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단체 지원 나선 재미의사 최윤희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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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씨 (오른쪽)와 탈북자 트라우마 치유센터 ‘새삶’의 이혜경 대표(왼쪽).
최윤희씨 (오른쪽)와 탈북자 트라우마 치유센터 ‘새삶’의 이혜경 대표(왼쪽).
사진-최윤희 씨 제공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미국의 뉴저지 주에서 소아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윤희 씨가 최근 한국 내 탈북자단체의 든든한 후원자로 나서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그녀의 남편이 미국 클린턴 행정부 후기 북핵문제 협상의 주역이었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총장을 역임한 찰스 카트먼 (Charles Kartman)대사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최씨의 탈북자 지원 소식이 더 큰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또 그녀의 선친은 김영삼 대통령 정부 시절 총무처를 이끌었던 최창윤 장관이고 몇대 선조까지 평안북도 선천에서 살았던 실향민 가족입니다.
오늘 초대석에서는 최윤희 씨를 모시고 북한주민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과 탈북자단체 지원에 얽힌 얘기를 들어봅니다.

전수일: 소아과 의사가 되면 북한에 가서 불쌍한 어린이들을 치료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셨다는데 어떤 연유인지 저희 청취자들을 위해 설명해 주시죠.

최윤희: 선친이 평북 선천에서 태어나셨고 5대조 친가 할아버지때부터 거기 출신입니다.
저를 키워주신 친할머니가 첫 손주인 제게 어릴 때 평북 선천 고향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고조할아버지께서 거기에 예배당을 세웠던 얘기도 하셨고요. 어린 마음에 이런 이야기들이 옛날 얘기같았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께 이북 얘기를 해달라고 졸라대곤 했었죠.
또 저희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소아과 의사이기 때문에 저도 소아과 의사가 되길 원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면 이북에 가서 친할머니와 아버지가 늘 가고 싶어하셨던 평북 선천에 가서 예배당도 다시 짓고 소아과 의사로 북한 어린이들을 도우며 살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추석 때 텔레비전에서 귀향하는 사람들이 차가 밀려 8시간에서 10시간이나 걸리고 있다는 뉴스를 보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곤 했습니다. ‘저 사람들이야 8-10시간 걸려도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는데 나는 언제나 내 고향 평북 선천에 가보나’ 하고 말입니다. 그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아버님이 뉴스를 보며 서글퍼 하셨던 모습도 기억나고요. 어릴 땐 잘 몰랐지만 21년전 미국에 와 살면서 이제 나이가 드니 고향 생각도 하게되고 나라 걱정도 더 하게 됩니다. ‘통일은 언제나 될까? 통일이 되어야 어릴 때부터 바랐던 이북 고향에 가서 북한 어린이들을 도와주고 불쌍하고 병든 아이들에게 예방접종도 해주고 약도 주고 할텐데. 소아과 의사로 북한 주민을 위해 뭐든 좀 해야겠는데.’ 하는 생각을 늘 했었죠. 아버지 고향 평북 선천에 가보고 싶은 마음, 뭔가 할머니와 아버지의 꿈을 이뤄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첫째라서 어르신들하고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고 내 아이들이 태어나고 하면서 신문에 북한 아동들 먹지 못해 말라깽이되고 병들고 치료받지 못한 모습의 사진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아프더군요.
우리 큰 딸에게는 아직 어리지만 작년부터 그런 사진을 보여주면서 ‘북한에 있는 아이들이 먹지도 못하고 마르는 것 봐라. 여기 미국에서 너희들은 맛있는 음식 얼마나 많고 갖고 싶은 장난감이 얼마든지 있다. 이런 북한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도와주어야 한다’고 얘기해 줍니다. 제가 소아과 의사라서인지 아이들 진료하다 보면 이곳 부모들은 아이들 세끼먹다가 한끼만 안 먹어도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그러다가 하루 종일 먹지 못하기라도 하면 난리가 납니다. 분유 먹는 아기가 100밀리그램 먹다가 50밀리그램 밖에 못 먹어도 엄마 아빠들이 난리치죠. 유기농 음식에 콩밥 현미밥 등 좋은 것만 골라서 먹일 수 있는 모든 게 풍족한 우리들은 아이들이 한끼 혹은 하루만 먹지를 않아도 그리 난리를 칩니다. 하지만 북한 아동은 태어날 때부터 먹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굶어 죽는 겁니다.

제 남편은 제가 저녁마다 신문을 읽다가 이런 소식에 안타까워하고 한숨을 쉬면 ‘당신은 태평양 건너 미국 시민이 되어 살면서 그 문제에 대해 무얼 할 수 있겠다고 고심을 하냐’고도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한반도 통일을 위해 북한동포를 위해 탈북자를 위해 뭔가 하고 싶다’ 고 대답하곤 하죠.

전: 그 말씀 하시니까, 최근 한국 언론 기사에 최윤희 씨가 마치 자매처럼 사이좋게 찍은 분의 사진이 나온 걸 봤습니다. 탈북여성 이혜경 박사였습니다. 이분이 올 봄에 서울에 설립한 탈북자 트라우마 치유센터, 그러니까 정신적 충격을 입은 탈북자들을 치유하기 위한 단체, ‘새삶’에 관한 기사를 처음 보시고 즉각 후원금 내야겠다고 생각하셨다던데.

