 아니고 감독 보위부원이 ‘너무 부당하니 일하지 말라’ 고 지도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여하튼 그 시위에 놀란 K 기업 사장이 근로자들의 요구를 잘 들어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후 근로조건을 개선해줬다고 합니다.

전: 어떤 기업의 경우는 많게는 하루에 16시간 일을 시켰다고 지적하셨는데, 북한 밖의 국제사회 기준으로는 하루 노동시간이 8시간 아닙니까? 그러니 그 두 배의 일을 시킨 것인데 그렇게 장시간 일을 오랜 기간 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김: 그렇겠죠. 그래서 아까 언급한대로 어떻게 저렇게 까지 혹사시키냐는 지적이 나온 것입니다.  근데 북한 여성근로자들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여하튼 너무 혹독하게 일을 시켜 결국 침묵과 눈물의 시위를 하게 됐다는 것이죠.

전: 근데 책에는 장성택 처형 직후라서 인지는 몰라도 일과 후에 북한 근로자들에 대한 집단 정신교육이 많았다고 지적하셨던 데요.

김: 실제로 현장에 가 봤을 당시에 유엔이 무슨 결의안을 통과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 작년 12월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됐었죠.

김: 그때도 당국에서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바로 결의안 통과 다음날 평양에서 근로자들이 일하는 공장에 팩스를 보내 유엔 결의안은 잘못된 것이라며 교육을 시키라는 지시였습니다.  근데 장성택을 처형했을 때에도 그와 같은 공문을 보내 ‘장성택은 나쁜 놈이다. 근로자 사상교육에 들어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런 사상교육 지시가 하달되면 근로자들이 야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장주인들로서는 사상교육으로 북한 근로자들이 일터를 비우면 야근을 못하기 때문에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전: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은 생활용품을 많이 쓰게 될 텐데요, 책에 의하면 북한 당국이 근로자들에게 한국산 제품을 쓰지 말라는 지시에도 한국산품이 가장 인기가 있었다고 하던데요?

김: 북한 근로자들도 여성이다 보니 깨끗한 것 예쁜 것 아름다운 것을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제가 들은 인상적인 얘기는 북한 근로자들이 중국 접경지역 공장에 와서 한국 제품을 보고 놀란다고 합니다. 이들이 처음 한국제품을 접하면 ‘이걸 써도 될까’하고 경계부터 한다는 것입니다.

전: 사전에 그런 교육을 받았을 터이니까?

김: 그렇습니다. 사상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한국산 제품은 터부시하고 멀리합니다. 하지만 일년 정도 일을 하면서 조금씩 써보면 다른 나라 제품과는 너무 비교가 되고 한국 제품이 최고라는 걸 알게 된다는 것이죠.

전: 중국산 제품보다 훨씬 낫다는 걸 알게 된다는 말인가요?

김: 그렇습니다. 그리고 특히 한국산 ‘샤프란’이란 섬유 유연제가 있는데 그 냄새를 그렇게들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옷을 빨 때 이 유연제를 같이 넣으면 옷에서 좋은 냄새가 풍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 근로자들은 유연제가 상당히 고가임에도 모두들 가져다 쓰고 또 이들이 사용하는 세탁기 옆에는 샤프란 곽이 나란히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북한 당국에서는 한국산 제품은 쓰지 말라고 지시를 했지만 몰래 다 쓰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 것까지는 당국이 통제를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관련해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장성택 처형 직후에 산둥성 ‘르짜오’항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가 북한산 석탄이 많이 들어오는 항구인데, 당시 들은 얘기는 장성택 처형 후 단둥은 왕래가 끊어지고 비상이 걸렸지만 르짜오항과 투먼 지역은 오히려 북중 교역이 더 활발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르짜오 항에 가보니 북한 석탄을 팔려는 선박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선박들이 르짜오항에서 하역한 석탄을 급매물로 처분하고 있으며 선박이 북한으로 돌아갈 때는 쿠쿠 밥솥을 가져간다고 하더군요. 한국 메이커의 가전제품을 엄청나게 가져 간다는 얘기였습니다.

