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시민연합 김소희 간사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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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진행을 하고 있는 김소희 간사.
전시회 진행을 하고 있는 김소희 간사.
사진-북한인권시민연합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

최근 서울 도심의 한 화랑에서는 탈북 미술대학생들이 탈북 과정의 그림을 전시하고 꽃제비 출신의 젊은이들이 관람객들에게 북한생활의 경험과 실태를 알리는 강연을 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판옵티콘을 넘어서- 감시를 벗어나기 위한 북한난민들의 힘겨운 여정’이란 주제로 엿새 동안 진행됐습니다. 판옵티콘(Panopticon)이란 수감자들을 철저히 감시하는 원형 교화소를 뜻하는 영어인데요, 북한땅 전체가 커다란 수용소이며 북한 주민은 죽을 때까지 체제에 감시 당하는 수용자란 의미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6월 10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이 전시회는 한국의 민간 인권단체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주최했습니다. 오늘 초대석에서는 이번 전시회의 진행을 맡았던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캠페인 팀의 김소희 간사를 모시고 전시회 주요 행사에 관한 얘기를 들어 봅니다.

전수일: 이번의 주제가 ‘판옵티콘을 넘어서- 감시를 벗어나기 위한 북한난민들의 힘겨운 여정’입니다. 이 주제가 전시회의 취지와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김소희 간사: 판옵티콘이란 것이 감시자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으면서 죄수들을 계속 감시할 수 있는 원형 감옥을 의미합니다. 판옵티콘의 죄수가 북한 난민의 삶과 같다고 저희는 생각했습니다. 북한 주민들도 북한 내에서 계속 감시를 당하는 삶을 살고 있고 또 어렵게 감시를 피해 중국으로 나왔다고 해도 공안에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될까 봐 항상 숨 직이며 도망 다니고 제3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렇게 제목을 붙였습니다.

전: 탈북 미술대학생들이 전시회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전시했는지 설명해 주시죠.

김: 탈북화가 강춘혁씨가 색갈을 사용하지 않고 연필로만 그린 그림이 전시됐습니다. 또 홍익대학교에 다니는 탈북자 세명의 학생이 특수한 칼러색에 맞춰 탈북 난민들의 삶을 그렸습니다. 또 남한의 단국대학교 학생 다섯명이 작업을 같이 하며 탈북 학생들을 도와 그림을 그렸습니다.

전: 그런데 전시회에서는 김혁씨나 이성주씨 같은 탈북자들이 나와서 토크 콘서트를 했다던데요,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지요.

전시회에 그림을 출품한 탈북미술대학생들. 사진-북한인권시민연합 제공
전시회에 그림을 출품한 탈북미술대학생들. 사진-북한인권시민연합 제공 Photo: RFA

김: 전시회를 하면서 매일 매일 특별 행사를 함께 했습니다. 김혁씨와 이성주씨가 토크 콘서트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겪었던 북한 내 삶의 얘기, 그리고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왜 북한 형제들을 도와야 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삶을 설명하는 행사였습니다. 그리고 강춘혁씨는 라이브 드로잉을 하는 퍼포먼스도 했습니다.

전: 라이브 드로잉이라는 건 현장 즉석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뜻인가요?

김: 그렇습니다. 실제 그림도 그리고 랩도 했습니다. 친구들이 와서 강춘혁씨가 그림을 그릴 때 랩 노래를 해 관객들의 호응을 받았습니다.

전: 마침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올린 동영상에 강춘혁씨 탈북대학생 래퍼가 그림을 그릴 때 현장에서 랩을 한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잠시 들어 보기로 하죠.

//강춘혁// “내 나이 스물 여덟, 한국 생활 십년, 굶주리며 헐떡였던 그 땅에서 12년. 어쩌다 보니 내 삶은 반반이 남과 북. 내 인생을 면으로 치면 식은 짬짜면…길바닥에 버려졌던 망할 내인생. 누구한테 보상받나 망할 그 인생….”

전: 인사동이라면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곳인데, 외국인 관람객들도 있었습니까?