남편 찰스 카트먼 전 대사 (왼쪽)와 자녀들과 함께.
남편 찰스 카트먼 전 대사 (왼쪽)와 자녀들과 함께. 사진-최윤희 씨 제공

최: 네. 저는 그동안 남편을 통해 알게 된 미국 북한인권단체에 계속 기부금을 보내왔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단체입니다. 그런데 4월말 한 신문 기사를 읽게 됐습니다. 저는 소아과 의사라서인지 늘 아이들과 청소년에 관한 기사를 주목하고 읽습니다. 그 기사는 이혜경 박사께서 청와대에 가셔서 찍은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였는데, 탈북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높다는 제목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기사 내용을 읽어보니 ‘아, 이게 바로 내가 지원하고 싶었던 단체로구나’ 라는 걸 단번에 느꼈습니다. 이 박사님의 취지가 확 마음에 닿았습니다.
목숨 걸고 어렵게 탈북해 한국에 들어간 청소년들이 한국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눈치보며 살고 있다는 얘기, 특히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높다는 내용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청소년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이혜경 박사님 사진으로 보니 심지가 굳고 인상도 좋으시고 기사에서 회견하신 내용을 보니 보통 용기가 있는 분이 아니고 헌신적으로 탈북자들을 돌보는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사에 언급된 여성정책연구원의 최금숙 원장님을 통해 이혜경 박사님을 소개해 주십사하는 부탁을 드렸습니다. 금방 두 분이 답장을 주셨습니다. 저의 연락을 받고는 사막의 오아시스, 가뭄의 단비 같은 후원자를 만났다며 너무 좋아하시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런 답장이 좀 의아했습니다. 한국의 5천만 인구 중에 잘 사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탈북자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 그렇게 없다는 말인가 하고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나 개인이라도 열심히 돕자’는 결심을 하고 즉각 후원금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나서 이혜경박사님과 서로 이메일 연락을 계속해 오면서 정이 들었습니다. 거의 매일 아침 저녁으로 주고 받기 시작한 이메일이 수백통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가 후원금을 보내고 선물을 전하고 전화통화를 하고 이메일 교신을 하는 것도 좋지만 한번 직접 가서 찾아 뵙고 센터 회원들 모두와 만나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방문해 만나보고 싶다는 연락을 드렸던 것이죠.

전: 그래서 한국에 들어가신 것이 8월 초인가요?

최: 그렇습니다. 제가 8월 1일 도착해 8일까지 일주일 간 머물며 이혜경 박사도 여러 번 만나고 도착 다음 날 ‘새삶’ 회원들 서른 대여섯 분과 만나 냉면갈비집에 가서 맛있게 음식 즐기면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전: 직접 만나보고 얘기를 하셨으니 좋았겠습니다.

최: 너무 너무 좋았습니다. 단체 이름이 ‘새삶’인데 오히려 제가 새삶을 얻고 왔습니다.

전: 새삶 치유센터에 있는 회원들은 어떤 분들입니까?

최: 7년에서 10년전에 탈북한 분들이 다수였습니다. 운이 좋게 온 가족과 대동해 오신 분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은 자식을 북한에 남겼거나 남편이나 아내를 두고 온 분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혈혈단신 혼자서 탈북해 온 분도 있었습니다. 그분들 지난 얘기 들으니 너무 기가 막히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전: 그러니까 그분들 북한에서의 어려웠던 삶, 탈북 과정 얘기, 한국 정착 얘기를 많이 들으셨겠네요.

최: 그럼요. 그런데 ‘새삶’에 회원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있습니다. 이분들을 위해 이 박사님이 오래전부터 구상했었다고 해요. 회원들이 계속해서 모이고 유대감을 갖고 서로 돕고 우정을 유지하는 방안으로 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백석대학교 음대 교수님의 자원봉사 지도 아래 2주에 한 번씩 모여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회원들이 합창단 활동을 통해 자신감도 생기고 또 노래를 부르면 신나고 재미도 있고 활기차고. 제가 거기서 회원들이 합창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기뻤습니다.

전: 최윤희 씨는 직접 개인적으로 이 단체를 후원하시고 계십니다만,
한국에서 탈북자 정착 지원과 관련해 어떤 식으로 탈북자를 지원, 후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까?

최: 제가 이 박사님을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유도 그분의 탈북자 지원 접근방법 때문이기도 합니다. 탈북자들에게는 사회 정착에 물론 돈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자존감을 살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천대받고 무시당하고 눈치보아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 합니다.

전: 그러니까 단순히 금전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분들의 자존감도 중요하다는 말씀이네요?

최: 그럼요. 그분들이 하나원에서 나오면 주민등록 번호를 모두 받습니다. 대한민국 여권도 받으시는 분들입니다. 우리 한인 교포들도 미국에 오면 주류사회에서 얼마나 대우받고 살기를 원합니까? 영주권과 시민권을 받기 위해 그 고생을 하고 아이들 교육 잘 시키겠다고 애를 쓰지 않습니까? 탈북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욱이 그분들은 우리와 같은 동포 아닙니까?
말이 다릅니까, 피부가 다릅니까? 신경을 좀 더 써주고 사랑으로 감싸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탈북자라고 해서 눈치를 보게 해서는 안 됩니다. 통일 이전이든 이후이든 모두 같은 동포입니다.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존중해주고 사랑으로 감싸주고 이해해주고. 이것이 지금 필요합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미국 클린턴 행정부에서 북핵문제 협상의 주역이었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사무총장을 역임한 찰스 카트먼 대사의 부인 최윤희 씨를 모시고 그의 북한주민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탈북자단체 지원에 관한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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