전: 그럼 돈 대신 물건을 가져간다는 말인가요?

김: 구입해서 가져 가는 것이죠. 한국산 쿠쿠 밥솥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 사서 가져 가는지 알아 보니 중국산 짝퉁도 나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중국산 모방제품이란 말인가요?

김: 그렇죠. 중국산 모방제품도 구입해 가져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최근에 한국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보고한 것이 크게 기사화 됐지만, 북한 고위층에서 한국의 쿠쿠 밥솥이 인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2013년 장성택 처형 직후 북한 선박이 쿠쿠 밥솥을 엄청 수입해 간다는 사실을 보도했었는데 이번 정보위원회 보고에서도 북한 고위층이 그 밥솥을 좋아한다고 했다고 하니, 저희 정보와 일치한 것이죠.  그래서 한국의 쿠쿠 밥솥과 샤프란 세제는 초코파이와 더불어 북한에서 상당히 인정을 받고 있는 상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전: 그러니까 고위층이든 서민이든 가리지 않고 사용한다는 얘기군요.

김: 고위층이 찾으면 서민들도 찾게 된다는 것이죠.

전: 개성공단이 남북한 간의 임금문제로 공방이 계속되어 왔는데 그와 관련한 대목이 책에 나옵니다.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개성공단 인력의 임금 인상 요구는 일찌감치 예견 됐던 일’ 이라고 지적하셨는데요.

김: 2012년 3월 투먼에 있는 북한 인력 전용 기숙사 현장을 처음으로 잠입해 촬영 취재했을 때 그들의 근로조건을 살폈습니다. 당시 임금은 중국 돈으로 월1300-1400위안이었는데 취재원 얘기로는 이런 임금 조건이라면 개성공단에서도 북한 근로자들의 임금이 인상될 개연성이 상당히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한국 내 경제 전문가로부터도 그와 같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 개성공단의 임금 인상문제는 현실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북측 근로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는 2014년도 김정은이 해외 북한근로자 임금을 올리라는 특별 지시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임금인상 요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저는 봅니다. 개성공단뿐만이 아니라 이미 북-중 간에도 임금 인상과 관련해서는 미묘한 문제가 해마다 이어지고 있습니다. 책에서 모든 걸 밝히지는 못했지만, 그 지시에 북한 쪽과 중국 쪽 모두 난감해 했습니다.

전: 북한 쪽은 왜 난감해 했을까요?

김: 일단 중국 기업 쪽에서는 북측이 요구한다고 해서 쉽게 올려 줄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계속 버티려고 하겠죠. 또 북한 기업 쪽에서는 임금이 인상되는 만큼 고위층에 상납해야 할 규모가 더 늘어나는 셈입니다. 제가 올해 초에 취재한 바에 따르면 당시 김정은의 특별지시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임금인상이 실제 이행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전: 그렇다면 북측이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임금을 3월부터 올리겠다고 통보한 것도 그 김정은의 특별지시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김: 그렇죠. 개성공단도 해외근로자의 임금 조건에 준하니까 그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고 봐야겠죠.

전: 개성공단이 남북 간 현재 가장 큰 쟁점으로 돼있는데 개성공단의 폐쇄 가능성에 대해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언급했다는 내용이 책에 나와 있습니다.

김: 이 발언은 제가 베이징 특파원을 할 때 알고 있던 북한 고위급 인사가 올 3월에 한 것인데요, 저를 잘 알고 또 그 북한 인사도 잘 아는 한 분이 제게 전한 것입니다. 한국의 통준위-통일준비위원회에서 흡수통일 식 얘기가 나오자 북한이 상당히 반발했습니다. 그와 같은 시점에 북한은 개성공단 임금 인상 요구를 해온 것이죠. 그때 이분이 전한 북측 고위 인사의 언급의 요지는 ‘남쪽에서는 공단 총수입이 북측 통치자금, 군수자금으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공단 총수입의 70퍼센트는 개성시와 개성공단 관리운영에 쓰인다. 중앙정부로 들어오는 돈은 수입의 30퍼센트밖에 안 된다.’ 즉 중앙정부의 큰 수익이 아니라는 주장이었고.  또 한 가지는 ‘개성공단의 북측 근로자 임금 수준이 너무 낮다 보니 해외 여타 대상국들과 임금 협상할 때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전: 다른 나라와 임금 협상을 할 때 다른 나라들이 개성공단의 한국 임금을 기준해서 협상하려 할 테니 북한에 불리하다는 말인가요?

