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 수 있다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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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생이 게시판에 붙어 있는 취업대비 스터디 모집 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한 대학생이 게시판에 붙어 있는 취업대비 스터디 모집 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들하고 똑같이 자고 일어나서는 안 되고 남들보다 부지런해야 성공한다는 말인데요. 주변사람들로부터 성실하다 또는 부지런 하다는 말을 듣는 탈북여성이 있어 소개합니다. 오늘은 함경도 출신의 이수경(가명)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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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2000년대 초반에 생활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단순한 생각으로 일단 탈북을 했던 것 같아요.

북한에서 20대 초반 벌써부터 이 씨는 먹고 사는 끼니 문제를 걱정하면서 살기가 조금 낫다는 중국을 바라보며 길을 떠났습니다.

이수경: 그때는 어린 나이라 두려움 보다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던 것 같아요.

태어나 자란 곳을 떠나 그것도 불법으로 도강해 중국에 가 산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당장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길을 떠났고 중국에서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리고는 지난 2008년 남한에 입국했는데요. 남한에 갔을 때는 북한에서 중국으로 갔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이수경: 저는 처음부터 했던 얘긴데 낯설지 않았어요. 중국 조선족 집에서 한국 텔레비전을 봐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낯설지 않았어요. 적응하는데 어렵지 않았어요

기자: 중국에서는 몇 년을 사셨나요?

이수경: 중국에서는 한 7-8년 살았어요.

기자: 텔레비전이나 잡지 등에서 봤던 남한은 화려하고 잘 사는 모습이 대부분이었을 텐데 직접 경험한  남한생활은 드라마와는 다른 모습이잖습니까?

이수경: 신기했던 것이 저는 환상이 없었어요. 성격이 게임이나 도박도 안하고 해서 현실적이라 환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막연히 중국보다 잘사는 나라, 경쟁이 심한 자본주의 나라 하지만 남한에 간 탈북자에게는 정착금을 주고 병원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혜택을 주고 또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대학도 보내준다는 사실은

방송을 통해 알았지만 그것에 의존해 살아야겠다고 깊이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이수경: 주로 흔히들 텔레비전에서 보고 상상했던 것과 본인이 직접 와서 본 것은 달랐다고 얘기들 하시는데 저는 드라마는 드라마다 일뿐이다라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말투도 경상도  말투를 해서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씨는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고 남한에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겁니다. 신분이 보장되고 숨어 살지 않아도 되고 자기만 열심히 하면 중국생활보다는 낫겠지 하는 결심을 했던 겁니다. 이렇게 남한에서의 첫달을 보내게 됩니다.

이수경: 처음엔 주위환경이 중요한데 입국해서는 친구들이 하는데로 따라했던 것 같아요. 먼저 남한생활을 경험한 친구들이니까요. 이사해서는 회사 다니고 식당에도 좀 다니고 몇 개월 있다가  학원에서 컴퓨터 자격증 기본으로 3개정도 따고요. 그 후에는 고용노동부에서 사무직을 계속 추천을 해주셔서 면접도 보고 계속 많이 현실에 부딪친 것이 많이 도움이 됐죠.

아무래도 낯선 곳에 가서는 그곳에 사는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되고 이미 정착해 있는 고향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느긋하게 남한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수경: 저는 편안함을 느낀 것이 지금도 편안한데 왜냐하면 중국에서 살았던 생활이 워낙 불안했기 때문에 지금은 불안할 수가 없었던 거죠. 법에서도 보호를 해주고 하니까요.

나이 스물이 꺽어져 서른에 들어설 즈음 시작한 새로운 생활이라 뭘해도 늦은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일단 시간제 일을 하고 용돈을 벌면서 생각한 것이 대학입학입니다. 하지만 매일 학교에 가야 부담이 없는 사이버대학 즉 컴퓨터 인터넷으로 강의를 들으면서 4년제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길을 택합니다.  사회생활과 대학생활을 병행한다는 것이죠.

이수경: 회사를 다니다가 주변에 친구가 공부를 하니까 같이 공부를 하게 되더라고요. 대학을 다니다 보니까 대학생활에 대한 꿈이 있었는데 생각처럼 나이가 많아서 재밌게는 못했지만 그 상황을 즐겼던 것 같아요. 나름 뿌듯한 것도있고요.

대학 4년 기간 많은 사람을 만났고 사회를 바라보는 눈도 넓어졌습니다.

이수경: 일단 대학을 나와 취직을 했죠. 사회복지 분야에 취직을 하려고 했는데 실습을 하면서 사회복지가 많이 어렵구나 하는 생각에 아직 그 분야에서 일은 못하고 있고 현재는 사무직 일을 하고 있어요.

기자: 남한의 직장생활은 어떤가요? 해볼만 합니까?

이수경: 일단 어디가나 호락호락 하지는 않죠. 내가 원하는 목쵸가 있고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목표에 도달하고 내가 생각하는 단계까지 가려면 쉬운 것이 어디 있겠어요. 노력은 하고 있어요. 포기하지 않고.

쓰러져도 다시 바로 일어서는 것을 오뚜기 정신이라고 합니다. 항상 긍정에서 나오는 힘. 현실 상황은 불가능하게 보일지라도 나는 할 수 있어 반드시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라고 매일 자기 취면을 겁니다.  심리학에서는 타인이 나를 존중하고 나에게 기대하면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로 피그말리온 효과를 정의하고 있는데요. 이 씨가 제일 좋아하는 글귀입니다.

이수경: 피그말리온 효과는 제가 우연히 책에서 문구를 확인하고 너무 좋아서 잊지 않으려고 적어놨어요. 확실히 내가 원하는 대로 그것을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고 저는 믿고 있거든요.

기자: 뭐를 간절히 원하시는데요.

이수경: 목표가 있으니까. 그런 것이 이뤄지길 바라고 한 단계의 목표가 이뤄지면 또 다음 목표를  설정하잖아요. 욕심이 자꾸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마다 피그말리온 효과를 생각해요.

이 씨를 아는 사람들은 수경 씨를 예쁘고 당찬 여성으로 기억합니다.

이수경: 제가 받는 평가는 여러 가지인데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 정말 열심히 산다. 또 이 나이에 결혼을 안해서 주위분들이나 친구들이 잔소리를 많이 하죠. 언제 시집갈래. 이런 말을 자주 듣고 성실하고 열심히 산다 한결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직장인으로 부지런히 살고 있는 이 씨는 항상 움직이고 손놓고 멍하고 있는 것보다는 뭔가를 계속 해야 자신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느낀답니다.

이수경: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9시에 출근하는데 제가 완벽한 성격이라 준비시간이 많이 걸리죠. 일하고는 저녁에 오면 활동도 하고 지인들도 챙기고 그리고 틈틈히 운동도 해야 하고 집에 들어오면 자기 전까지는 청소하고 쉬지않는 뭔가를 하는 성격이라서.

여기서 잠깐만!. 세상에 열심히 안사는 사람도 있을까요?

이수경: 그렇죠. 굳이 따지자면 그런데 주위분들이 짠하고 안스럽게 저를 대하고 챙겨주시고 과분한 사랑을 많이 받거든요. 점심을 사주시고 그러면 저도 한 번은 사고 싶은데 너는 안 사도 된다고 하면서 선배님들이 번갈아 가면서 사주시니까 그런 것이 너무 미안하고 너무 감사하고 그런 것은 항상 느끼고 있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이수경(가명)씨의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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