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된 후 북한 재건에 힘쓸 탈북 청년의 이야기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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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한동대학교 학생 정철민 씨.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한동대학교 학생 정철민 씨.
/RFA PHOTO-이규상

여러분 안녕하세요. RFA 초대석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탈북청년 정철민 씨는 북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산 광산에서 일할 때 당 간부들과 충돌이 동기가 돼, 북한 땅은 도저히 젊은이들이 살 곳이 못 된다고 생각해 탈북 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탈북청년 정철민 씨와 자유아시아방송 스튜디오에서 만나 이야기 나눕니다. 정 씨는 지난 7월 중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바 있습니다.

질문: 정철민 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 네 반갑습니다

질문: 자기소개 좀 해 주실래요

정: 네. 안녕하세요 저는 한동대학교 법학부에 재학 중인 정철민이라고 하고요. 저는 2010년에 탈북했고요. 탈북하기 전까지 무산이라는 곳에서 살았고, 거기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기서 현재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질문: 2010년도에 탈북하셨다고 했는데 탈북하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정: 저는 2010년 탈북하기 전에 무산 광산에서 일했었는데, 그때 이제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 친구들은 90년대 중반, 이미 학생 시절에 북한을 탈북해서 중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었고, 그 친구들 통해서 북한 말고 중국이나 제삼 세계 이야기를 많이 전해 들었고, 그래서 ‘그 친구들과 탈북을 한번 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다가, 제가 사회에서 일하면서 당 간부들과 충돌이 여러 번 있게 되면서, ‘아! 이게(북한에서) 청년들한테는 도저히 희망이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제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중국이라는 곳, 또 이제 북한이 희망이 없다고 하는 그런 생각들이 여러 가지 중복되면서 친구들과 같이 탈북하게 되었던 같습니다.

질문: 자 중국으로 탈북했는데, 첫 번째 외국, 중국 어떤 나라였습니까?

정: 너무 신기했고요. 사실 너무 위험한 곳인데, 저희가 언젠가 잡히기만 하면은 북송되는 곳이어서 굉장히 경계하는 마음과 함께 저희 북한에 벗어나서 다른 나라 땅을 밟았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신기하고 한편으론 또 기대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공존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제 앞으로 새롭게 살아야 한다는 절망감과 또 언제 북송될지 모른다는 이제 두려움, 북한을 벗어났다는 기쁨도 있었고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질문: 한국에 오게 되는데 한국에 온 이후 삶에 관한 이야기, 한국에 살면서 청년으로서 남북한을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가요.

정: 처음 왔을 때, 북한은 굉장히 폐쇄적인 나라잖아요. 그래서 어찌 보면 옛날 것을 계속 고수하려고 하고, 특히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가부장적인 구조로 되어 있고, 그런 데서 벗어나서 남한에 도착했는데 일단 처음에 딱 떠오르는 생각은 외국에 온 느낌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대표적으로 길거리에 식당이나 가게들의 간판들 자체가 글자는 한글이지만, 다 외래어를 쓰고 있고, 자유롭게 하고 다니는 패션이나 분위기가 굉장히 그 외국에 온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게 제일 첫인상이었고, 북한은 아직도 뭐 폐쇄적인 국가이다 보니까 발전이 못된 상황에서 또 발전된 국가로, 한강의 기적을 통해서 발전된 국가에 와 보니까 여러 가지 문화적인 차이, 살아가는 방식차이 라든가 또 전자제품 경우도 북한에서 다뤄보지 못한 상황에서 여기는 모든 시스템이 전산화돼 있고, 처음 접하는 것들이어서 어렵기도 했고, 다르다는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았고, ‘자유라는 곳에 왔다’라는 생각들이 들면서 일단 아주 좋았던 것 같아요.

질문: 북한에서 살 때 여행을 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정: 네 여행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질문: 어디서 어디까지 여행 했는데

정: 보통은 다 북한에서는 자기 지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특히 저희가 살던 국경지역 같은 경우는 어떤 여행증명서, 즉 국가에서 어떤 승인이 있어야 다닐 수 있는 그런 구조를 가진 지역인데, 자기 지역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는데 또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서 친척 방문으로 황해도 과일군에서 한 1년 정도 친척 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고, 그 이후에 2006년에는 무산이라는 곳에서 평양으로 견학했던 적도 있는 것 같아요.

질문: 교통편은 어땠습니까?

정: 교통편은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교통 상황이 어렵다고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아요. 일단 도로 자체가 여기처럼 고속도로가 돼 있는 것도 아니고, 옛날 우리 남한의 60 70년대 때 황톳길을 달리던 그런 시대에 도로상태가 그대로 있고,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이제 장거리 여행을 할 때 기차를 이용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2000년도 평양 갔다가 돌아갈 때에만 14일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중간에 정전도 되고, 어떤 때는 앞서 가던 열차가 사고가 나서, 사고 복구하노라 한 며칠씩 걸리고 그러다 보니까 여행 다니는 거를 보통 일반시민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굉장히 오래 걸린다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무산에서 평양까지 14일 정도 걸렸고, 옛날 90년대 중반에 친척집에 황해도라는 곳에 갈 때도 대략 한 보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질문: 중간에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정: 사실 먹을 게 없는 경우에는 어떤 방법이 없죠. 훔쳐 먹든가 아니면 빌어먹든가, 아니면 도중에 빠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자기 목적지 황해도를 가야 하는데 황해도를 가지 못하고 그리고 중간에 누락되어서 거기서 방황을 하거나, 일명 북한에서 꽃제비라고 얘기를 하죠. 꽃제비 생활을 하는 경우도 가끔 있죠.

질문: 현재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탈북대학생으로서 어떤 다짐으로 공부하고 있는지 얘기해 주세요.

정: 사실 남한 대학생들보다 좀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어요. 근데 그 공부를 시작했던 계기는 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저희가 떠나온 북한이라는 곳에 주민을 위해서 뭔가 저도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고, 고민하던 끝에 선택한 것이 학업이었고, 어찌 보면 여러 면에서 나이 라든가, 문화적 차이, 학업적인 부분에서도 여러 가지로 불리한 상황에 있지만, 통일됐을 때 저랑 같이 살았던 북한주민을 도울 수 있다는 그런 마음으로 지금도 계속 어려움 이겨 나가고 있는데 앞으로도 사실 그 북한을 항상 생각하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또 열심히 또 적응해 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탈북청년 정철민 씨와 왜 탈북했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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