김: 그렇죠. 북측 인사의 첫째 주장은 모르겠지만 둘째 주장은 기업 논리로 볼 때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협상 시 ‘남쪽은 이렇게 낮은데 우리한테는 왜 높게 달라냐’고 상대방이 당연히 요구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북쪽은 공단을 접을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북한이 개성공단을 한 번 중단시켜 피해를 많이 봤는데 북한이 또 설마 그렇게야 하겠냐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수틀리면 무슨 일도 할 수 있다는 걸 과거에 많이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공단을 접을 개연성이 상당히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이 인사가 그런 말을 했다면 북한이 거기까지도 생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북쪽이 설마 그렇게야 하겠냐고 낙관만 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중국 내 북한 근로자 인력 중에는 IT 즉 정보기술 종사자들이 있는데 이들의 임금 수준은 일반 근로자보다 훨씬 높다고 기술하셨던 데요.

김: 북한의 정보기술 근로자들을 취재할 때 제게 근로 현장을 취재토록 해주겠다는 제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위험하기도 하고 또 여러 사정 상 이뤄지진 않았습니다.

전: 그 지역이 어디였습니까?

김: 접경지역이었습니다. 2014년 4월에 취재했는데 전달 3월에 옌지에 북측 IT 인력 75명이 들어왔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투먼에는 50여명이 투입됐고요. KCC라는 북한의 해킹 전문회사 소속 원들이라는 정보였습니다. 이 북한의 IT인력이 우수하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접경지역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상하이 에서 취재할 때도 거기 취재원에게도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또 평양과기대에서 근무했던 분한테도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단둥, 옌지 등의 접경지역에 있는 북한 IT인력 몇 명이 모이면 못하는 일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전: 그만큼 재간이 있다는 얘기군요.

김: 네. 실제로 한국에서는 제한이 많지만 중국에서는 그 규정이 느슨한 상황을 감안해 한국 업체들이 중국 접경지역에 와서 저임금으로 북한 IT인력을 이용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 개발도 하고 해킹도 함께 한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한국업체들은 돈을 벌기 위해 그런 일을 한 것이죠. 북한 IT 인력의 월 급여5천위안은 중국이나 한국의 정보기술 인력 임금에 비하면 엄청 싼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 내 다른 일반 근로자들의 임금에 비해선 굉장히 높은 것이죠. 그만큼 북한 내에서는 고급인력인 것입니다. 또 이들이 못하는 게 없을 정도라는 데에 대해서는 한국의 검찰도 수사를 통해서 밝힌 바 있습니다.

전: 그러니까 해킹 활동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이 있는 인력들이란 말이군요.

김: 그렇죠. 단둥에서는 직종이 다른 기업으로 위장해 이 북한 IT인력이 일하고 있다는 곳을 바깥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중국 당국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비밀리에 조사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들이 대만 해커들과 연계됐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중국 당국도 이들의 기술력에 긴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들의 해킹 능력이 워낙 뛰어나니까 중국을 상대로 해킹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2012년 투먼에 북한 인력이 처음 들어왔을 IT근로자들에게는 봉제나 완구 업종의 인력과는 달리 중국정부가 특별 대우를 해줬다고 합니다. 투먼 자치정부 청사에 사무실도 마련해 주고4층인가 5층에 숙소도 차려주고.  다른 3D 업종 근로자들에게는 공동 기숙사에서 생활토록 했지만 말입니다. 이들은 활동도 자유로웠습니다. 취재 당시 이들은 버스를 타고 백화점도 갔다 오곤 했습니다. 다른 직종의 근로자들은 인솔자의 지휘아래 줄 맞춰 행진을 해야 하는데.