김: 네. 외국인 관람객도 많이 왔습니다. 한글과 영문을 같이 설명 붙여 전시를 했고 행사 진행도 영어 통역을 해서 외국인들이 저희 행사의 취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전: 관람객들은 주로 어떤 분들이 왔고 그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소개해 주시죠.

김: 인사동이라서 관광객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북한 난민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도 갤러리 전시회 안내를 보고 들어보신 분들이 많습니다. 들어와 작품을 돌아 보시고 북한 난민에 대해 몰랐던 부분이 많았다고 하더군요.

전: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올린 동영상에 김혁씨와 이성주씨가 얘기하는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실제 그 현장의 강연을 잠시 들어보겠습니다.

//김혁// “제가 한국에 와서 어떻게 할지 몰랐다. 북한에서는 개개인의 생활을 당국이 규정해 주고. 북에서는 일할 때나 학교를 다닐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개인의 의지가 아닌 북한 권력에서 정해주는 대로 할 뿐이었고 따라만 하면 됐다. 한국에 와서는 적응을 해야 한다는데 그 적응이란 말 자체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라. 내 스스로 무얼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다. 이제부터는 내가 스스로 모든 걸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심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북한에선 모든 게 제약됐지만 여기서는 갑자기 내가 해야 하는 것이라서 굉장히 외롭고 힘든 싸움이었다. 아마도 2, 3년정도는 걸려 적응이 됐다고 생각한다…

전시회에서 라이브드로잉 하는 탈북미술대학생과 래퍼 강춘혁씨. 사진-북한인권시민연합 제공
전시회에서 라이브드로잉 하는 탈북미술대학생과 래퍼 강춘혁씨. 사진-북한인권시민연합 제공 Photo: RFA

//이성주// “ 북한에서 꽃제비일 때 주로 낮에는 시장에서 훔쳐 먹고 밤에는 역에 가서 잠 잤다. 꽃제비 초창기에는 시장에서의 타겟은 주로 빵 팔거나 사탕 파는 아줌마들이었다. 나중에는 간이 커져서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장사하는 장사꾼들의 돈가방을 목표로 삼았다.  처음에 도둑질이 나쁜 것을 알아 어려웠지만 두번 세번 네번 계속하다 보니 도둑질이 유일한 생계의 수단이란 걸 알았다. 아무런 죄책감도 못 느끼게 됐다.  스스로 자문도 해봤다. 살기 위해서는 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한 지역에서 하다가 사람들이 알게 되면 다른 지역으로 옮겨서 하곤 했다…”

전: 이번 전시회에 참여한 탈북 미술대학생들을 잠시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안충국 안수민 고진송 씨라고 돼 있던데요.

김: 홍익대학교 회화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입니다. 강춘혁씨도 홍익대학교를 나왔는데요 강춘혁씨를 이어 이번에 새로 입학한 학생들입니다.

전: 남한 대학생들과 함께 그림을 그렸다고 하죠?

김: 네. 이 1학년 탈북학생들이 전시회를 준비하다 보니 힘든 게 많았을 겁니다. 전시회도 처음이고 대학생이 된 지도 얼마 안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남한 출신 대학생 1학년 2학년 생들과 함께 큰 칠판에 그림을 그려 나갔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남한 학생들이 돕겠다고 했을 때 별로 내키지 않아 했습니다. 자신들끼리만으로도 모두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남한 학생들이 진심으로 도와주고 함께 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는 감사해 하고 즐겁게 함께 그림을 그렸습니다.

전: 이번 전시회 성공리에 마치셨는데, 다음에도 이 같은 활동을 하시게 됩니까?

김: 내년에 다른 주제로 또 전시회를 열 계획입니다. 그리고 7월에는 국제회의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전: 7월 행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시지요.

김: 납치문제와 관련해 국제 전문가들을 초청해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한국의 민간 인권단체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최근 서울에서 주최한 탈북 미술 대학생들의 그림과 탈북 꽃제비 출신 젊은이들의 강연으로 진행된
‘판옵티콘을 넘어서’ 전시회에 관해 이 단체의 김소희 간사를 모시고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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