전: 그럼 중국 업체들은 북한의 IT인력을 무엇을 하는데 고용한 것인가요?

김:  당시 투먼에서도 그와 똑 같은 의문이 돌았습니다. 중국 기업들이 북한 IT인력을 어디에다 쓰는지 깊은 취재는 못했지만 당시 내부 관계자도 그런 의문을 나타냈습니다. 아직도 그 의문은 풀리지 않았습니다만 북한 인력이 우수하고 인건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쓴 것은 당연했다고 봅니다.

전: 무슨 인터넷 불법 도박게임 제작 얘기가 돌지 않았었습니까?

김: 중국정부가 거기에 직접 나서서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법 게임 프로그램 제작은 북-중 정부간 인력 교류가 있기 전부터 이미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전: 공공연하게 중국 정부가 북한인력을 해킹에 쓸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건가요?

김: 그렇게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전: 책에는 특히 황금평과 위화도 자유무역구에 대한 중국 인민은행의 분석 자료와 보고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만큼 북한이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외자유치 목적으로 중국과 공동 개발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 인민은행의 황금평 위화도 무역구의 사업성 분석이 흥미 있습니다. 그 보고서 내용의 장점과 단점을 소개하셨던 데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김: 장점은 6가지로 분석됐습니다. 그 첫째는 자유무역구 지역은 소수 주민만 살고 물과 전기 가스 통신 등 기초시설이 없는데 황금평과 연결된 중국의 단둥에서 기초시설을 공급하면 중국의 개발 부담이 줄어든다는 것이고, 둘째 북한과 중국뿐 아니라 남한도 포함해 세 나라의 혜택을 누리며 외부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 그러니까 남한 쪽도 자유무역구 개발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말인가요?

김: 그렇습니다. 셋째로는 북한에 제일 중요한 것이 전기공급인데 이 주변에 태평만이나 풍만 등의 전력발전소가 있어서 거기서 전력 공급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북한의 싸고 질이 좋은 노동력으로 중국 기업의 만성적인 인력난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점이고 다섯째는 북한의 풍부한 자원을 이용하면 중국 기업의 자원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점으로 신압록강 대교가 건설되면 물동량이 엄청 늘어날 것이고 물류가 활발해지면 북-중뿐 아니라 한-중, 중-일 간의 교역 증가로 이어지면서 황금평 위화도 자유무역구가 앞으로 동북아 가공무역의 창고와 물류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단점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분석해 놨습니다. 우선 정치적인 위험성이 지적됐습니다. 북한은 국제사회와 늘 조화를 이루지 못하니까 정치적 변수가 생기면 모든 사업이 중단되는 그런 위험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전: 개성공단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요?

김: 그렇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정부도 그런 위험성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이죠. 둘째 문제는 예측할 수 없는 요인, 즉 정치적 이외의 요인에서 비롯되는 기업 운영의 위험성을 지적했고 그 다음으로는 자연재해의 위험성을 우려했습니다. 압록강 대홍수가 발생하면 기반시설이 빈약하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크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북한의 자유무역구에서 해외 송금과 무역 결산이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보고서가 제시하는 것은 이런 장점과 단점들 모두 고려할 때 이 황금평 위화도 자유무역구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무역구를 개발하면 중국측이 얻는 실익이 훨씬 크다는 결론을 제시한 것이죠.  제가 볼 때 중국은 시일이 걸릴지는 몰라도 장기간에 걸쳐 이 사업을 밀고 나갈 것으로 봅니다.  특파원 생활에서 느꼈지만 중국은 멀리 길게 바라보고 일을 추진하기 때문에 이 사업도 한국 입장에서 가볍게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한국의 보도 매체 YTN의 중국 특파원으로 3년간 북-중간의 정치경제 문제를 탐사 보도했던 김승재 기자와 함께 최근에 그가 출간한 책 ‘인도에 등장한 김정은, 그 후의 북한 풍경’에 관해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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